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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암브로시오, 회개하라"... 부패한 정치 권력 비판이 종교가 할 일

입력
2025.01.03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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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 12·3 불법 계엄 비판 릴레이
'정교 분리' 실천, 사안 따라 달라
종교인, 공공선 지킬 사회적 책무
"종교 신념 통해 통찰 제시해야"

편집자주

아는 만큼 보이는 종교의 세계. 한국일보 종교기자가 한 달에 한 번씩 생생한 종교 현장과 종교인을 찾아 종교의 오늘을 이야기합니다.

불교·천주교·개신교·원불교 등 4개 종단 종교인들이 지난달 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시국 기자회견을 열고 비판 성명을 읽고 있다. 뉴스1

불교·천주교·개신교·원불교 등 4개 종단 종교인들이 지난달 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시국 기자회견을 열고 비판 성명을 읽고 있다. 뉴스1

민주주의 국가에서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어때야 할까. 우리 헌법은 그 답을 주고 있다. '제20조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당연한 사회질서로 여겨지던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에 최근 새로운 화두가 등장했다. 12·3 불법 계엄 사태 속에서 현실 정치에 대한 종교계의 규탄이 봇물을 이루면서다. 여기에는 신도들의 가치관과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주는 종교 지도자들의 날카로운 비판도 포함됐다. 국민 대다수는 범종교적으로 표출된 비판 메시지에 지지를 보내지만 정치 이슈에 대한 성직자들의 입장 표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여전히 존재한다. 불법 계엄 사태를 둘러싼 종교계의 정치 비판은 '정치 중립'의 불문율을 깬 것일까. 아니면 양심과 정의를 추구하는 종교에 허용된 주체적 의사표현일까.

종교계 불법 계엄에 비판 성명 잇달아

천주교 대전교구가 지난달 9일 대전 중구 대흥동성당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천주교 첫 시국미사를 연 평화 대행진을 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날 대전교구 사제 100여 명과 신자 등 1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김용태 마태오 신부가 미사를 집전했다. 천주교 대전교구 제공

천주교 대전교구가 지난달 9일 대전 중구 대흥동성당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천주교 첫 시국미사를 연 평화 대행진을 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날 대전교구 사제 100여 명과 신자 등 1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김용태 마태오 신부가 미사를 집전했다. 천주교 대전교구 제공

지난달 3일 발생한 불법 계엄에 대한 규탄 성명을 가장 먼저 발표한 것은 천주교였다. 천주교주교회의는 계엄 사태 하루 뒤인 4일 의장인 이용훈 주교 명의로 "군사정권시절에나 선포됐던 계엄령을 2024년 오늘날 대한민국에 내리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결정이었는지 많은 국민이 대통령에게 묻고 있다"며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과정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나와 일련의 사태를 설명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천주교 신자 3,875명도 계엄을 주도한 윤석열 대통령을 세례명인 '윤석열 암브로시오'라고 부르며 "천주교 신자로서 너무도 부끄럽고 민망하다"면서 "스스로 하야하고 회개하라"고 했다.

개신교, 원불교, 불교 등에서도 각 종교 대표의 이름을 건 최고 수위 비판 성명이 차례로 나왔다. 개신교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총무인 김종생 목사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비상계엄 선포는 위헌"이라며 "윤 대통령은 무릎 꿇어 사죄하고 사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원불교 교정원 나상호 원장은 "윤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했고, 대한불교 조계종도 진우 총무원장 명의의 입장문에서 "국민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역사의 후퇴이며, 이번 사태에 대한 철저한 법적 판단이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내 7대 종교 대표자로 구성된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종지협)도 가세했다. 종지협은 불교, 개신교, 천주교, 유교, 천도교, 원불교, 민족종교 등 7개 종단 수장이 모인 종교협의체로, 정기적으로 대통령을 대면해 국정 현안에 대한 조언을 건넨다. 이 단체는 "국가적 혼란과 헌법 질서의 훼손 상황은 국민 모두를 고통과 불안으로 몰아넣었다"며 "헌법 기관들이 국민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법과 절차에 따른 민주적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종교 대표자를 시작으로 교단, 종단, 연합기관, 시민단체가 성명을 내고, 퇴진을 요구하는 릴레이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이후에는 천주교주교회의 등이 탄핵 가결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고, 종교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단 행동을 이어오고 있다.

"정교 분리가 정치에 무관심하란 얘기 아냐"

아시아종교평화학회, 불력회 등 종교시민단체가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자 참가자들이 108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시아종교평화학회, 불력회 등 종교시민단체가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자 참가자들이 108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판에 나선 종교인들은 이번 사태가 '정교 분리' 원칙을 논하는 범위를 벗어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념 대립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이례적으로 통일된 목소리가 분출됐던 이유다. 계엄 과정에서 위법성이 명확하고 공동체의 평화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었던 만큼 '정교 분리' 원칙과 무관하게 사회 일원인 신앙인으로서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루터교 신학자인 오세조 목사는 종교계의 릴레이 성명이 '정교 분리' 원칙을 위배한 것이 아니냐는 일부 지적에 대해 "정교 분리는 정치 권력이 종교를 이용하거나 탄압하지 말고, 종교도 정치권력에 편승하지 말라는 것이지 종교가 정치에 무관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오 목사는 "성경에도 부패한 정치 권력자에게 성직자들이 나서 날 선 목소리로 비판하는 일화가 자주 나오는데 정치 권력이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비판하고,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종교 본연의 역할"이라며 "나라가 어지럽고 정의가 훼손된 상황에서 정치 중립을 운운한다면 그 자체가 정치적 프레임"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종교 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불법 계엄 사태에 대한 입장을 내지 않은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를 두고 "지나치게 정치화됐다"는 비판이 교계 안팎에서 나오기도 했다.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침묵하는 행위가 권력자의 잘못을 방관 혹은 지지하는 정치 행위로 읽힌 탓이다. 한교총은 36개 교단이 가입한 개신교 최대 연합기구다.

천주교주교회의 공식기구인 정의구현위원회 총무 하성용 신부는 종교적 교리와 민주주의 기본원칙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 신부는 "신앙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교리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라며 "이번 사태는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인 법과 원칙에 대한 훼손이 명백하게 드러난 사건이기 때문에 비판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그는 1970~80년대 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민주화 운동에 깊숙하게 개입한 천주교 역사를 언급하며 "과거 유신·독재 정권을 거치며 우리 스스로 정치적 가치 판단을 해왔던 경험이 축적됐기 때문에 입장을 빠르게 표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종교의 선한 영향력, 주체적 목소리서 나온다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지난달 1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민주와 헌정질서 보호를 위한 긴급시국기도회를 마친 뒤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지난달 1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민주와 헌정질서 보호를 위한 긴급시국기도회를 마친 뒤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종교계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종교는 인간 존엄성, 정의, 평등, 자유처럼 인류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가치 규범이 흔들릴 때 현실 정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양심과 정의에 입각한 비판과 저항으로 시대를 초월해 선지자적 역할을 수행하는 종교와 사회적 합의와 규범에 따라 공공선을 추구하는 현대 민주주의가 만나는 지점이다.

종교인 신분으로 정치 시위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온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의 양한웅 집행위원장은 "사적 영역에 갇힌 채 공적 영역에 대해 입을 닫는 것은 진정한 종교라고 할 수 없다"며 "평화, 정의, 생명, 인권, 약자보호 등 변치 않는 종교적 신념에 근거한 메시지는 혼탁한 세상에서 종교인뿐 아니라 비종교인들에게도 방향을 제시하고 통찰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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