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성공만 좇던 순희에게 찾아온 사랑… 상대가 유령이라면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사랑이 위대한 이유는 뼛속까지 이기적인 인간을 이타적 존재로 바꿔 놓기 때문이다. 사랑의 본질은 성장이다. 사랑은 지금의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그래서 상대의 행복을 위해 헤어짐을 선택하는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한다'는 식상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게 한다. 뮤지컬 '고스트 베이커리'는 서로 다른 성격과 환경의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띠지만 결국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을 선택하는 성숙한 연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작품은 작곡가 윌 애런슨과 작가 박천휴, 소위 '윌휴' 콤비의 최신작이다. 윌휴 콤비는 '번지점프를 하다', '어쩌면 해피엔딩', '일 테노레' 등 내놓은 작품마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아 왔다. 특히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소개돼 현재 인기리에 공연 중이다. 이들의 최신작 '고스트 베이커리'는 음악 스타일은 '번지점프를 하다'와 연결되면서도, 유쾌하고 사랑스러우면서 희생을 통해 성숙한 사랑에 이르는 결말은 '어쩌면 해피엔딩'과 맥을 같이한다.
1969년 서울, 순희는 친구도 애인도 관심 없는 오직 '한국 최고 제과점'을 만들겠다는 꿈을 향해 매진하는 청년이다. 자기주장이 강한 그는 종종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일하던 나상모 제과점에서 잘리게 된다. 부모님의 유산으로 오랫동안 방치된 가게를 얻어 자신만의 제과점을 열려고 하는데, 그 가게에는 1940년대에 죽은 지박령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유령은 최초의 한국식 타르트를 만들어 인기를 얻으려는 찰나, 사고로 죽음을 맞고 심지어 자신이 개발한 타르트는 친구였던 나상모에게 빼앗기면서 원한이 쌓여 지박령으로 가게에 남은 것이다.
자신의 공간에 타인이 들어온 것이 마땅치 않은 유령과, 전 재산을 털어 얻은 가게를 포기할 수 없는 순희의 물러설 수 없는 동거가 시작된다. 유령은 순희를 통해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려고 하고, 순희는 뛰어난 파티시에였던 유령과 함께 최고의 제과점을 열겠다는 꿈을 키워 나간다. 그러나 둘은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넘버 '이상한 동업자'는 동업을 결정하고 제과점을 오픈하기까지 사사건건 부딪히는 과정을 보여주는 왈츠풍의 곡이다. 취향도 성격도 뭐 하나 맞는 것이 없지만, 물러서지 않는 성격이나 제과에 대한 애정만큼은 너무나 닮은 둘의 모습을 밀고 당기며 호흡을 맞추는 왈츠로 노래했다.
'이상한 동업자'에서 예상했겠지만 둘의 아웅다웅 다툼은 알콩달콩한 사랑으로 이어진다. 자신만 알았던 유령은 순희를 만나 누군가를 아낀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순희의 행복을 빌게 된다. 꿈 이외에 곁을 두지 않았던 순희도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유령과의 사랑을 유지하려고 한다. 손도 제대로 잡지 못해 요리 장갑을 껴야만 가능한 이들의 2인무는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애틋하다.
유령은 순희를 만나 원한을 풀고 꿈도 이루지만 그것이 또 다른 선택을 요구하는 상황으로 이끈다. 유령의 원한이 풀리면서 다른 사람 앞에 나타나는 능력이 점점 약해진다. 순희는 설사 보이지 않더라도 유령이 옆에 남아주기를 바라고, 유령 역시 순희를 향한 마음 때문에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유령은 어떤 선택을 내릴까.
'고스트 베이커리'는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를 전한다. 이런 판타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유령이 원한의 대상인 나상모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고, 보이지 않는 존재가 물건을 움직이는 마법 같은 장면을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연출한다. 극의 주요 공간인 베이커리 매장과 주방, 순희의 언니 순영의 집 등 무대 세트가 슬라이딩식으로 전환되며 이야기를 매끄럽게 전개한다.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음악은 뮤지컬만의 감동과 재미를 준다. 무엇보다도 로맨틱 코미디의 달곰함으로만 끝나지 않고 성숙한 사랑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은 여운을 깊게 남긴다.
뮤지컬 '고스트 베이커리'는 달곰하면서도 깊은 풍미가 느껴지는 갓 구운 마들렌 같은 작품이다. 극 초반 순희의 상상 장면이나 서브플롯(부차적 이야기)을 이끌어 가는 영수와 나상모의 서사가 아직은 거칠지만 창작 초연인 만큼 회를 거듭하면서 완성도를 높여갈 것이다. 윌휴 콤비의 또 다른 웰메이드 뮤지컬 '고스트 베이커리'는 2월 2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한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