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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란 악한 사상에서 영혼을 분리하옵시고"...'차별 기도'로 쪼개진 개신교

입력
2024.10.25 04:30
수정
2024.10.25 08:02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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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연합예배 앞두고 '차별금지법' 부각
'반동성애'기치 보수개신교, 200만 명 운집
100대 기도문 "여성·소수자" 차별적 문구
교계 "예배 아닌 정치 집회...부적절" 제동
여성 교인들 "혐오 품은 신앙 안 돼" 목소리
'평등 세상 위한 100대 기도문' 맞대응

편집자주

아는 만큼 보이는 종교의 세계. 한국일보 종교기자가 한 달에 한 번씩 생생한 종교 현장과 종교인을 찾아 종교의 오늘을 이야기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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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10월 31일 독일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95개 논제(Theses·반박문)'를 발표했다. 당시 종교계 이슈는 교황청이 금전을 바친 사람에게 죄를 면한다는 뜻으로 발행하던 '면죄부'였다. 독일 비텐베르크대 교수였던 루터는 교황 레오 10세의 이름으로 이뤄진 면죄부 장사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반박문을 대학 교회 문에 붙였다. 루터의 주장은 빠르게 퍼져 나가면서 유럽 전체가 종교개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 결과 구교에 대항한 '프로테스탄티즘'이란 이름의 새 교파가 탄생했다. 널리 알려진 '개신교'의 서막이다.

이달 31일은 루터가 교회에 반박문을 붙인 지 507년째 되는 날이다. 직전 주일인 27일 루터의 정신을 표방하는 크고 작은 기도회가 예정된 상황에서 한국 개신교는 때아닌 '차별과 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보수 개신교단과 대형 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저지하기 위한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이하 10·27 연합예배)'를 예고하면서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이 규정한 평등 이념에 따라 성별, 나이, 국적, 인종, 외모, 성정체성, 장애 유무 등을 명분으로 한 모든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헌법이 규정한 평등 이념을 구체화하는 법이지만, 보수 집단은 '동성애조장법'이라며 반대한다.

10·27 연합예배 주최 측은 '차별금지법 반대' 구호를 전면에 내걸고 기도회에서 다룰 '100대 기도문'에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 정당화로 해석되는 내용을 명문화했다. 이에 중도·보수 성향 교단과 단체들조차 성토를 쏟아내고 있다. 예배를 정치집회로 이용하는 것과 구시대적 가치관을 옹호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 모두 도마에 올랐다.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평등 의제를 둘러싼 교내 분열이 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00만 명 모인다는 '최대 연합예배' 뭐길래

조직위 홈페이지에 표시된 실시간 참가인원은 24일 기준 60만 명을 넘었다. '10·27 한국교회 2백만 연합예배' 홈페이지 캡처

조직위 홈페이지에 표시된 실시간 참가인원은 24일 기준 60만 명을 넘었다. '10·27 한국교회 2백만 연합예배' 홈페이지 캡처

10·27 연합예배는 오는 27일 서울 광화문, 서울시청, 남대문 일대에서 열리는 대규모 기도회다. 한국교회총연합,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등 주요 연합기관과 여의도순복음교회, 사랑의교회 등 대형 교회가 주도해 교인들의 참석을 독려하고 있다. 주최 측은 온라인 참가자 100만 명을 포함해 200만 명의 교인이 동참할 것으로 본다. 예배에서는 200만 명에게 만 원씩 헌금을 모아 총 200억 원 규모의 후원금을 모은다.

조직위 측은 "최근 동성 파트너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 이후 차별금지법 제정 흐름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라고 기도회 취지를 밝혔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돼 동성혼이 합법화하면 교회가 위기에 처할 수 있으니 단체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예배를 주도하는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는 지난 8월 설교에서 "영국이나 독일 같은 기독교 국가도 동성애 악법을 막지 못해 기독교인 비율이 1%대로 떨어졌다"며 "대한민국에 오염수가 들어오면 교회 생태계가 끝난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직위는 '대한민국 복음의 역전을 이루는 10·27 연합예배를 위한 100대 기도 제목'을 공개했다. '기도 제목'이란 목회자가 예배에 앞서 공표하는 기도 항목이다. 100개로 구성된 이번 기도 제목은 10·27 집회(1~15), 동성애 차별금지법 및 젠더 성혁명(16~30), 젠더 갈등·비혼주의·저출산·생명 윤리와 낙태(31~60), 청소년·청년 마약 중독(61~75), 북한과 자유통일(76~90), 한국교회와 다음 세대(91~100)로 구성됐다.

'100대 기도 제목'은 절반 이상의 항목이 성 문제에 집중됐다. 차별금지법 항목에는 "서로가 모두 똑같아야 한다는 평등 실현의 환상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발상인지 국민들이 분별하게 하셔서 반인권적 법률이 통과되지 않게 하옵소서(17)",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서에 반하는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등의 성혁명 흐름이 끊어지게 하시고, 이를 지지하는 거짓과 궤변들이 무너지게 하옵소서(19)"가 들어갔다. 젠더 관련 항목에선 '젠더 갈등의 원인은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기중심성이라는 죄 때문임을 고백하게 하옵소서(31)', '페미니즘이라는 악한 사상과 그 사상에 물든 영혼을 분리하게 하옵소서(41)', '결혼과 출산은 여성에게 손해라고 말하는 페미니즘 사상에 젖어 젠더 갈등과 저출산 비혼주의 확산에 협력한 것을 회개하게 하옵소서(44)'가 포함됐다. 생명윤리를 다룬 항목에는 '노산과 불임률 상승으로 시험관 시술이 난무하는 가운데, 생명이 버려지는 시험관 시술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인지하게 하옵소서(50)'라는 대목이 들어갔다.

"시대착오적 선동은 고립 자초" 교계 내부 '우려'

주최 측이 공개한 100대 기도 제목 중 '젠더 갈등과 비혼주의, 저출산에 관한 기도 제목' 일부. '10·27 한국교회 2백만 연합예배' 홈페이지 캡처

주최 측이 공개한 100대 기도 제목 중 '젠더 갈등과 비혼주의, 저출산에 관한 기도 제목' 일부. '10·27 한국교회 2백만 연합예배' 홈페이지 캡처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중도·보수 성향의 개신교단에서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동안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문제에 대해 침묵해온 교단과 교계 내부에서 공개 비판이 나온 건 이례적이다.

연합단체인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은 '10·27 정치집회 취소를 촉구하는 성명서'에서 연합예배를 "편향된 정치집회"라고 규정한 뒤 "차별금지법에 종교 자유를 침해하는 독소 조항이 있다면 공론장을 마련해 대안을 제시하고 합의된 법안이 통과되도록 힘쓰면 되는데 한국교회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기 위해 총궐기한 모양새를 만들어 시대착오적인 고립의 길을 자초한다"고 비판했다. 교계 시민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도 성명을 내고 "예배가 악법 저지 집회 동원의 수단이 되는 것은 반성경적"이라며 "교단 신학과 헌법에 근거한 논의, 총회와 교회의 공개 토론을 요청한다"고 했다.

여성 교인들의 '따끔한 미러링'..."평등 기도문"

'대한민국 페미니즘의 역전을 이루는 평등 세상을 위한 100대 기도 제목' 홈페이지 캡처

'대한민국 페미니즘의 역전을 이루는 평등 세상을 위한 100대 기도 제목' 홈페이지 캡처

여성 교인들은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자발적으로 모인 20대~60대 여성 교인과 활동가 22명은 연합예배의 기도문에 대항해 '대한민국 페미니즘의 역전을 이루는 평등 세상을 위한 100대 기도 제목'을 만들어 공개했다. 개신교에 팽배한 반동성애 정서와 가부장적 정서를 감안하면 이번 사태를 일부 보수 교회의 일탈적 행동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촉발된 행동이다.

기도문은 연합예배에서 공개한 100대 기도 제목을 '미러링(잘못을 고발하고 꼬집기 위해 모방하는 것)'하는 방식으로 쓰여졌다. '차별 금지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는 대목은 '인간 존엄의 기초를 흔드는 차별 조장은 혐오'로 맞받고, '페미니즘이라는 악한 사상과 그 사상에 물든 영혼'이라는 언급은 '젠더 불평등을 인지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영혼'으로, '페미니즘 사상에 젖어 저출산을 확산한 여성을 회개하게 해달라'는 대목은 '여성을 출산 도구로 전락시키는 행위를 회개하게 해달라'로 재구성했다. 나흘 만에 만들어진 새로운 100대 기도 제목에는 개인 588명, 단체 71개 단위가 이름을 올려 뜻을 모았다. 연서명 기간이 끝난 후에도 참여하고 싶다는 요구가 빗발쳐 27일까지 동참 서명을 받기로 했다.

'100대 기도 제목 미러링'을 기획한 여성 목회자 창연(활동명)은 "동성애를 죄로 낙인찍어 혐오하는 것도 부족해 차별받지 않도록 보장하는 (국가 차원의) 제도마저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같은 신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교계 내부의 자성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반사회적인 선동으로 상처받은 교회 밖 소수자와 시민들을 위해 다른 신앙의 언어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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