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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 M&A로 구축된 바이오 소부장 '삼국지'... 톱3 넘어 국산화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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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에너지 등 첨단 기술이 정치와 외교를 움직이고 평범한 일상을 바꿔 놓는다. 기술이 패권이 되고 상식이 되는 시대다. 한국일보는 최신 이슈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의 숨은 의미를 찾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하는 '테크 인사이트(Tech Insight)'를 격주 금요일 연재한다.
비만약 '위고비'는 인간의 장에서 나오는 호르몬을 활용해 개발한 바이오의약품이다. 본래 생체 물질이 주성분인 바이오의약품은 화학의약품에 비해 몸에 잘 맞고 다양한 병을 치료하기 용이하다. 혁신 신약 다수가 바이오의약품으로 개발되는 이유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매출은 지난해 약 664조 원에서 2029년에는 1,114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생체 물질은 똑같이 다량 만들어내기 쉽지 않다. 실험실에서 작은 양을 만들었더라도 대규모 공장에서 대량으로 양산하는 데는 오랜 노하우와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상당 기간 안정적으로 생산해왔다는 이력도 중요하다. 바이오의약품 생산 과정을 '바이오 프로세싱'(Bio processing)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일부 글로벌 바이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이 장악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정은 크게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으로 나뉜다. 업스트림에선 약물의 주성분인 단백질을 키워내고, 다운스트림에선 불순물을 제거하고 추출한다. 업스트림의 첫 공정은 배양이다. 냉각해둔 작은 세포들을 꺼내 플라스크에서 키우다 어느 정도 자라면 배양기에 넣는다. 이 세포들이 성장하면서 내놓는 단백질이 바로 바이오의약품의 원료가 된다. 바이오 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은색 용기가 배양기인데, 이 장비는 세포들이 고여 있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내부를 매끄럽게 제작하는 게 중요하다. 배양기 안에서 세포들은 영양성분이 들어 있는 배지를 먹고 자라는데, 배지는 어떤 단백질이 얼마나 빨리 생성될지를 좌우하는 핵심 소재다.
짧게는 수일, 길게는 몇 달에 걸쳐 배양기에서 충분한 단백질이 만들어지면 다운스트림에 돌입한다. 원심분리기로 세포와 단백질을 분리하고, 필터로 여러 번 불순물을 걸러낸다. 필터에는 마이크로미터·나노미터 단위의 미세한 구멍이 똑같은 크기로 수없이 많이 뚫려 있는데, 이렇게 만드는 게 기술력이다. 분리된 단백질 중에서 약효를 내는 특정 단백질을 뽑아내려면 크로마토그래피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정 단백질에 잘 결합하는 화학물질(레진)을 적절히 배합한 크로마토그래피 기기에 단백질을 흘려보내면 원하는 분자가 뽑혀 나온다. 이어지는 여과, 침전 등의 정제 과정에도 수일이 걸린다. 완성된 원료 단백질은 동결 건조와 제형화를 거쳐 다양한 장비로 품질 검사를 받는다. 이후 외부 먼지나 균이 들어가지 않는 시설에서 포장하면 다운스트림 공정까지 마무리된다.
바이오 프로세싱 전 과정에는 수백~수천 가지의 소부장이 투입된다. 각 장비가 공정 전반과 호환돼 균일한 의약품을 계속해서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글로벌 바이오 소부장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기업들의 성장 과정은 인수합병(M&A)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톱3'로 불리는 서모피셔 사이언티빅, 머크 라이프사이언스, 사이티바 모두 공정 전체를 커버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M&A를 펼쳐왔다.
미국이 기반인 서모피셔는 2010년 다이오넥스, 2021년 파디아, 2013년 라이프테크놀로지, 2016년 아피메트릭스, 2017년 판테온, 2019년 브래머바이오, 2021년 파마슈티컬 프로덕트 디벨롭먼트 등을 인수하며 광폭 M&A 행보를 보였다. 서모피셔는 품질 관리 자동화, 세포 배양 모니터링 기술 등에 강점을 보유했다. 장비와 연동된 소프트웨어도 450여 개나 공급한다. 출시된 지 60년이 넘는 세포배양 배지 '깁코'(Gibco)도 대표 제품이다.
독일에서 설립된 머크는 2006년 세로노, 2010년 밀리포어, 2014년 시그마 알드리치에 이어 올해는 마이러스 바이오까지 인수해 전체 바이오 공정 소부장을 갖췄다. 특히 머크는 신약을 직접 개발하기도 하는 만큼 메신저 리보핵산(mRNA), 이중항체, 항체약물복합체(ADC), 바이럴 벡터 등 다양한 모달리티(치료법 유형)의 공정 솔루션을 제공한다.
사이티바는 2007년 웨이브바이오텍, 2012년 엑셀러렉스를 인수해 배양기 기술을, 2014년 하이클론, 2017년 아심토트를 인수해 배양 배지, 세포 냉동 기술을 확보했다. 2021년부터 올해까지 반렉스, 고실리코, 세백, 폴 생명과학, 프리시전 나노시스템스 인수로 지질나노입자 기술까지 영역을 넓혔다. 크로마토그래피의 대명사 격인 악타 시스템이 사이티바 제품이다. 정제에 들어가는 화학물질의 배합은 상위 연구자 몇 명에게만 공유될 정도로 차별화한 노하우를 이어가고 있다. 이 밖에도 사토리우스, BD, 론자도 각각 일회용 배양팩, 주사기, 배지 영역에서 강자로 꼽힌다.
광범위한 공정에 축적된 기술과 연이은 M&A를 통해 공고히 연합체가 구성된 만큼 후발주자들이 기술력이 좋아도 비집고 들어가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독보적으로 새로운 소부장을 개발하더라도 톱3를 밀어내는 것보다 이들 중 하나에 인수되는 편이 시장 진입에 훨씬 유리하다고 업계는 본다. 더구나 톱3는 여전히 신기술 확장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R&D에 서모피셔는 13억 달러(약 1조8,000억 원), 머크는 24억 유로(약 3조6,000억 원)를 투자했다. 우리나라에도 진출했다. 머크는 지난 3월 대전에 3억 유로(약 4,6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바이오 프로세싱 생산 센터 건립에 나섰는데, 여기서 직접 소부장을 만들어 공급할 예정이다. 인천 송도엔 사이티바의 교육·실습 기관인 패스트트랙 센터가 운영 중이다.
제약사나 바이오 공장이 생산 공정에 들어가는 소부장 제품을 선택할 때는 가격도 중요하지만 사용 실적을 특히 까다롭게 따진다. 정부 지원을 받아 바이오 소부장 국산화에 나선 국내 기업들이 애써 제품을 개발해도 좀처럼 기업의 선택을 받기 어려운 이유가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바이오 소부장 자급화율은 약 7%에 그친다. 선진국들은 지금도 경쟁적으로 바이오 소부장 자급 확대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국가 바이오기술 및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 등에 맞춰 2022년 20억 달러를 투입했고, 미 국방부도 바이오 제조 인프라 구축을 위한 민관 협력사업에 5년간 10억 달러를 쏟아붓기로 했다. 유럽과 중국 역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바이오 소부장 공급망 강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지원 전략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국내 바이오 소부장 기업 관계자는 "항체약물접합체(ADC), 지질나노입자 등 대형 제약사가 관심 가질 만한 소재 분야에 정책 자금이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힘들게 장비와 부품을 개발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원이 균형 있게 장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수요를 면밀히 파악하고, 어렵게 개발한 국산 소부장이 사장되지 않고 산업 현장에서 널리 활용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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