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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밤, 참혹과 존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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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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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대선 레이스가 한창이던 2021년 10월 22일 ‘전두환 미화 망언’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유감을 표한다”고 공개 사과한 뒤 자신의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반려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 '사과는 개나 줘라'로 해석되는 조롱성 사진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선 레이스가 한창이던 2021년 10월 22일 ‘전두환 미화 망언’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유감을 표한다”고 공개 사과한 뒤 자신의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반려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 '사과는 개나 줘라'로 해석되는 조롱성 사진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소설가 한강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면서 두 개의 질문을 떠올리곤 했다고 한다. ‘현재는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그리고 1980년 5월 광주도청 앞 YWCA에서 계엄군에 살해된, 젊은 교사 박용준의 ‘마지막 일기’를 읽고 벼락처럼 알게 됐단다. 두 개의 질문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로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을.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제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2024년 겨울, 우리는 한강의 질문에 대한 답을 목격했을 지도 모른다. 1979년 겨울 전두환 신군부의 12·12 쿠데타를 시작으로 벌어진, 그 어떤 사소한 일도 여태 돌이킬 수 없었지만 45년간 우리를 찌르고 아프게 한 우리 양심은 윤석열 대통령의 12·3 내란을 막아세웠다.

1980년 5월 27일 광주 YWCA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산화한 박용준 열사. 들불열사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캡쳐

1980년 5월 27일 광주 YWCA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산화한 박용준 열사. 들불열사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캡쳐

□2025년 서울의 봄은 1980년의 그것과 다를 수 있는가. 정권의 ‘양심’은 여전히 수취인 불명이다. 윤 대통령 측은 “예고하고 하는, 2~3시간 만에 그만두는 내란이 어딨냐”고 자락을 깔더니,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헌재 탄핵 심판에서 살아 돌아오면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도모한다. “성품이 선하고, 자신 안에 갇힌 사람이 아니”란다. 국민의힘은 탄핵에 찬성한 ‘배신자’ 의원 색출에 나섰다.

□‘학살자’ 전두환은 사과하지 않았다. 만 90세 천수를 누리고 떠났다. 27만 원이 전 재산이라고 했지만, 1996년생 손자 전우원은 연희동 비밀 금고방에 1,000만 원 단위 현금 다발이 벽면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재판 출석은 거부했지만, 매달 첫 주 목요일 골프장을 찾아 누구보다 영민하게 자신의 타수를 셈했다. 12·12 군사 반란 40주년엔 정호영 전 특전사령관 등과 ‘성공한 쿠데타’를 자축했다. 과연 윤 대통령의 셀프 쿠데타는 실패했는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동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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