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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美대사의 중량감이 주한 대사보다 높은 당연한 이유

입력
2025.01.08 04:30
수정
2025.01.08 07:44
25면

편집자주

트럼프와 해리스의 ‘건곤일척’ 대결의 흐름을 미국 내부의 고유한 시각과 키워드로 점검한다.


<20> 대사 임명의 정치적 의미

윈스턴 처칠(가운데)와 그의 며느리 파멜라 해리먼. 게티이미지뱅크

윈스턴 처칠(가운데)와 그의 며느리 파멜라 해리먼. 게티이미지뱅크

대사직 보은, 美정치의 관행
정치 안정된 유럽국에 집중
문재인, 주미대사 임명 실패

파멜라 해리먼(1920~1997)은 20세기 워싱턴 사회의 핵심 인사였다. 영국 시골 귀족의 딸이자 윈스턴 처칠의 며느리였던 영국인 남편과의 이별 후 미국인과 두 번 결혼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가의 막후실력자가 됐다.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제작자 릴랜드 헤이워드와 뉴욕 주지사였던 에이벌 해리먼과 결혼하면서 미국 시민이 되었고, 레이건과 부시로 이어진 공화당 대통령(1981-1993) 기간 민주당의 정치자금 모금 활동에 중요한 인물로 떠올랐다. 해리먼의 정치자금 모금에 감복한 빌 클린턴 대통령은 프랑스 대사직으로 보답했다.

대통령이 자신을 도운 인물에게 대사직으로 보답하는 건 미국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미국 대사직 195개 중 3분의1 가량이 정치적 요인으로 임명되는데, 대부분 정치가 안정된 유럽국가에 배정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36%를, 1기 트럼프 대통령도 미국 대사의 43%를 정치적으로 임명했다. 이번에도 트럼프 당선자는 취임 전에도 대사 후보 명단을 발표했는데, 34세 젊은이(파나마), 전직 모델(몰타), 미국 프로농구 구단주(이탈리아)가 포함됐다.

크리스토퍼 오그덴의 파멜라 해리먼에 대한 전기 '파티의 일생'

크리스토퍼 오그덴의 파멜라 해리먼에 대한 전기 '파티의 일생'

25년 전 워싱턴 정가에 첫 발검을 디뎠을 때, 외교 경험이 부족한 인물들을 대사로 보내는 관행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실제로 일부 인사는 외교적 실수를 저질렀고 몇몇은 그 때문에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2007년 스위스 주재 미국 대사의 독립기념일 파티에 초대받은 뒤 많은 생각이 바뀌었다. 당시 미국 대사는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부시 가문의 후원자였는데, 스위스 베른의 대사관저를 미국 텍사스풍의 정원처럼 꾸민 뒤 독립기념일 파티를 진행했다. 거부인 만큼 사비를 아낌없이 들여 준비한 미국 행진악대 공연과 텍사스 바베큐 레스토랑에서 가져온 고기는 파티 참석자에게 감동을 선물했다.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2012년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럽 지역의 미국 대사들은 현지 물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대사관 예산에 구애받지 않으며 외교 활동에 매년 수백만달러의 사비를 지출한다.

서울에서는 이임하는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 후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49년 이후 24명 미국 대사 중 6명만 정치적 임명직이었으며, 4명(제임스 릴리, 도날드 그렉, 마크 리퍼트, 해리 해리스)은 국가안보분야에서 깊은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필자는 지난해 11월 트럼프 차기 행정부에서 주한 미 대사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대화에서는 주한 미 대사직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모두 논의했다. 당시 논의에서는 트럼프 1기의 해리스 대사에 대한 민주당의 필요 이상의 공격이 해리스 대사의 의욕을 꺾어놨다는 분석도 포함됐다. 한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주일 미국 대사에 훨씬 중량감있는 인물이 임명된다는 불만이 제기되어 왔다. 실제로 월터 먼데일(부통령), 마이크 맨스필드·하워드 베이커(상원 다수당 원내대표), 톰 폴리(하원의장) 등이 주일 대사를 지냈다. 그러나 주일 대사와 주한 대사의 이런 차이는 두 나라의 정치적 안정성 차이 때문이다. 주한 대사는 주일 대사보다 훨씬 더 불안정하고 정치적 독성이 강한 일을 해야 하는 자리다.

이번에는 거꾸로 주미 한국 대사직을 얘기해보자. 한국의 정치적 마비 상황을 고려할 때, 주미 한국 대사관에는 후임자가 지명되지 않은 힘빠진 대사가 앉아 있다. 이와 관련, 차기 한국 정부는 문재인 정권의 실수를 답습해서는 안된다. 문 정권은 트럼프 첫 임기에 새로운 워싱턴을 탐색할 경험이 부족한 인물을 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제학자 출신의 조윤제 대사와 외교관 출신이자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던 이수혁 대사는 트럼프 혁명 이후의 워싱턴을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개인적으로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홍석현 대사 임명이 인상적이었다. 트럼프의 워싱턴에서는 홍 대사와 같은 인물이 바람직한데, 신라호텔 셰프들이 준비한 홍 대사의 만찬은 당시 워싱턴 정치 엘리트 사이에서 빠르게 회자되었다.

정치적 배경의 대사 임명은 엇갈린 결과를 낳는다. 일부 대사는 외교장관이나 국가안보보좌관 보다 대통령과 더 가까운 경우도 있다. 현재의 한국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트럼프 2기 정부가 부유한 정치자금 기부자를 대사로 보낼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정치적 격동기 이후 향후 4년 동안 한미 관계가 겪을 압박을 다룰 수 있는 숙련된 외교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주한 대사직이 주불 대사직처럼 정치적 보상으로 여겨지는 시기가 올 수도 있겠지만, 일단 현재는 아닌 것이다.

한편 서두에서 언급한 해리먼 대사의 삶은 할리우드 영화처럼 끝났다. 그는 1997년 파리의 유명한 리츠 호텔에서 수영 중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폴 공 미국 루거센터 선임연구원
대체텍스트
폴 공미국 루거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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