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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숭숭 공수처는 민주당 애물단지... 더 이상 졸속은 안 된다

입력
2025.01.11 08:00
수정
2025.01.1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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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출범에만 혈안 됐던 민주당
내란 수사로 각종 문제점 속속 드러나
조짐 있었지만 제대로 도움 주지 않았다
뒤통수 세게 맞고 나서야 정신 차린 민주
살리든 폐지하든... 더는 '졸속' 안 된다

편집자주

여의'도'와 용'산'의 '공'복들이 '원'래 이래? 한국 정치의 중심인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의 뒷얘기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1월 21일 청와대에서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박수로 축하해주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1월 21일 청와대에서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박수로 축하해주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이렇게 못할 줄은 몰랐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3일 내란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체포에 실패하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실망감에 가득 찬 분노가 쏟아졌습니다. 7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오동운 공수처장을 집중 포화했고, 오 처장은 결국 사과를 해야만 했죠. 체포 실패 문제에서만큼은 윤 대통령 수사를 적극적으로 저지하고 있는 국민의힘보다도 더욱 짜증 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분노의 주된 동기는 '배신감'이었습니다. 이번 수사에서 공수처에 힘을 실어준 건 민주당이었습니다. 검찰이 다른 수사기관보다 앞서서 '내란 수사'를 치고 나가자 민주당은 "수사권이 없는 검찰은 손을 떼라"며 경고했었죠. 그 대신 공수처 지휘하에 경찰과 군 검찰 등이 합작하는 '국가수사본부'를 주장했고, 이 요구는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공수처가 장애물에 부딪칠 때도 앞장섰습니다. 공수처가 지난달 검찰로부터 사건 이첩 요구를 거부당하자 이재명 대표가 "나라의 기강이 무너졌다"며 압박을 했죠. 이후 공수처는 검찰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팍팍 밀어줬는데 제대로 된 수사는커녕 체포 실패라는 황당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니 민주당 입장에서는 짜증이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최근 의원총회에서 초유의 공수처장 탄핵 같은 강경한 주장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체포 실패는 공수처의 무능만이 문제였을까요? 각계각층에서는 윤 대통령 체포 실패에는 공수처 설치를 주도했던 민주당 또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민주당이 '검찰개혁'을 내세워 설익은 상태로 공수처를 출범시켰고 내실화까지 신경을 쓰지 않은 탓에 오늘날의 사태를 불렀다는 지적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공수처장마저 민주당을 비판했었다

올해 1월 19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에서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이임식을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인사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올해 1월 19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에서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이임식을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인사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공수처는 민주당 주도로 2021년 1월 공식 출범했습니다. 민주당은 2000년대 초반부터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공수처 설치를 주장했었죠. 하지만 보수정권 집권기에는 실패하다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여대야소' 지형이 형성된 뒤에야 겨우 꿈을 이뤘습니다. 당연히 공수처의 역량을 결정짓는 수사 인력과 법적 권한 등 '초기 세팅'도 민주당이 주도했죠. 문제는 그때의 세팅이 이번 내란죄 수사에서 결함을 많이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하나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우수한 인력 부족 불러일으킨 신분 불안

공수처는 윤 대통령 체포에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로 경호처의 격렬한 저항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수사기관이 저항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게 황당하지만 달리 말하면 그만큼 영장 집행을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수사 역량 부족이 여실히 드러난 장면입니다. 공수처는 인력 부족도 거론했습니다. 공수처의 정원은 검사 25명, 수사관 40명. 그러나 지난달 기준 현원은 검사 15명(처장·차장 포함)과 수사관 36명뿐입니다. 가뜩이나 인력도 없는데, 남아있는 인력의 역량마저 의구심이 가득한 상황입니다.

공수처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습니다. 출범 초기에는 새로운 수사기관을 잘 세워보고 싶은 사명감을 가진 법조인들이 공수처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수사 경험이 풍부한 전직 검사들도 적지 않게 등용됐습니다. 하지만 출범 4년이 지나도록 구속도, 기소한 사건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이끌어내지 못한 데다 조직 내홍까지 불거지자 실망한 사람들은 공수처를 떠났습니다.

공수처는 그 빈자리를 제대로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공수처라는 기관에 대한 불신뿐만 아니라 제도적 결함도 있었습니다. 개정 전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 검사는 7년 이상 법조 경력을 갖춘 법조인이 지원할 수 있습니다. 지원자의 나이는 최소 30대 중반입니다. 그런데 공수처 검사는 '3년에 한해 최대 3번만' 연임이 가능합니다. 공수처에 아무리 오래 있어봤자 40대 후반에는 퇴직을 해야 합니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만 수사하기 때문에 퇴직 이후 변호사 개업을 하더라도 어필할 수 있는 전문성도 상대적으로 떨어집니다.

검찰이나 법원처럼 평생직장도 아니고, 돈을 로펌보다 더 많이 주는 것도 아닌데 굳이 우수한 인력이 오려고 할까요? 그 결과로 공수처는 4개 중 2개 부서만 부장검사가 있습니다. 그마저도 공수처에 들어오기 전 검사 경력이 짧았거나(이대환 부장) 없었던(차정현 부장) 사람들입니다. 이제 일반 검사는 모집 공고를 내도 우수 인재를 뽑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공수처는 법조계에서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중소기업'이 된 겁니다.

이번 계엄 사태와는 무관하지만 인력 문제와 관해서는 공수처가 민주당에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었습니다. 김진욱 전 공수처장은 2023년 8월 법사위에서 "공수처를 운영할 수 있게 최소한의 인원이 있어야 하는데, 일반 직원 정원을 20명으로 못을 박아놨다"며 "운영하지 말라고 만든 법"이라고 말했습니다. 김도읍 당시 법제사법위원장이 이 답변에 "민주당이 밀어붙인 결과"라고 말하자, 김 전 처장은 부정하지 않은 채 "위원장님께서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채모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공수처를 오랜 기간 경험해본 김정민 변호사는 "공수처가 지방 검찰청의 지청급도 안 되는데 어떻게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냐"고 지적했습니다.

권한 정리 안 해 난맥상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6년 11월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민중총궐기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6년 11월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민중총궐기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수처의 결함은 인력뿐만이 아닙니다. 수사 관련 권한 문제도 논란의 연속입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기관이 전부 벌떼같이 달려드는 사건이 처음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혼란이 엄청납니다.

대표적인 게 공수처의 경찰 체포영장 집행 일임 시도와 철회입니다. 공수처는 경찰에 체포영장 집행 일임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형사소송법 81조는 "구속영장은 검사의 지휘에 의해 사법경찰관리(사법경찰관과 경사, 경장, 순경과 같은 사법경찰리를 포함)가 집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수처법 47조는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직무 권한을 검찰청법과 형소법에 준용하도록 한다"고 규정합니다. 두 조항에 따라 공수처 검사 또한 영장 집행 지휘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문재인 정부 시절 이뤄진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제정된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을 보면 "공수처는 영장 집행에 관해 경찰을 지휘할 수 없다"고 해석했습니다. 공수처가 발부받은 영장을 경찰이 집행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영장 집행 문제는 다시 공수처에 넘어갔습니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의 무리한 법 해석도 문제였지만 민주당이 법을 만들고 다듬으면서 권한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은 탓도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항상 일관성을 갖춰야 할 형사사법체계에서 '누가' '어떻게' 피의자를 체포할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 것 자체가 우스운 사건입니다.

내란죄 수사권도 여전히 완벽하게 해결됐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공수처도 검찰처럼 내란죄 수사권은 없어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관련 범죄'로서 내란죄를 수사할 수 있다고 해석했죠. 그러나 이런 해석은 민주당이 "검찰에 손을 떼라"며 지적했던 논리와 같습니다. 민주당의 한 율사 출신 의원은 "관련 범죄는 아주 큰 사건을 수사하다가 인지된 조그마한 사건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직권남용을 수사하다가 내란죄라는 거대한 사건으로 옮겨 갈 수는 없다는 건데, 이걸 공수처가 똑같이 한 셈이죠.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영장 발부 등을 통해 검찰이나 공수처의 논리를 인정해준 만큼 수사권이 인정됐다는 시각이 있지만 윤 대통령 측은 여전히 공수처의 '불법 수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수사권 문제는 본 재판에 가서야 시시비비가 끝날 것으로 보입니다.

공수처법 3조 3항도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이 법은 "대통령, 대통령비서실의 공무원은 수사처의 사무에 관하여 업무보고나 자료 제출 요구, 지시, 의견 제시, 협의, 그밖에 직무수행에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를 근거로 공수처의 체포 영장 집행 협조 요청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 조항은 공수처의 외압을 전면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제정됐지만, 예외 없이 '수사처의 사무에 관해 일체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등으로 규정을 해놓은 바람에 영장 집행 협조마저 어렵게 만들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이 외에도 △공수처 검사 임명 시 수사 경력을 요구하지 않고 △공수처장 임명 시 야당의 비토권이 보장되지 않고 △공수처가 기소권이 없는 사건은 수사하고도 검찰에 사건을 이첩해야 하고 △수사 대상이 너무 협소한 점 등도 문제가 있다고 평가합니다. 공수처 자문위원이었던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당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졸속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기관 운영 곳곳에 구멍이 생긴 것"이라며 "입법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할 수는 없더라도 허술한 게 너무나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공수처에 문제가 있다는 조짐도 있었습니다. 우수 인력 수급 문제는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언급이 됐었습니다. 권한과 관련해서는 '감사원 3급 간부 뇌물수수 의혹 사건'에서 검찰이 공수처에 보완 수사 요구를 할 수 있는지가 논란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공수처 편을 들어주고 일부 예산을 늘려주는 데만 그쳤을 뿐 제대로 개선하지 않았습니다. 21대 국회에서 수사관과 일반 직원 정원을 늘리고, 공수처가 기소 등을 위해 각 기관의 장에게 필요한 협조를 요청할 수 있게 하는 등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대부분 폐기됐습니다. 지난해 연말에야 공수처 검사 지원 자격의 최소 법조경력을 7년에서 3년으로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켰죠.

원하는 법안은 당론으로 설정해놓고 다수 의석으로 통과를 밀어부쳤던 행태를 생각하면 공수처의 개선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해석도 무리가 아닙니다. 참여연대 등에서 20년 넘게 공수처 설치에 투신했던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당은 공수처가 성과가 내기만을 기다렸을 뿐, 성과를 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거의 안 한 셈"이라며 "공수처를 내팽개쳤다"고 일갈했습니다.

피해당하고 나서야 깨달은 민주당의 선택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0회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쌍특검법(내란·김건희 여사 특검법), 농업4법(양곡관리법·농수산물가격안정법·농어업재해대책법·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 등 8개 법안 재의의 건이 부결되자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0회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쌍특검법(내란·김건희 여사 특검법), 농업4법(양곡관리법·농수산물가격안정법·농어업재해대책법·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 등 8개 법안 재의의 건이 부결되자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이제야 민주당은 공수처가 얼마나 허약한 조직인지를 깨달은 듯합니다. 이번 내란죄 수사에서 벌어진 촌극은 그간의 위험 신호를 무시한 결과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공수처를 폐지하는 쪽으로는 기울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옛날처럼 다시 검찰에 권한을 몰아주는 방향으로는 가지 않겠다는 겁니다.

민주당 지도부 소속 의원은 "공수처를 없애면 고위공직자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어떻게 되겠느냐"며 "검경 수사권 문제나 공수처 강화 문제가 향후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내란죄 수사 한 번 잘했다고 검찰에 대한 신뢰가 돌아오겠냐"고 말했습니다. 다만 수사권 조정에 관여했던 양홍석 변호사는 "검찰을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서 견제해야 한다는 접근 자체가 비효율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공수처를 운영할 거면 폐지하는 게 낫다"고 말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공수처 무능의 책임을 가리는 과정에서 보수 진영의 잘못을 항상 언급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보수 진영이 '공수처는 민주당의 하수인'이라며 출범부터 지금까지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공수처가 수사를 잘못할 때마다 폐지를 압박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이 출범에 혈안이 돼 공수처법 및 관계 법령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았고, 이후 내실화에도 힘을 제대로 실어주지 않았던 것도 명백해 보입니다.

민주당은 공수처의 무능과 국민의힘의 몽니만 문제 삼을 게 아니라 그 토양을 제대로 만들어줬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과반 이상 의석을 가진 정당으로서 결정권을 쥐고 있는 만큼 공수처를 폐지하지 않을 거라면 개선 절차에 착수해야 합니다. 개선이 싫으면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해봐야 합니다. 공수처는 출범 이후 국민 혈세만 연평균 200억여 원을 넘게 썼지만 성과가 전혀 없습니다. 국민들이 공수처에 거는 기대는 날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습니다. 10일 공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공수처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15%로, 22%를 기록한 검찰보다도 낮았습니다.

민주당은 공수처를 살릴지 죽일지 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든 두 번 다시 졸속 입법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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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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