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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건진 물속 검은 봉지 정체는... 화선지에 그린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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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의 65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김동수(46) 작가의 그림책을 읽을 땐 제목만 보고 방심하면 안 된다. 무심코 책을 펼쳤다간 어떤 이야기가 당신의 멱살을 낚아챌지 모른다.
제65회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청소년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 '오늘의 할 일'도 표지만 봐서는 전혀 예측하기 어려운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한 어린이가 물가에 앉아 나뭇가지로 물속에서 무언가를 건지면서 놀고 있다. 그때, 나뭇가지에 검은 비닐봉지처럼 보이는 물체가 걸리는데 그건 사실 물귀신의 머리카락이었다. 눈 깜짝할 새 물속으로 끌려 들어간 어린이는 물귀신들에게 물을 정화할 일손이 부족하다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어린이의 손을 빌려야 할 만큼 바빠진 물귀신들의 세계는 수질 오염이 날로 심해지는 현실을 은유한다.
김 작가는 전작에서도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인간과 문명의 잔혹함을 포착해 왔다. 엄마가 건네준 오리털 패딩에서 자신의 따뜻함을 위해 다른 생물의 털을 뽑는 인간의 무자비함을('감기 걸린 날'), 달리는 차에 치여 몸이 동강 난 동물들의 사체에서 문명의 폭력성을('잘 가, 안녕') 발견한다. 그는 '잘 가, 안녕'에 대해 "운전을 시작하면서 동물의 사체를 굉장히 많이 보게 됐고 그런 이미지들이 쌓였다"며 "동물들이 저렇게 먼지가 돼 흩어지지 않고 온전한 모습으로 수습이 돼서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그렸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이런 비정한 현실을 특유의 따뜻한 시선과 기발한 방식으로 어루만지고 위로한다. '잘 가 안녕' 속 할머니는 동물들의 조각난 몸을 바늘로 꿰매주고, '감기 걸린 날'의 어린이는 패딩 속 오리털을 빼내 하나하나 다시 오리에게 심어준다.
김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컴퓨터를 일절 쓰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화선지를 사용해 전 과정을 수작업한다. '오늘의 할 일'도 화선지에 등장인물과 사물을 그리고 오린 뒤, 이를 배경용으로 만든 또 다른 화선지에 붙이는 콜라주 방식으로 작업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가 화선지를 고집하는 건 독특한 지점이다.
그는 "화선지는 똑같은 물감으로 칠해도 각 장마다 느낌이 다른,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종이"라며 "대학생 때부터 화선지에 색연필이나 수채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러다 보니 익숙해져서 다른 종이는 도전해 볼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화선지의 포근함과 귀여운 그림체는 끔찍한 장면도 부드럽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다음 책에선 죽은 아이들의 세계를 그린다. 그가 태어나기 전, 심장병을 앓다 네 살 때 세상을 떠난 큰오빠가 이야기의 발원이 됐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죽은 아이들의 힘으로만 살아가는 세상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며 "이전 세상에서는 안 좋은 일이 있었어도 그곳에서는 편안하게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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