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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공항의 슬픔과 밥

입력
2025.01.05 15:00
수정
2025.01.05 15:1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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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달 1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에게 대접할 떡국을 끓이고 있다. 뉴스1

이달 1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에게 대접할 떡국을 끓이고 있다. 뉴스1


‘감기는 밥상머리에 내려앉는다’는 속담이 있다. 국립국어원은 ‘밥만 잘 먹으면 감기 정도는 절로 물러간다’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한국인에게 밥심이란 그렇게 대단하다. 슬픔도 밥심으로 달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요즘 부지런히 밥을 짓는다.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피해자 유족들을 위해서다.

□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무안군여성농민회 농민들은 참사 소식을 듣자마자 밥을 안쳤다. 밥 200인분에 소고기 시래깃국, 김치, 장아찌, 무나물 등을 만들어 공항에 날랐다. “마음을 모아 주는 방법이었다”고 이들은 말했다. 한국여성농업인 무안군연합회는 떡국 3,000인분을 끓였다. 지역 방앗간을 다 돌아서 산처럼 많은 떡을 구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안유성 셰프는 김밥 200줄을 말아 공항으로 향했다. 새해 첫날엔 전복죽을 쑤었다. 슬픔에 지친 유족들이 훌훌 넘기기 좋으라고 고른 메뉴다.

□ 밥풀처럼 끈끈한 밥의 연대다. 이용재 푸드칼럼니스트는 “찰기라 일컫는 밥알의 서로 달라붙는 특성은 아밀로펙틴이라는 전분 때문”이라고 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찰기를 이용해 밥을 꽁꽁 뭉친 주먹밥이 있었다. 봉쇄로 생필품이 떨어져갈 때 시장 여성 상인들을 중심으로 집집마다 아껴 뒀던 쌀을 가지고 나와 거리에서 밥을 지었다. 함께 만든 주먹밥을 시민군 트럭에 올려줬다. 광주 오월어머니들은 “추운데 밥 먹고 싸우라”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집회에 나온 사람들 손에도 주먹밥을 쥐여줬다.

□ ’가속노화로 가는 음식’이라는 이유로 밥, 특히 흰쌀밥이 괄시받는 세상이 됐다. 통계청의 국내 양곡소비량 조사 결과를 보면, 2023년 1명당 연간 쌀 소비량은 평균 56.4㎏으로 1962년 이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적었다. 그러나 공동체의 위기가 닥치자 사람들은 밥을 나눠 먹고 슬픔을 나누었다. 비탄에 빠진 이에게 닭가슴살이나 샐러드를 권하진 않는다. 탄수화물이 소화·흡수도 빠르거니와 긴 농경사회를 거치며 유전자에 새겨진 쌀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최문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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