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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수 경기는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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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 이코노미스트인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가 세계 경제의 흐름과 현안을 진단하는 ‘홍춘욱의 경제 지평선’을 3주에 1회 연재합니다.
올해 3분기(7~9월) 한국 경제는 단 0.1% 성장에 그쳤다. 그리고 12월 초 발생한 정치 혼란의 영향을 받은 4분기 성장률은 어쩌면 마이너스(-)를 기록할지도 모른다. 고환율, 저유가, 저금리 등 경제 성장에 유리한 환경이 출현했는데도 경기불황을 걱정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일단 지난해부터 플러스 행진을 계속하는 수출은 특별한 문제를 찾기 힘들다. 특히 환율 변화를 반영한 2024년 11월 수출은 7.9%의 안정적인 증가세를 기록하는 중이다. 결국 최근 성장률의 둔화는 내수, 특히 건설투자 부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올해 3분기 건설투자는 직전 분기에 비해 3.6% 감소했고,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교해 봐도 5.7% 줄어들었다. 연도별로 살펴봐도 2021년 이후 4년 연속 감소세다. 건설투자의 부진은 댐이나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 설비를 만드는 토목건설이 2021년 이후 마이너스 행진을 보이는 데다, 아파트나 오피스 건물에 대한 투자마저 최근 급격히 위축된 탓이 크다.
지난해 기준으로 건설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단 5.9%에 불과하지만, 전후방 효과가 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건설경기가 얼어붙을 때에는 시멘트나 철근 등 소재 및 부품에 대한 수요가 위축될 뿐만 아니라, 인테리어나 가구 등 다양한 소비수요도 움츠러들기 때문이다. 참고로 건설업의 취업유발계수는 9.2명으로, 농림수산업에 이어 2위권이다. 여기서 취업유발계수란 10억 원의 부가가치가 발생할 때 새로 생기는 취업자의 수를 뜻한다.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건설업 부진으로 수많은 일자리가 공중으로 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건설경기가 2021년 말을 고비로 꺾인 이유는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과 정부의 전세자금 대출 규제가 결정적이었다. 주택시장에 공급되는 유동성을 조이는 가운데, 2022년 초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심리마저 얼어붙어 지방을 중심으로 악성 미분양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줄이 끊기면서 심각한 신용경색 현상이 벌어진 것이 결정타였다.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하고 시장 금리가 치솟으니,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행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건만, 정책당국은 무사태평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이 일제히 금리를 인상하고 있던 탓에 한은의 금리인하를 기대하기 힘든 만큼, 정부가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어야 했다. 그러나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 올림픽파크포레온의 분양을 앞두고 부동산시장에 대한 규제를 풀어준 것이 고작이었다. 아래 [그림]은 2015년 이후 중앙정부의 재정 지출 변화를 보여주는데, 2022년을 고비로 갑자기 감소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경제성장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음에도 재정을 풀기는커녕 조였던 것이다.
당시 우리 정부가 재정긴축 정책을 펼친 이유는 급격한 부채 증가 때문이었다. 2015년 372조 원에 불과했던 중앙정부 지출이 2022년 682조 원으로 늘어나자, “한국도 남유럽 국가처럼 재정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공포가 부각됐던 것이다. 특히 2021년 말부터 시장금리가 상승하면서 부채의 이자지급 부담이 높아진 것도 재정긴축을 유발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2023년은 몰라도 2024년까지 재정긴축 정책을 펼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경제성장률이 2021년 4.3%를 기점으로 2.6% 및 1.4%로 내려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 정부가 재정을 망가뜨렸기에, 이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필자도 많은 부분 의견을 같이한다. 그러나 정부 재정은 국민들에 대한 필수적인 서비스 제공뿐만 아니라 경기재정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아래 [그림]은 국제결제은행(BIS)에서 발표하는 정부 및 가계, 그리고 기업의 부채 규모를 보여준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정부의 부채 규모가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국내총생산(GDP)의 40% 초반 수준에 불과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가계부채는 최근 내수 부진 속에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계와 기업 등 민간부문의 부채가 금리 인상과 건설업 부진 충격으로 가파르게 줄어들 때, 정부마저 재정 긴축 정책을 펼치면 경제는 누가 살릴까?
이상의 이야기를 들은 독자 중에 “정부부채가 너무 많으면 곤란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실제로 하버드대학 케네디 스쿨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2010년 발간한 유명한 논문에서 “국가부채가 GDP의 90%를 넘어서면 경제성장이 줄어든다”고 주장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 미국의 부채규모가 GDP의 100%를 넘어서는 상황이었기에, 로고프 교수의 주장은 당장이라도 재정을 긴축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축복 같은 소식이었다. 2010년 남유럽 재정위기가 발생했을 때, 독일이나 프랑스 등 북유럽의 나라들이 “남유럽 정부가 퍼주기식의 복지정책을 펼친 탓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강력한 재정 긴축을 요구한 것도 이 논문에 기인한 바가 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처구니없는 소식이 전해졌다. 매사추세츠대 애머스트 캠퍼스의 토머스 허든 등은 로고프 교수의 논문을 재현하려 노력했지만, 어떻게 해도 비슷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들은 로고프 교수 연구팀에 데이터를 요청했는데, 명성 높은 교수들이 아주 사소한 오류를 저지른 탓에 결론이 완전히 뒤바뀐 것을 발견했다. 즉 뉴질랜드를 비롯한 일부 국가의 통계를 잘못 처리함으로써 “국가부채가 높은 나라들의 성장률이 하락한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이 해프닝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국가부채가 높다고 해서 나라 경제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경제의 성장 잠재력, 그리고 기업들의 투자 활력이지 국가부채의 절대적인 수준만 가지고 어떤 나라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스페인과 아일랜드 그리고 그리스가 2024년에 가장 돋보이는 경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경제성장률과 근원 인플레이션, 그리고 주가 등의 다양한 지표를 가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나라의 성적을 측정하는데 독일이 23위, 프랑스가 26위에 그치는 등 북유럽 국가들이 죄다 하위권으로 떨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남유럽 국가 입장에서는 ‘역사의 복수’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 나타난 셈이다.
이와 같은 유럽의 성과 역전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특히 한국 정부는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을 크게 삭감한 바 있는데, 이는 당장의 재정지출을 줄이겠다고 나라의 미래를 파는 행동이나 다름없다고 생각된다. 부디 과거의 건전재정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신속하게 재정 지출 확대 정책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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