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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기 꺼린 바이어들이 눈앞에 둔 계약 미루자는 데 어떡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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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권의 종합 철강 분야 수출 중견 기업인 'W철강' 대표 정모(62)씨는 '계엄·탄핵' 날벼락에 따스한 연말을 포기했다. 연말에 최종 계약을 앞두고 있던 동남아 수출 두 건 모두 일정이 내년으로 미뤄져서다. 9일 정씨는 "우리는 동남아 업체를 상대로 여러 종류의 철강을 취급해 수출하고 있다"며 "보통 최종 계약 전에 바이어들이 공장, 제품을 실사하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뒤로 동남아 바이어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걸 상당히 꺼리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정씨는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도 폐기되고 계속 정국 불안이 이어져서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으로 미뤄둔 계약 일정을 제대로 이어나갈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불법 비상계엄에서 촉발된 정치 불안이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며 국내 기업들이 대내외 복합위기에 맞닥뜨렸다.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해외 협력 업체들의 한국행 출장이나 행사, 계약이 연기되고 있다. 수출입 기업들은 탄핵 이슈와 원·달러 환율 급등에 따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규모가 큰 해외 기업들은 우선 연말 국내 방문을 취소하고 있다. 스웨덴 항공방산 기업 '사브(SAAB)' 경영진들이 5일 열린 '한·스웨덴 전략산업 서밋'에 참석하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사브 경영진은 3일 일본에 머물다 4일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었지만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본국인 스웨덴으로 행선지를 바꿨다.
외국계 기업들은 한국 내 제품·서비스 출시 연기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업 홍보대행업체 관계자는 "계엄 사태가 탄핵 이슈로까지 번지면서 지난주 해외 고객사가 자사의 IT 서비스를 계획대로 내년 1분기(1~3월)에 출시해도 될지 문의했다"며 "국내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도 연말 제품 론칭 행사나 기자간담회 시기를 미룰지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후폭풍은 두산그룹 사업 재편에까지 미치고 있다. 계엄 사태 후 윤석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원전 관련주가 폭락하면서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의 분할합병이 불투명지면서다. 두산은 두 회사 합병 과정에서 두산에너빌리티가 가진 두산밥캣 지분 46.1%를 두산로보틱스로 이전하는 안을 추진했고, 이를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가가 2만890원 이하로 떨어지면 주식을 사주겠다는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했다. 한데 2만 원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던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계엄 사태 직후인 4일 1만9,000원으로 주저앉았고, 국회 탄핵안이 부결된 후 거래소가 열린 9일 1만7,380원에 마감됐다. 이에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은 10일 기준 두산에너빌리티 주가가 2만890원보다 높은 경우에만 합병에 찬성하기로 했다. 하루만에 주가가 20% 폭등해야 하기 때문에 시장은 사실상 국민연금이 기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을 승인받는다고 해도 국민연금 등 주주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게 이득이라 그룹 입장에선 막대한 재무 부담을 지게 된다. 회사가 정한 주식 매수 한도는 6,000억 원이다.
삼성, SK, 현대차 등 주요 그룹들은 원·달러 환율 급등에 따른 여파를 긴급 점검하고 있다. 주요 그룹사 관계자는 "수출 기업 대부분이 원자재는 수입하기 때문에 수출 물량이 많다고 해서 환율 급등이 반가운 게 아니다"라며 "최악은 급등, 급락 등 환율 변동 폭을 예측하기 어려워 방어 전략을 짜지 못할 때인데 지금이 그렇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 투자를 진행해 온 기업들이 환율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조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법을 발표한 후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약 24조2,000억 원)를, SK하이닉스는 38억7,000만 달러(약 5조5,000억 원)를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단순 계산하면 삼성전자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 1,700억 원의 투자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그나마 '계획만 세운' 반도체 회사의 형편은 나은 편이다. 이미 미국에 큰돈을 투자한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회사들은 달러 부채 규모가 상당해 환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대기업 임원은 "기업들이 가장 걱정했던 건 국회 탄핵안이 부결돼 불확실성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었다"며 "설마했던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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