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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군함 비유되는 코스맥스의 일본 상륙..."오히려 K뷰티가 긴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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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후네(黑船·흑선)
2023년 월간지 '일본 국제상업'은 자국 시장에 진출한 화장품·연구·개발(ODM) 업체 코스맥스를 이렇게 표현했다. 구로후네는 1853년 도쿄만에 출현, 개항을 요구한 미국 페리 제독의 함선을 가리킨다. 그만큼 일본 화장품 제조업계가 자국에 공장 부지를 확보하고 현지 생산을 준비하는 코스맥스를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 브랜드가 자국 제조사에 맡기는 화장품 위탁 생산(파운드리) 시장을 세계적 ODM 업체인 코스맥스가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4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만난 어재선 코스맥스 일본법인장은 "코스맥스는 흑선이 아니라 흑자(구로코·黑子)"라고 했다. 구로코는 일본 전통극인 가부키에서 검은 옷과 두건을 두르고 극의 진행을 돕는 존재. 코스맥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본 화장품 산업의 부흥을 돕는 파트너라는 의미다. 그는 실제 일본 화장품 제조사를 만나 "일본의 원료 개발 역량과 코스맥스의 레시피 노하우가 결합되면 JK코스메(한·일 화장품)가 전 세계를 장악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코스맥스가 일본에 법인을 세우고 영업에 나선 것은 2022년. 일본 화장품 제조업체와 달리 브랜드의 반응은 뜨거웠다. 일본에서 K팝·드라마 등이 인기를 끌며 2030을 중심으로 한국 화장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갈 때였다. 일본에서 핫한 한국 화장품은 대부분 코스맥스나 한국콜마 같은 ODM 기업이 생산한 제품이었다. 일본 색조 브랜드도 이 분야에 강한 코스맥스 힘을 빌려 부드러운 제형, 선명한 발색, 세련된 디자인 등을 갖춘 K화장품을 만들고 싶어 했다. 어 법인장은 "따로 영업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일본 브랜드에서 문의가 많이 왔다"며 "10개 중 8개는 한국에서 잘나가는 제형으로 화장품을 만들어달라고 한다"고 했다.
일례로 일본 A색조 브랜드가 코스맥스와 손잡고 2024년 하반기에 선보인 립 틴트 제품은 지금까지 100만 개 넘게 팔렸다. 원래 A브랜드는 일본 제조사를 찾아가 한국 립 틴트 제품과 같은 제형, 발색 등을 구현해달라고 요청했다. 제조사 모두 기술적 문제로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자 코스맥스 문을 두드린 것이다. 어 법인장은 "후속으로 쿠션 파운데이션도 함께 했다"고 했다. 한국이 처음 개발해 세계적 붐을 일으킨 쿠션이나 립 틴트 등은 제품력 측면에서 일본이 따라오지 못하는 분야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코스맥스 기술력을 등에 업고 일본이 빠르게 뒤쫓아오고 있는 셈이다. 현재 코스맥스재팬이 확보한 일본 고객사만 80여 개다.
이렇게 일본 브랜드의 'K뷰티화(化)'가 빨라지면서 시장 풍경도 바뀌고 있다는 게 어 법인장의 얘기다. 과거에는 한국 브랜드만 모아놓는 K코스메 구역이 따로 있었지만 지금은 이 구역에 한국, 일본 브랜드가 뒤섞여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일본 화장품이 트렌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코스맥스가 일본 제조 업체와 비교해 소량 생산도 해주기 때문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마케팅 역량을 지닌 일본 인플루언서 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인디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당초 코스맥스는 올해 도쿄 인근 이바라키현 반도시에 공장을 지어 현지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여전히 '메이드 인 재팬' 화장품을 좋아하는 일본 브랜드가 적지 않아서다. 다만 '2025년 오사카·간사이 만국박람회(엑스포)' 개최에 따른 건설비 상승에다 엔저가 겹치고 비용이 크게 증가하면서 착공이 미뤄지고 있다. 어 법인장은 "일본 현지 생산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코스맥스의 전신은 1992년 일본 화장품 제조업체 '미로토'와 기술 제휴를 통해 출발한 '한국미로토'다.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셈이다. 이에 30여 년 전 은혜를 갚는 차원에서 일본 브랜드에 우수한 품질의 화장품을 공급해야 한다는 게 이경수 회장의 지론이라고 한다. 어 법인장은 "일본 최고 ODM 회사로 자리매김해 현지 브랜드와 동반 성장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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