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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밤, 참혹과 존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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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소설가 한강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면서 두 개의 질문을 떠올리곤 했다고 한다. ‘현재는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그리고 1980년 5월 광주도청 앞 YWCA에서 계엄군에 살해된, 젊은 교사 박용준의 ‘마지막 일기’를 읽고 벼락처럼 알게 됐단다. 두 개의 질문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로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을.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제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2024년 겨울, 우리는 한강의 질문에 대한 답을 목격했을 지도 모른다. 1979년 겨울 전두환 신군부의 12·12 쿠데타를 시작으로 벌어진, 그 어떤 사소한 일도 여태 돌이킬 수 없었지만 45년간 우리를 찌르고 아프게 한 우리 양심은 윤석열 대통령의 12·3 내란을 막아세웠다.
□2025년 서울의 봄은 1980년의 그것과 다를 수 있는가. 정권의 ‘양심’은 여전히 수취인 불명이다. 윤 대통령 측은 “예고하고 하는, 2~3시간 만에 그만두는 내란이 어딨냐”고 자락을 깔더니,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헌재 탄핵 심판에서 살아 돌아오면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도모한다. “성품이 선하고, 자신 안에 갇힌 사람이 아니”란다. 국민의힘은 탄핵에 찬성한 ‘배신자’ 의원 색출에 나섰다.
□‘학살자’ 전두환은 사과하지 않았다. 만 90세 천수를 누리고 떠났다. 27만 원이 전 재산이라고 했지만, 1996년생 손자 전우원은 연희동 비밀 금고방에 1,000만 원 단위 현금 다발이 벽면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재판 출석은 거부했지만, 매달 첫 주 목요일 골프장을 찾아 누구보다 영민하게 자신의 타수를 셈했다. 12·12 군사 반란 40주년엔 정호영 전 특전사령관 등과 ‘성공한 쿠데타’를 자축했다. 과연 윤 대통령의 셀프 쿠데타는 실패했는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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