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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으로 그린 자연'… 현대 풍경화 뿌리에 폴 세잔이 있었다

입력
2025.01.02 04:30
20면

<16>풍경화의 비밀(10) : 현대를 이끈 풍경화

편집자주

좋은 예술 작품 한 점에는 질문이 끝없이 따라붙습니다. '양정무의 그림 읽어드립니다'는 미술과 역사를 넘나들며 대중과 함께 호흡해온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여러분의 '미술 지식 큐레이터'가 되어 그 질문에 답하는 연재입니다. 자, 함께 그림 한번 읽어볼까요.

아름다운 자연이 담긴 풍경화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곳곳에 비밀스러운 문화 코드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당시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일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부자연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풍경화 속엔 읽을 것이 넘쳐난다. 미술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해 줄 풍경화 명작을 골라 10회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몽 생트 빅투아르산의 모습. 해발 1,011m로, 고대 로마 군대가 이 산 근처에서 거둔 큰 승리를 기념한 이름이다. 위키피디아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몽 생트 빅투아르산의 모습. 해발 1,011m로, 고대 로마 군대가 이 산 근처에서 거둔 큰 승리를 기념한 이름이다. 위키피디아

미술사에서 유명한 명산을 이야기할 때 '몽 생트 빅투아르'를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1,011m로 높지 않지만 평지 위에 우뚝 솟아 있어 당당해 보인다. 무엇보다 울퉁불퉁한 암반으로 이뤄진 정상부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 일렁거리는 느낌을 주어 신비롭다.

몽 생트 빅투아르가 미술사적으로 기념비적인 지위를 얻게 된 데에는 이 지역 출신 화가 폴 세잔(1839-1906)의 노력이 크다. 세잔은 이 산의 매력에 빠져 80점 이상의 몽 생트 빅투아르 연작을 남겼다. 특히 이 연작을 통해 세잔은 큐비즘을 예견하는 자신만의 독창적 회화 세계를 이뤄낸다. 이렇게 세잔의 후기 화풍을 유도하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큐비즘까지 견인하기 때문에 몽 생트 빅투아르는 미술사 관점에서 보면 에베레스트에 견줄 기념비적인 산이라고 부를 만하다.

세잔과 몽 생트 빅투아르

폴 세잔의 '소나무가 있는 몽 생트-빅투아르'. 런던 코톨드 갤러리 소장. 위키피디아

폴 세잔의 '소나무가 있는 몽 생트-빅투아르'. 런던 코톨드 갤러리 소장. 위키피디아

세잔은 엑상프로방스에서 부유한 은행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미술가가 되고자 하는 뜻이 더 컸던 세잔은 법학을 버리고 미술 공부를 위해 파리로 떠났다. 1861년부터 10년간 파리에 머물며 카미유 피사로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작품을 제작했으나 눈에 띄는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1870년 보불전쟁이 발발하면서 세잔은 파리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후 고향과 근처 바닷가 레스타크를 오가며 풍경화에 집중했다.

'소나무가 있는 몽 생트 빅투아르'는 그가 이때 그린 풍경화다. 먼저 화면 왼쪽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오른쪽으로 마을과 벌판이 자리한다. 화면 중앙엔 몽 생트 빅투아르가 버티고 있는데, 근경은 초록과 노랑의 따뜻한 색조이고, 배경의 산과 하늘은 차분한 파란색 톤으로 그려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짧은 붓터치를 치밀하게 사용하고, 화면 전체에 붉은색을 넣어 통일감을 주고 있다.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오른쪽 멀리 증기 기관차가 연기를 뿜으며 아치로 만들어진 다리를 가로지르면서 적막을 깨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앞쪽 집들의 표현에서 보여준 규칙성이다. 화면 속 집들은 규격화된 모습으로 단순한 기하학적 입방체로 보인다. 훗날 그는 "자연의 모든 것은 원구, 원뿔, 원기둥으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세잔은 자연을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형태의 기본 원리를 찾아내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을 되새기며 방금 본 풍경화를 다시 보면 확실히 소나무는 원기둥으로 보이고 산은 원뿔로, 집과 벌판은 사각형 입방체에 가깝게 보인다. 이러한 시각 효과는 그가 1892~1895년께에 그린 '몽 생트 빅투아르'에 더욱 잘 드러나 있다. 전면의 집들은 정육면체를 닮아 있고, 나무들은 원구처럼 보인다. 중앙의 몽 생트 빅투아르는 원뿔처럼 탄탄히 부풀어 올라와 있다.

세잔이 보여 주는 이 같은 기하학적 규칙성은 색채와 대기 효과를 강조하는 인상주의와 확실히 구별되기 때문에 그는 후기 인상주의자로 불린다. 그리고 그의 이 같은 관심은 곧바로 등장하는 큐비즘, 즉 입체주의의 등장에 중요한 자극제가 된다.

브라크와 피카소, 세잔 영향받은 입체주의 화가

폴 세잔의 '레스타크에서 바라본 마르세유 만'. 아트 인스티튜드시카고 소장. 위키피디아

폴 세잔의 '레스타크에서 바라본 마르세유 만'. 아트 인스티튜드시카고 소장. 위키피디아

세잔의 생애 말기인 1906년 파리에서 열린 살롱 도톤전 같은 큰 전시에 세잔의 작품이 소개된다. 이 전시를 보러온 젊은 작가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1882-1963)는 세잔의 작품에 크게 매료된다. 이후부터 두 작가는 세잔에게서 영향을 받아 형태를 단순화하고 기하학적 형태로 재구성하는 작업에 몰두한다. 두 화가에게 세잔의 영향력은 1907년부터 1909년까지 3년간 지속되는데, 이 시기를 '세자니즘' 또는 '세잔 화풍의 큐비즘'이라고 부른다.

이때 브라크는 세잔의 작품에 크게 매료된 나머지 세잔의 작품 세계를 직접 보기 위해 엑상프로방스의 레스타크로 향했다. 브라크의 초기 입체주의 작업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레스타크의 다리'가 바로 이렇게 해서 그려진다. 세잔의 '레스타크에서 바라본 마르세유 만'과 비교해 보면 브라크가 짧은 붓터치뿐만 아니라 기하학적 건물의 형태 등에서 세잔을 따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르주 브라크의 '레스타크의 바다 풍경'. 카르멘 티센 컬렉션 소장. 위키피디아

조르주 브라크의 '레스타크의 바다 풍경'. 카르멘 티센 컬렉션 소장. 위키피디아

한편 브라크는 더 대담한 시도를 보여 주는데, 아치로 이뤄진 다리의 경우 위로 올려다보는 시점에서 그려진 반면, 앞쪽 건물들은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건물들이 뒤섞여 있다. 흥미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피카소도 비슷한 실험을 하고 있는데, '언덕 위의 집'에서도 단순한 기학적 형태와 다시점적 표현이 시도되고 있다.

브라크는 1907년부터 본격화된 자신과 피카소의 교류를 ‘산악 등반을 하기 위해 각자 로프를 매고 올라가며 서로 도와주는 동반자적 입장’으로 비유할 만큼 이 시기 두 화가의 교류가 컸다. 이때 두 작가 모두 세잔의 영향을 받으면서 기하학적 형태 표현에 집중하면서 대신 색채를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브라크는 노란색과 초록색, 피카소는 회색조를 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당시 주목받고 있던 야수파의 화려한 색채와 강한 대조를 이룬다.

브라크는 세잔의 작품에 열광하기에 앞서 앙리 마티스의 야수파의 강렬한 색채에 매료됐던 시기를 거쳤다. 브라크가 1906년에 그린 '레스타크의 바다 풍경'을 보면 야수파 특유의 독특한 색채 표현이 두드러진다. 그가 마티스의 색채를 벗어나 형태로 관심을 전환하는 데 세잔의 영향력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조르주 브라크의 '레스타크의 다리'. 프랑스 퐁피두 센터 소장. 위키피디아

조르주 브라크의 '레스타크의 다리'. 프랑스 퐁피두 센터 소장. 위키피디아


몽 생트 빅투아르를 사랑한 피카소

파블로 피카소의 '언덕 위의 집'. 베르그루엔 박물관 소장. 위키피디아

파블로 피카소의 '언덕 위의 집'. 베르그루엔 박물관 소장. 위키피디아

세잔의 영향력이 브라크에게 좀 더 커 보이지만, 길게 보면 피카소가 더 깊은 애정을 세잔에게 보여 준다. 피카소는 1959년에서 1962년 사이에 몽 생트 빅투아르 산기슭에 자리한 성을 구입해 이사 온 후 생애 마지막을 이곳에서 보낸다. 그리고 그의 무덤도 몽 생트 빅투아르에 마련한다.

피카소는 자신의 마지막 시간을 세잔의 고향에 머물면서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세잔의 화업을 다시금 돌아보고, 세잔의 작품을 수집까지 한다. 엑상프로방스에 가면 세잔의 작업실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서 조금 걸어 나가면 몽 생트 빅투아르가 환히 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여기에서 바라본 몽 생트 빅투아르의 풍경은 일품이다. 이렇게 세잔의 마지막 작업실과 피카소의 마지막 안식처가 모두 몽 생트 빅투아르를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근대 실험미술에서 이 산이 지니는 의미가 한층 더 남다르게 다가온다.


양정무의 미술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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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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