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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제헌헌법 제정 때 대통령제 문제 정확히 예측했다"

입력
2024.12.28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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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부문 수상작
박혁, '헌법의 순간'

박혁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은 "더 좋은 나라, 지금보다는 나은 나라를 바라는 모든 국민이 '헌법의 순간'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류기찬 인턴기자

박혁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은 "더 좋은 나라, 지금보다는 나은 나라를 바라는 모든 국민이 '헌법의 순간'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류기찬 인턴기자

"대한민국의 첫 번째 헌법인 제헌헌법은 다른 나라 헌법을 여기저기 베낀 짜깁기 헌법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만든 졸속 헌법이라고도 하고요. 저도 그런 편견을 갖고 있어서 제헌헌법이 만들어진 과정이나 만든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거의 없었습니다."

'헌법의 순간' 저자인 박혁(53)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은 "제헌헌법을 제대로 된 헌법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편견이 깨진 건 2017년부터 여러 차례 개헌 관련 연구를 수행하다 우연히 제헌국회 회의록을 보게 되면서다. 그는 이 감동적인 순간을 책 제목으로 뽑았다. 회의록에는 1948년 제헌헌법 제정 당시 제1대 국회의원 198명이 헌법 초안을 두고 20일간 벌인 치열한 논쟁의 기록이 남아있었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회의록은 놀라웠다. 박 연구위원은 "회의록에서 제헌의원들의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 창조적 열정, 현실과 이상의 갈등, 해박한 지식,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 높은 정치적 토론 능력 등을 발견했다"고 했다. 혼자만 알기엔 아까웠다. 4년간 혼자 회의록을 정리하고, 기록했다.

그에게 '헌법의 순간'은 "제헌헌법이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거대한 뿌리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다. "연인들이 사랑이 식거나 흔들릴 때 사랑의 기억을 향해 처음 사랑의 순간으로 돌아가듯이, 우리 공동체가 위기에 처하거나 혼란할 때 돌아가봄직한 위대한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제헌의원들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당시에도 정확히 예측한 부분은 절묘하게 다가온다. 의원내각제로 당초 설계됐던 헌법 초안은 이승만 당시 임시 국회의장의 독단으로 대통령제로 바뀌었다. 이에 "내각제라면 대통령 불신임이 쉽지만 대통령제에서는 그러지 못하니 탄핵 제도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대통령의 거부권이 삼권분립을 해치고 국회를 대통령의 '자문기관'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헌의회에서 실제로 나왔다. 박 연구위원은 "그분들의 우려와 걱정이 오늘날 현실에서 드러나고 있어 땅을 칠 노릇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오늘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설계도이자 "한 나라 권위의 상징"인 헌법의 중요성을 다시 새길 때 아닐까. 그는 "이 나라의 주인인 우리는 이 나라를 어떻게 운영하고, 누구에게 어떤 책임과 의무가 있는지를 우리 스스로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는 한 개인일 뿐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입니다. 헌법을 읽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함께 한 약속을 기억하고 새기는 일이어서 아주 중요합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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