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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강 처음 해외 알린 베트남 번역가… "아시아 작은 나라도 노벨상 수상 희망 얻어"

입력
2024.11.18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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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베트남어로 번역한 황하이번
"전쟁 경험·가부장 분위기 강해 공감 형성"
"문학이 한·베 더 끈끈히 만드는 가교 되길"

한국 소설가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를 베트남어로 번역해 해외에 처음으로 알린 황하이번 번역가가 지난 5일 하노이에서 작품의 의미와 베트남 내 인기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한국 소설가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를 베트남어로 번역해 해외에 처음으로 알린 황하이번 번역가가 지난 5일 하노이에서 작품의 의미와 베트남 내 인기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지난달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대표작 ‘채식주의자(2007년 출간)’가 가장 먼저 현지 문자로 소개된 나라는 어디일까. 정답은 베트남이다. 2010년 ‘응어이 안 차이(Người ăn chay·채식주의자)’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베트남 독자들과 만났다. 영문 번역본 출간 시점(2014년)보다 4년이나 빠르다.

한강, 더 나아가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한 ‘숨은 공신’은 베트남어 번역가 황하이번(46)이다. 지난 5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황 번역가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에 자랑스럽고 기쁜 일이지만, 베트남과 아시아 전체에도 큰 의미가 있다”며 “세계 문학의 변방으로 취급받던 동양 국가도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과 기대감이 확산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매혹적 이야기에 빠져들어”

황 번역가가 한강 소설과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대 국문학과 석사 과정 재학 중이던 2005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한강의 중편 ‘몽고반점’을 읽으면서다. 한 편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다는 게 황 번역가의 설명이다.

“사실 외국 문학을 읽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몽고반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어요. 문장과 주인공, 이야기가 모두 매혹적이고 예술적이어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계속 생각나고 집착할 정도였죠.”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오른쪽)와 황하이번 번역가가 2010년 번역한 베트남어 번역본(왼쪽). 황하이번 제공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오른쪽)와 황하이번 번역가가 2010년 번역한 베트남어 번역본(왼쪽). 황하이번 제공

황 번역가의 ‘한강 사랑’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귀국 이후인 2008년, 한국을 다녀오는 지인에게 ‘채식주의자’ 공수를 부탁해 책을 접했다. 16년 전 일인데도 이 책을 처음 읽을 때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등장인물의 기쁨과 슬픔에 끌리고 전율을 느끼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전제한 뒤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주인공) 영혜의 모든 감정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영혜는 억압받는 인물을 상징해요. 뿌리 깊은 가부장제와 습관적인 가정 폭력, 더 나아가서는 월남전 참전 용사인 아버지의 전쟁 후유증이 폭압의 형태로 영혜에게 영향을 미쳤죠. 한강 작가는 이런 아픔과 폭력까지 고발했다고 생각해요.”

베트남에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고 ‘채식주의자’에 대한 해외 문단의 평가가 나오기도 전인 2010년, 황 번역가가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번역·출판에 나선 이유다. 채식주의자 베트남어판에는 몽고반점도 단편으로 포함돼 있다.

소설가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를 베트남어로 번역하며 처음으로 한국 바깥에 알린 황하이번 번역가가 채식주의자 번역본을 읽고 있다. 황하이번 제공

소설가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를 베트남어로 번역하며 처음으로 한국 바깥에 알린 황하이번 번역가가 채식주의자 번역본을 읽고 있다. 황하이번 제공


”베트남도 문학 세계화 전략 잘 세워야”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지 한 달이 지났으나, 베트남 내에서는 그의 작품은 물론 한국 문학 전반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뜨겁다. 절판된 ‘채식주의자’ 번역본을 구하려고 온라인상에서 웃돈을 주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황 번역가는 한강 소설이 베트남에서 인기를 끈 이유로 ‘공감’을 꼽았다. 베트남도 한국처럼 전쟁의 아픔을 겪었고 가부장적 분위기가 강한 유교 문화권이기 때문에 다른 어느 나라보다 베트남 독자들이 한강의 작품을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베트남 내 ‘한강 열풍’은 단순히 한국의 문학 작품을 읽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지 언론들은 한국 정부의 ‘문학 세계화 전략’에 주목하고 학계·교육계도 관련 세미나를 열고 있다. 지금은 잠시 번역 업계를 떠나 있는 황 번역가도 덩달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낸다. 한국 문학에 조예가 깊은 만큼 언론 및 주요 대학에서 인터뷰와 조언, 강연 요청이 쇄도하기 때문이다.

소설가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를 베트남어로 번역하며 처음으로 해외에 알린 황하이번(앞줄 왼쪽 열두 번째) 번역가가 지난달 17일 호찌민 국립대에서 '한강과 한국문학의 기적' 세미나 강연을 한 뒤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황하이번 제공

소설가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를 베트남어로 번역하며 처음으로 해외에 알린 황하이번(앞줄 왼쪽 열두 번째) 번역가가 지난달 17일 호찌민 국립대에서 '한강과 한국문학의 기적' 세미나 강연을 한 뒤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황하이번 제공

황 번역가는 한강 작가 수상 이후 베트남 내에서도 ‘언젠가는 우리도 상을 받을 수 있다’라는 희망과 정부 지원의 중요성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베트남은 중국, 프랑스, 미국 등 외세에 맞서며 자국 문학을 지켜 왔다. 그만큼 높은 자존감과 정체성, 고통, 슬픔의 정서가 작품에 고루 녹아있다.

황 번역가는 “베트남에도 좋은 문학 작품이 많다는 자신감이 있다. 그런데 한국처럼 문화와 문학을 전 세계에 알리는 전략이나 투자 계획을 충분히 세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베트남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전략적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늘고 있다”고 부연했다.

특히 수교 32주년을 맞은 양국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드는 데 문학이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K팝이나 K드라마, K영화가 베트남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죠. 저는 다른 어떤 예술보다 그 나라의 정서를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게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한국과 베트남의 문학이 서로에 더 많이 알려지면 더 가까운 관계가 되지 않을까요.”

하노이= 글·사진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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