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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유미의 불안의 정동과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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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7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11월 하순 발표합니다.
서유미의 소설집 ‘밤이 영원할 것처럼’은 한국소설 일각의 시류와 무관하다. 긴장과 흥분을 자아내려 골몰하는 스토리텔링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일곱 편의 소설은 대중 서사가 다루기 꺼리는 보통 사람의 단조로운 일상 중 사소한 듯한 순간들에 집중한다.
‘로건’이라는 등장인물은 뇌종양 진단을 받아 생의 종점과 마주한 처지이지만 서술자는 그의 마음속 격랑을 파고드는 대신 토요일 아침 그가 바라보는 한강공원 주변의 늦가을 풍경을 반복해서 세세하게 언급한다. 남편의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파티를 하는 중에 ‘유선’은 남편에게 모종의 의혹을 느끼지만, 작중 서술은 스릴 있게 비밀에 다가가는 대신 집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남녀의 소음을 간간이 들려준다. 여기에는 뻔한 듯한 일상생활의 숨은 경이를 알아보는 비범한 눈이 있다. 미술사가 아비 바르부르크의 말을 조금 바꾸어 말해보자. ‘하나님은 일상의 세목 안에 계신다.’
‘밤이 영원할 것처럼’의 두드러진 모티프 중 하나는 상실이다. 다수의 작중인물이 깊은 애착을 느끼던 대상을 잃어버렸거나 잃어가고 있다. 그 대상은 청춘의 시간이기도 하고, 위안과 휴식의 장소이기도 하고,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하던 초호화 주택이기도 하고, 일과 일의 보람을 주던 직장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국 개인 자신이다.
‘밤의 벤치’의 작중인물 ‘경진’은 자기 아이의 한글 학습을 위해 집에 다녀가는 여자 선생에게서 촉발되어 15년 전 같은 일을 했던 자신을 생각한다. 아이들의 집을 찾아다니느라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야 하는 사정 때문에 그는 사무실 근처 편의점의 파라솔 아래에서 점심을 해결하곤 했다. 그 파라솔 아래의 의자와 비슷한 휴식의 장소를 그는 현재 살고 있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 안에 가지고 있다. 고령의 전나무 네 그루 덕분에 고요하고 어둑한 자리의 벤치다. 어느 날 그 나무가 모두 베어져 나갔음을 발견한 그는 과거 어느 시기의 자신이 파라솔과 함께 사라졌듯 지금의 자신 역시 사라지리라고 느낀다.
서유미의 작중인물들이 상실을 통감하는 배경에는 일상생활의 안락에 대한 현대인 특유의 집착이 있다. 우리가 구원보다 행복을, 명예보다 존엄을 원한다면 그것은 일상적인 것의 가치가 현대의 세속 사회에서 격상되었기 때문이다. 작중인물들은 날씨와 절기에 민감하고 생활 용구, 거주 환경, 이웃 사람에게 주의 깊고, 일상의 일을 반듯하게 처리하려 한다. 무엇보다도 ‘다른 미래’의 남편 잃은 중년 여인처럼 “자신을 지키”려 노력한다. 그러나 생의 통제란 시간의 정복처럼 처음부터 실패하게 되어 있는 일이다. 안녕에 대한 집착이 많으면 많을수록 불안은 더 커진다. ‘밤이 영원할 것처럼’은 일상생활의 아이러니를 차분하게 응시하고, 단아함과 미묘함이 갖춰진 형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올해의 귀한 문학적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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