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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별도 사도광산 추도식', 10분 만에 끝… 일본 무성의에 항의는 없었다

입력
2024.11.25 19:30
수정
2024.11.25 21:1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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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한국인 추도식' 따로 열었지만
한국 정부, 일본에 항의·비판 없이 침묵만
"한국 불참 아쉽다"... 日 정부는 적반하장
교도 "이쿠이나 야스쿠니 참배 보도 잘못"

박철희(오른쪽 두 번째) 주일본 한국대사가 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내 과거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기숙사 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읽고 있다. 사도=류호 특파원

박철희(오른쪽 두 번째) 주일본 한국대사가 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내 과거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기숙사 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읽고 있다. 사도=류호 특파원

한국 정부가 25일 일제강점기 사도광산 강제동원 희생자 추도식을 일본 현지에서 별도로 개최했다. 전날 일본 사도시에서 열린 공식 추도식에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인사를 일본 정부가 대표로 참석시키자, 한국 정부가 항의의 뜻으로 불참하며 파행을 빚은 탓에 급조된 자리였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서도 과거사 반성 없는 일본을 비판하는 한국 정부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10분 만에 끝났다. 한국 정부가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이, 일본 정부는 오히려 "한국 측 불참이 아쉽다"며 전날 '반쪽짜리' 추도식의 책임을 한국에 돌리는 적반하장 모습을 보였다.

"강제동원돼 가혹한 노동... 한국인 노동자 애도"

주일본 한국대사관은 이날 오전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을 열었다. 유가족 9명과 박철희 주일본 한국대사를 비롯, 약 30명이 참석했다.

당초 한국의 '별도 추도식'이 계획돼 있지는 않았다. 한국은 지난 7월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해 주는 대신, 매년 조선인 등 희생자 추도식을 열기로 일본 정부와 합의했다. 그러나 추도식 개최 사실은 행사 나흘 전(20일)에야 발표됐다. 게다가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 전력이 있다고 보도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을 정부 대표 참석 인사로 결정했다. 심지어 전날 추도식에서도 일본 측은 희생자 추모보다는 '감사' '기쁨' 등의 표현을 쓰며 마치 '세계유산 등재 기념식'처럼 진행했다.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한 것이다.

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 중 한국 측 유족과 참석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사도=연합뉴스

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 중 한국 측 유족과 참석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사도=연합뉴스

이 때문에 한국의 추도식은 전날과 달리,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희생자들 일터인 사도광산과 2㎞ 떨어진 산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열린 만큼, 참석자들은 굳은 표정을 한 채 두 손을 모았다. 유족 중 한 여성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또 다른 유족은 "돌가루를 많이 마셔 고통받았던 아버지의 (희생) 현장을 볼 수 있었다"며 애통해했다.

일본의 뒤통수에 한국 정부는 '침묵'만

박 대사는 추도사에서 "80여 년 전 사도광산에 강제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지쳐 스러져 간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영령에 머리 숙여 깊은 애도를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이어 "사도광산의 역사 뒤에는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것으로 끝이었다. 오전 9시 5분쯤 시작된 추도식은 10분 만에 종료됐다. 한국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 박 대사는 추도사 낭독 후 입을 굳게 다물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느냐'는 취재진의 항의에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만 남긴 채 자리를 떴다.

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린 과거 강제동원 조선인 노동자 기숙사 터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머문 곳'이라는 내용이 적힌 '제4상애료' 푯말이 설치돼 있다. 사도=류호 특파원

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린 과거 강제동원 조선인 노동자 기숙사 터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머문 곳'이라는 내용이 적힌 '제4상애료' 푯말이 설치돼 있다. 사도=류호 특파원

한국 외교부는 한술 더 떠 "일본과 소통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시간을 두고 천천히 평가해 입장을 정리하겠다"며 "어떤 내용으로 소통하는지는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군함도 사태에 이어, 일본이 거듭 '뒤통수'를 치는데도 항의나 비판 없이 침묵을 지킨 것이다.

일본 정부는 되레 추도식 파행을 한국 탓으로 돌렸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날 "정부는 지역과 협력해 한국과 정중히 소통했는데 한국 측이 불참해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추도식 자체는 문제가 없었고, 일본의 책임도 없다고 강조한 셈이다.

"참의원 취임 이후엔 참배 안 했다" 인정돼

일본의 이런 태도에 대한 비판은 현지에서도 나온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아사히신문에 "이쿠이나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여부는 한국 입장에선 민감한 요소로, 일본의 배려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아라이 마이 사도 시의원도 "일본 정부에 휘둘린 것으로 다시는 이처럼 부끄러운 행동을 해선 안 된다"고 성토했다.

다만 이쿠이나 정무관의 '2022년 8월 15일 야스쿠니 참배'를 최초 보도한 교도통신은 "(2022년) 참의원이 된 이후엔 야스쿠니 참배를 하지 않았다"는 그의 해명을 받아들여 해당 보도를 '잘못된 보도'라고 인정했다. 이와 관련, 한국 외교부는 구체적 설명 없이 "교도통신에서 (이쿠이나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여부에 관한 정정 보도를 낸 것으로 안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우리 정부의 추도식 불참 결정은 제반 사정을 고려한 것"이라는 입장만 짧게 밝혔다.

사도= 류호 특파원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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