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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광란의 폭죽'으로 새해 연 독일... 불꽃놀이 금지 논란도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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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융, 펑." "피융, 펑."
지난해 12월 31일 저녁 독일 베를린의 한 공원. 이곳에서 만난 막스(23)와 친구들은 불꽃놀이를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늘로 빠르게 솟구쳤다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터지는 폭죽부터, 땅에서 '탁탁' 소리를 내며 짤막한 불빛을 내는 폭죽까지. "슈퍼마켓에 있는 폭죽을 종류별로 사 왔다"는 막스에게서는 '묘한 자부심'마저 느껴졌다.
새해 전야 불꽃놀이는 독일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전통이자 놀이 문화다. 하지만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매년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 소음·환경 오염 등 피해도 상당해서다. 그래서 불꽃놀이가 진행될 때면 짝궁처럼 등장하는 게 불꽃놀이 금지·제한 요구다. 올해도 반복된 불꽃놀이 관련 논의를 한국일보가 독일 현지에서 살펴봤다.
매년 마지막 날 오후 6시부터 새해 첫날 오전 7시까지, 독일에서 이 시간만큼은 예외적으로 개인의 불꽃놀이가 허용된다. 독일은 원래 개인이 일정 규모 이상의 불꽃놀이를 하려면 당국으로부터 폭죽 사용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새해를 기념해 일시적으로 규제를 푸는 것이다.
이때 독일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불꽃놀이에 진심이다. 폭죽 구매 가능 기간(12월 29~31일), 폭죽을 파는 상점이 꽉 들어차는 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달 31일 찾은 베를린 한 슈퍼마켓의 계산대에는 평소보다 대기줄이 족히 5, 6배는 늘어나 있었다.
폭죽 구매를 위해 국경 너머로 여행하는 이들도 많다. '더 강력한 폭죽'을 '더 저렴한 가격'에 사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폭죽 쇼핑 맛집'은 독일과 국경을 맞댄 폴란드, 체코 등이다. 지난달 28일 독일 베를린·브란덴부르크방송(RBB)은 폴란드 서부 스우비체에 있는 폭죽 판매점 풍경을 이렇게 전했다.
"스우비체 폭죽 상점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베를린 출신 토르스텐은 '베를린에선 구매할 수 없는 구경 50㎜의 대형 폭죽 배터리를 사고자 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매자는 '최대 400유로(약 60만원)까지로 예산을 책정했는데 결국 600유로(약 90만원)를 썼다'고 했다. 스우비체 폭죽 판매점에서 일하는 엘리사 로보는 '고객 95%가 독일 출신'이라고 얘기했다."
이토록 불꽃놀이에 진심인 이유는 뭘까. 독일 '폭죽놀이 및 예술적 폭죽놀이를 위한 연방협회'의 설명은 이렇다. "①새해는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전환점인데, 이를 기념하기에 폭죽만 한 게 없다. ②중세시대부터 유럽의 많은 국가가 악령을 쫓기 위해 냄비, 북, 트럼펫, 종소리, 총성 등으로 소음을 내 왔는데 이러한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③누군가에게는 일상생활에서 잠시나마 일탈하는 계기가, 다른 누군가에겐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향유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불꽃놀이에 나선 이들의 언급도 비슷했다. 지난달 31일 아들과 함께 폭죽을 터뜨리던 아이크의 말이다. "어릴 때부터 가족과 함께 새해 전야에 폭죽을 터뜨렸어요. 일종의 전통이죠. 새해를 산뜻하게 맞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 단순 재미 목적이기도 하다. 사업가 요셉은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불꽃놀이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남들보다 더 강력한 폭죽을, 더 많이 터뜨리겠다는 경쟁심에서 희열을 느끼는 이도 적지 않다.
문제는 매년 빗발치는 폭죽 사고다. 올해에도 독일 곳곳에서 진행된 신년 불꽃놀이로 인한 사망자만 5명이었고, 부상자는 수백 명에 달했다. 사고 접수 건수는 베를린에서만 1,892건이었다.
사고 원인은 대체로 불법 폭죽이다. 최대 5만 유로(약 7,524만원)의 벌금·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데도 불법 폭죽 사용을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 관련법상 독일은 폭죽을 위험 등급에 따라 4개 범주(F1~F4)로 구분하는데, 폭발물 함유량·위험도가 높아 △당국 허가를 받아야만 구입할 수 있거나(F3) △별도 자격을 갖춘 전문가만 구매할 수 있는(F4) 제품이 새해만 되면 곳곳에서 버젓이 팔리곤 한다. 지난달 31일 17세 소년 두 명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폭죽 판매자와 접촉한 뒤 베를린 한 상점에서 불법 폭죽을 구매하려다 사복 경찰에게 적발되기도 했다고 독일 RBB24는 전했다.
폭탄이나 다름없는 이런 폭죽은 독일보다 관련 규제가 덜 엄격한 외부에서 들여오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 폴란드, 체코 등은 독일에서 불허된 폭죽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독일 경찰 및 세관이 새해를 앞두고 국경을 넘는 물품 등에 대한 검사·통제를 더 엄격히 하지만, '자유로운 국경 이동'을 톡징으로 하는 솅겐조약 가입국에서 건너오는 물자를 일일이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최근 크게 문제가 된 불법 폭죽은 일명 '공폭죽'이다. 동그란 껍질 안에 담겨 있는 다양한 폭발물이 터질 때 형형색색의 조명 효과를 내는 게 특징인데, 독일에서는 일반인의 사용이 불허된 '위험 등급 F4' 제품이다. 베를린 서부 쇠네베르크에서 주택을 36채나 파손시키기도 했다. 불꽃놀이 전문가 안드레아스 보이그트는 "공폭죽은 많은 폭발물이 빠른 시간 안에 터진다는 점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고 독일 '타게스슈피겔'에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독일 경찰이 사고 방지를 위해 매년 엄청난 인력을 투입하는데도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된다. 경찰노조 지역협의회 대변인 베냐민 옌드로는 "위험한 폭죽을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며 "어떤 이들은 효과가 무엇이든 '특수 효과'를 얻으려고 더 큰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심지어 경찰 및 소방 인력을 공격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올해 베를린에서만 경찰관 13명이 폭죽 등의 공격을 받아 다쳤고, 뮌헨·함부르크 등에서도 비슷한 보고가 잇따랐다.
부수적 피해도 적지 않다. 당장 소음 문제가 심각하다. 폭죽을 마음껏 터뜨려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 유일한 시간대여서 많은 사람이 밤새 폭죽을 터뜨리곤 하는데, 이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이들이 상당하다. 홍콩 출신 A씨는 "누군가에게는 밤샘 불꽃놀이가 즐거움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새해 첫날을 무력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폭죽이 터질 때 나오는 굉음이 상당히 크고 때로는 총포 소음을 연상케 하는 탓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도 많다.
폭죽 소음·불꽃을 동물권 저하와 연결 짓는 목소리도 적지만은 않다. "독일 전체 가구의 거의 절반인 45%가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지난해 여론조사 결과(시장조사기관 스코포스)에서 알 수 있듯, 동물친화적 국가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 11월 실시된 여론조사(데이터 제공 업체 스타티타스)에서 응답자 41%는 "동물이 두려움을 느낀다는 점에 비춰 볼 때 불꽃놀이는 무책임하다"고 했다.
실제로 독일 세계동물보호협회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독일인의 83.6%는 "새해 전날 반려동물이 불안 증상을 보였다"고 답했다. 외부에서 생활하는 동물의 경우 소음 및 불꽃에 깜짝 놀라 달아나다 부상을 입는 경우도 많다고 독일 환경지원국은 발표했다.
불꽃놀이가 끝난 뒤 쓰레기가 거리 곳곳에 방치된다는 것도 심각한 부작용이다. 1일 오전 둘러본 베를린 시내엔 폭죽 잔해가 나뒹굴었고, 잔디 등이 불꽃에 검게 그을린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기 오염의 '범인'으로도 폭죽은 지목된다. 독일에서 매년 폭죽으로 인해 약 2,050톤의 미세먼지가 배출되는데, 대부분은 새해 전야에 발생한다. 독일 전체 미세먼지 배출량의 약 1%에 해당하는 양이다.
독일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 전야 불꽃놀이를 금지 또는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베를린 경찰노조 등 35개 단체가 지난 6일 내무부에 제출한 '폭발물 전문가 아닌 일반인의 폭죽 사용을 법으로 금지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에는 약 196만 명이 서명했다. 독일 RBB24가 지난해 말 실시한 새해맞이 불꽃놀이 찬반 여론조사에서 '전면 금지 찬성' 비율은 69%나 됐다.
그러나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가 잦아드는 것도 매년 반복되는 현상이다. 많은 독일인에게 폭죽놀이는 '새해맞이 의식'이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탓이다. 과도한 규제보다는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독일 사회 특성도 불꽃놀이 전면 금지 조치가 도입되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는 '안전한 불꽃놀이 방안이라도 찾아보자'는 현실론이 커지고 있다. 사회민주당(SPD) 소속 연방의원 이리스 슈프랭어는 △불꽃놀이 전면 허용 대신 별도 허용 구역 설정 △불법 폭죽 수입 방지를 위한 국경 통제 강화 △유럽연합(EU) 차원의 폭죽 규제 강화 등을 제안했다. 소방노조에서는 일인당 구매 수량 제한 등의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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