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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서 충전해야겠다"는 예민한 아이도 있다...어린이는 납작한 존재가 아니니까

입력
2024.11.15 15: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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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진 시인 동시집 '삼각뿔 속의 잠'

동시집 '삼각뿔 속의 잠'에 수록된 '바람이 불지 않아서'. 문학동네 제공

동시집 '삼각뿔 속의 잠'에 수록된 '바람이 불지 않아서'. 문학동네 제공

내 눈은 고성능 카메라야/ 미세한 표정 변화도 놓치지 않아

내 귀는 고성능 음성 증폭기야/ 아주 작은 소리도 크게 들려

내 신경은 고성능 안테나라서/ 사람들 기분을 살피느라 늘 곤두서 있어

임희진 시인의 동시집 ‘삼각뿔 속의 잠’에 실린 동시 ‘예민한 아이’ 중 일부다. 대개 동시에는 당차고 씩씩한 아이들이 등장하고, 간혹 소심하고 부끄러움 많은 아이들이 나온다. 사람들의 기분 살피느라 늘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금세 방전되고, 먼저 집에 가서 충전하겠다는 어린이는 동시의 세계에선 드물다. 어른도, 아이도 예민함은 감추고 둥글둥글 무던하게 사는 게 미덕인 사회라서다. ‘예민한 아이’는 자신의 예민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건 나의 수많은 특징 중 하나일 뿐이니 당연히 고칠 필요도 없다.

동시집 '삼각뿔 속의 잠'에 수록된 '숭어'. 문학동네 제공

동시집 '삼각뿔 속의 잠'에 수록된 '숭어'. 문학동네 제공

수록작 ‘숭어’에는 조용히 앉아서 책만 읽는 시들한 풀같은 어린이가 나온다. 그 아이가 연극을 한다기에 돌이나 나무 역할을 맡겠거니 했는데, 아이는 무대에서 숭어처럼 팔딱거린다. 생일 파티 초대 문자에 이모티콘도 없이 온 'ㅇ' 답장에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어린이('무표정한 ㅇ'), 하루종일 크고 작은 도움을 요청하는 가족들에게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은 나"라고 말하는 어린이('대여 불가'), 바람이 불지 않아서 내가 달렸다는 어린이('바람이 불지 않아서')도 임 시인의 동시집엔 나온다. 어른들은 '순수하다' '귀엽다' '미성숙하다' 같은 납작한 틀에 아이들을 욱여넣지만, 임 시인은 "입체적이지 않은 아이는 없다"고 말한다.

동시집은 지난 1월 제12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임 시인은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동시 ‘숭어’로 등단했다.

삼각뿔 속의 잠·임희진 글·나노 그림·문학동네 발행·120쪽·1만2,500원

삼각뿔 속의 잠·임희진 글·나노 그림·문학동네 발행·120쪽·1만2,500원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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