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단독] 말만 '원스톱'인 법무부 피해자 센터… '서현역' 유족도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

입력
2024.10.25 04:30
10면
구독

저금리대출 상담하니 "신용이 너무 높아"
맞춤상품 구비 없이 연계 기관 '중개'만
유족 "가해자 양형 깎일라" 구조금 고사

범죄피해자 원스톱 솔루션 센터 소개 이미지. 법무부 제공

범죄피해자 원스톱 솔루션 센터 소개 이미지. 법무부 제공


"피해자 얘기엔 별 관심이 없어요. 그리고 문턱이 너무 높아요. 피해자들이 걸려 넘어지고 있어요.

(서현역 테러 사망자 김혜빈씨의 부모)

생때같은 외동딸 김혜빈은 지난해 8월 최원종이 몰던 모닝에 들이받쳐 사경을 헤매다 세상을 떠났다. 엄마 아빠는 최원종 재판을 쫓아다니느라 생업을 챙기지 못했다. 혜빈이가 부모 곁을 떠난 지 1년이 지났을 때, 모아둔 돈은 모두 축났고 대출 이자만 무섭게 쌓였다. 그동안 정부에서 지원받은 돈은 혜빈이의 26일간 입원·치료비와 장례비 등 1,300만 원 정도가 전부였다.

최대 4,000만 원인 유족 구조금(범죄 피해자 유족에게 국가가 지급하는 돈)이나 가해자 측에서 나올 1억 원대 사망보험금은 모두 고사했다. 구조금은 최원종에게 감형 요소로 작용할까 봐 안 받았고, 보험금을 수령하면 손해배상을 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원스톱 안 돼 '뺑뺑이' 도는 유족

부부는 사회복지사의 권유를 받아 8월 말 법무부 피해자 지원 센터를 찾았다. 부부는 상담원이 연결해 준 미소금융재단 담당자로부터 최대 2,000만 원을 저금리(4.5%)에 대출해주는 사업자 전용 상품을 소개받았지만, 빈손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신용점수가 600점 이하여야 하는데 800점 이상이라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부부는 재산 처분을 고민 중이다.

24일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문을 연 '제1호' 범죄피해자 원스톱 솔루션 센터가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 중 '저금리 대출 상품'은 서민금융진흥원의 사업수행기관 미소금융재단의 상품이 유일하다. 대출 조건은 ①저신용·저소득자 또는 차상위계층인 ②사업자·창업(준비)자 또는 취약계층(한부모가족 가구주, 등록장애인 등)인 경우가 많다.

이는 범죄 피해자에게 한 번에 맞춤형 지원을 하겠다는 '원스톱 솔루션 센터'의 설립 목적과는 다소 어긋난다. 센터의 금융 서비스를 보면 맞춤형 저리 대출 상품은 따로 없고, 센터에 연계된 △서민금융진흥원 △미소금융재단의 기존 대출 상품을 소개하는 것에 불과하다.

소개를 받고 가 봐도 정작 대출 대부분은 높은 금리가 적용되고 있다. 서민금융진흥원 '소액생계비대출'은 연리 15.9%에 최대 100만 원만 지원 가능하고, 근로자 햇살론 등 다른 상품도 대부분 금리가 연 10% 내외다. 저금리(2~4.5%) 대출은 미소금융재단에서만 가능한데 이마저도 대부분 △자영업자 △창업준비자 △취약계층만 대상자다. 이 대상에 들어도 개인신용평점이 '하위 20%'이거나 소득·자산이 작아야 한다.

범죄피해자 원스톱 솔루션 센터 연계 대출 상품 사례. 그래픽=이지원 기자

범죄피해자 원스톱 솔루션 센터 연계 대출 상품 사례. 그래픽=이지원 기자


정부 구조금을 피하는 이유

'서현역 테러 사건' 피해자 김혜빈씨 부모가 8월 서울 동작구 범죄피해자 원스톱 솔루션 센터 상담에서 건네받은 '저리 대출' 관련 안내물에 밑줄이 쳐져 있다. 유족 제공

'서현역 테러 사건' 피해자 김혜빈씨 부모가 8월 서울 동작구 범죄피해자 원스톱 솔루션 센터 상담에서 건네받은 '저리 대출' 관련 안내물에 밑줄이 쳐져 있다. 유족 제공

구조금보다 언젠가 갚아야 하는 '대출'을 택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와 유족들의 속사정도 있다. 법무부가 선제적으로 지원한 뒤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구조금의 경우, 유족들은 가해자 형량이 감경될까봐 선뜻 받지 못한다. 실제로 서현역 테러 사건 피해자 혜빈씨 유족이 병원비 약 3,500만 원의 환자부담분 295만 원을 법무부가 지원해줘서 받았더니, 가해자 최원종 측은 국가에 줘야 할 구상금을 모두 변제하고 2심에서 "형량을 깎아달라"고 요구했다.

이런 맹점은 결국 구조금 지급 자체가 늦어지는 문제로 이어진다. 지난해 7월 발생한 '군포 술집 살인사건' 유족은 1년 뒤 가해자가 대법원에서 형량을 확정받고서야 구조금을 신청했고, 사건 1년 4개월 만에 구조금을 수령했다. '빠르고 완전한 지원'이란 국가의 약속이 무색할 지경이다.

"대출 상품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에 법무부는 "대출기관 내부에서 정한 대출 요건에 따라 자체적으로 대출 실행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한국피해자학회 소속 김혜경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대출 사업을 꾸려 저리 대출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범죄 피해자에게 금융 지원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전현희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 일환으로 야심 차게 개소한 원스톱 솔루션 센터에선 실제론 저리 상품도 부족하고, 대출 조건도 기계적으로 적용된다"며 "범죄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지수 기자
장수현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