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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수 위원장 "계엄의 밤, 국회 앞 집결 지침 내려···체포 대상 알고 섬찟"

입력
2024.12.23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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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인터뷰]
"탄핵 정국, 사회변화 동력으로 삼아 나가야"
"남북교류·재벌문제 해결·정치 다양화 과제"
"삼성·현대차 보라. 노조 있는 곳 성과 좋아"
"투쟁과 대화 병행하며 확장성 갖춰갈 계획"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12월 3일 그날 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국회의사당 앞에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TV로 보고 조합원들에게 "국회 앞으로 모이라"는 긴급 지침을 내린 뒤 국회로 뛰어왔다. 전쟁 같던 그 시간, 자신도 계엄군의 표적(체포 대상)이라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만난 양 위원장은 "불법 계엄 사태로 촉발된 탄핵 정국과 광장의 열기를 단순히 정권 교체로 소비해선 안 되며, 새로운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 투쟁' 이미지에 갇혀 있던 민주노총이 사안에 따라 강력한 투쟁과 사회적 대화를 함께하는 더 강한 노조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도 다졌다.

다음은 양 위원장과 일문일답.

-불법 비상계엄이 선포된 밤 어떻게 행동했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현장 집회 사회를 도맡았다. 대형 스피커를 챙겨와 시민들의 목소리를 국회의사당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중에) 계엄군이 체포 대상들을 벙커에 가두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동부구치소 독방을 비워놨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노동자 대표를 체포하려 한 것 자체가 굉장히 분노스럽고 섬찟한 복합적 감정이 들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19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과 한국사회 대개혁을 위한 민주노총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뉴시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19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과 한국사회 대개혁을 위한 민주노총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뉴시스

-탄핵 이후 요구되는 사회적 변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3대 과제가 있다. 민주노총은 탄핵의 광장에서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재벌 독점구조 해결, 정치의 다양성 확보(양당 중심 정치구조 해소)가 사회를 안정시키는 핵심이다. 우선 남북관계를 보면, 문재인 정부 때만 해도 남북노동자교류가 있었다. 2018년에는 북한 조선직업총동맹(직총)이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방문해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축구대회를 열었다. 윤석열 정권에선 모든 교류가 막혔다. 노동자들이 서로 교류하는 것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재벌 문제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상속세 인상이 핵심이다. 윤석열 정권은 상속세 최고 세율을 기존 50%에서 40%로 낮췄다. 초고소득자인 재벌에 대한 상속세를 높여야 편법 증여도 막을 수 있다. 대기업은 오너 일가의 개인 기업이 아니다. 수많은 자본과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녹아 있는 자산이다. 더 이상 기업을 사유물로 여기고, 오너 한 사람의 자질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결정되는 경제 시스템은 안 된다.

기업 노조활동도 더 보장돼야 한다. 삼성전자를 보라. 무노조가 제1원칙이던 삼성전자가 요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영·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요구가 경영진에 더 많이 전달됐다면 대외적 환경 변화에 더 빠르게 대응했을 거다. 노조가 경영을 망친다는 주장도 있다. 그말이 사실이라면 현대기아차는 벌써 망했어야지 왜 잘나가나. 독일 자동차 회사나 북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세계 최고 자리를 지킬 수 있겠나.

한국 노조 조직률은 13% 수준이다. 대기업 조직률은 30%지만 30인 미만 기업은 0.1%에 불과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시킨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을 하루빨리 재추진해 노조할 권리를 확대하고 사측의 손해배상 폭탄을 방지해 노조를 보호해야 한다."

-정치적 다양성 확보 방안은.

"양당 독점 정치구조는 대통령 결선제 하나만 도입해도 엄청나게 바뀔 수 있다. 초박빙 상황에서 대통령 결선제가 치러지면 그만큼 소수정당의 입지와 목소리가 커질 공간이 생긴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도 고려할 수 있다. 개헌처럼 거시적인 논의에 앞서 비례대표에게 다양한 정당 지지만 제대로 표출돼도 정치는 변한다."

서울 중구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사무실에 놓여 있는 남북 노동자 교류 축구대회 사인 공. 송주용 기자

서울 중구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사무실에 놓여 있는 남북 노동자 교류 축구대회 사인 공. 송주용 기자

-민주노총 내부에서 투쟁 중심 운영의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미지 변화의 필요성은 초창기에도 있었을 거다. 다만 시민들이 민주노총에 요구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강하게 싸우는 모습이다. 이번 탄핵 때도 민주노총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집회 시위의 길을 열었고, 시민들은 응원했다. 젊은 사람들은 '집회에서 안전하려면 민주노총 아저씨들 따라다니면 된다'고 하더라. 조직된 노동자는 조직된 노동자의 길이 있다. 민주노총은 시민단체나 정당처럼 갈 수 없다.

다만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다. 모든 집회가 강력한 투쟁에 기반할 필요는 없고, 모든 구호가 원칙적이고 원론적일 이유도 없다. 격렬하게 투쟁하다가도 대화가 필요한 사안엔 부드러워질 수 있다. 사안과 조건에 따라 유연하고 확장성 있게 나아갈 것이다."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일자리정보 게시판 앞에서 한 구직자가 일자리정보를 살펴보는 모습. 뉴시스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일자리정보 게시판 앞에서 한 구직자가 일자리정보를 살펴보는 모습. 뉴시스

-노동 현안이 많다. 우선 정년연장에 대한 입장은.

"정년연장에 대한 민주노총 내부의 전반적 공감대는 있다. 다만 근본적으로 노동자가 더 오랜 시간 노동을 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고민이 있는 거다. 또 정년연장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의 임금이 낮아지고 해고가 쉬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실제 기업들은 노동자가 퇴직한 이후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으로 다시 취업하는 재고용 방식을 선호한다.

민주노총은 그런 식의 정년연장에 단호히 반대한다. 원래 받던 월급과 복지혜택, 고용 안정성을 그대로 보장받는 것이 정년연장의 전제 조건이다. 특히 경영계에서 정년연장 조건으로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 임금피크제 도입도 당연히 반대다. 지금도 노인빈곤율이 30%를 웃돌고 있다.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월급을 깎으라는 것은 현재의 노인빈곤을 그대로 방치하자는 말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단계적 적용 주장도 있는데.

"단계적 적용은 안 된다. 모든 5인 미만 사업장에 전면 적용해야 한다. 꼭 이런 논의를 할 때면 자영업자, 소상공인에게 경영난이 온다, 실업률이 높아진다는 공포 마케팅이 나온다. 노동자 관점에서 보자. 휴일, 야간에 일 시켰으면 당연히 수당을 줘야 하는 거다. 휴가를 갈 수 있는 권리는 큰 기업 종사자든, 작은 기업 종사자든 누구나 똑같이 누려야 한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선인데 작은 기업에 다닌다고 사각지대에 방치하는 것은 노동자를 사람 취급 하지 않는 행태다.

실제 노동현장에선 '위장 5인 미만 사업장'도 넘쳐 난다. 한 사무실에서 8명이 일하는데 남편과 부인이 각각 다른 법인을 세워 소속 노동자는 4명, 4명으로 쪼개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이 사람들은 사실상 같은 회사에 다니지만 법의 허점으로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주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말자는 주장도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노동자 보호 조치도 당연히 적용돼야 한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 특히 백인이 아닌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후진국에서 온 허드렛일하는 사람쯤으로 여긴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노예 같은 노동환경에 놓여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먹고 자고, 씻을 곳도 없는 반인권적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주노동자 100만 명 시대다. 제도적으로 이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20주년을 맞은 고용허가제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당장 폐기해야 한다. 물론 이주노동자가 무분별하게 들어오면 한국인의 고용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다만 현재 고용허가제는 노동자로서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 있어 반인권적이다. 또 한 번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처음 계약을 맺은 사업장을 떠나지 못한 채 발이 묶이고 일할 수 있는 업종도 제한적이다. 고용허가제 대신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와 세금도 내게 하고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해선 교과 과정의 변화도 중요해 보인다.

"교과서에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를 반드시 담아야 한다. 현재 교과과정은 노동에 대한 교육이 사실상 전무하다. 민주노총은 '학교부터노동교육운동본부'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교육과정 총론에 노동을 담으려고 노력했고 법제화 노력도 하고 있다. 그 결과 교육과정 총론에 '노동'이 들어갔는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용어가 '일'로 바뀌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년부터 특성화고교에선 선택과목으로 '노동인권과 산업안전'을 배울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별도의 노동과목이 생긴 것은 처음이다. 노동 관련 교육을 일반고교까지 확장해야 한다. 또 초중고교 각각 수준에 맞는 노동 교육을 교과 과정에 담아야 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면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는데 노동자의 권리는 무엇인지, 근로계약서를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민주노총은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할 건가.

"사회적 대화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처럼 기구를 통한 합의가 전부는 아니다. 한국 사회는 늘 특정 기구를 만들어서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도장을 찍는 방식으로 대화가 이뤄진다. 이런 대화기구는 하나의 채널일 뿐이다. 정부나 국회가 균형추 역할을 하면서 노사 간 대화가 폭넓게 이뤄지는 다양한 대화가 필요하고 민주노총도 그 안에서 역할을 찾겠다."

-민주노총이 주도한 신당 창당 목소리도 있던데.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긴 어렵다. 사실 선거 일정이 당분간 없었기 때문에 2026년 지방선거를 목표로 논의와 고민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선 정국이 펼쳐지게 됐다. 지난 대선에선 민주노총이 텐트를 치고 진보정당이 모두 들어와 연합하는 방식도 제안을 했었다. 어떤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할 것인가는 모든 방식을 열어놓고 논의를 시작해보려 한다."

송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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