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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청의 그릇, 혹은 잔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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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김포시가 담기 부족해서 떠나는 듯···더 좋은 곳에서 번창하세요.’
지난해 말 경기 김포시청 청사 내 발달장애인 바리스타 카페인 ‘달꿈’(달팽이의 꿈)이 시청의 계약 연장 불허로 문을 닫게 되자, 시 공무원이 달꿈 측에 남긴 글이다. 장애인 고용 카페의 가치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김포시의 그릇을 한탄하고, 더 번창할 ‘어떤 곳’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것이리라.
그러나 ‘그런 곳’은 없다. 달꿈 카페를 운영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파파스윌은 영업이 잘되던 시청점이 폐쇄된 후 새로운 카페를 열지 못했고, 손님이 적은 외진 김포 양촌의 달꿈 본점만 운영하며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시청점에서 일하며 행복해하던 장애인들에겐 힘든 시절이다.
발달장애인에게 ‘더 좋은 곳’은 무지개 너머 어딘가가 아니며, 우리 동네 공공기관이 그곳이어야 한다. 달꿈의 계약 연장이 불허되자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걱정으로 보냈고, 김병수 김포시장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서울시 서초구의 지자체에서 위탁 운영하는 발달장애인 고용 카페가 40여 곳에 이르고, 인천·고양·부천·의정부·평택·시흥 등 경기도 지자체에서도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많은 관공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에서 나서서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일반 기업이나 기관이 장애인 고용에 문을 열 수 있겠습니까.”
편지엔 이런 대목도 있다. “이전에 여기저기 작업장에 다녀봤지만, 단순조립 업무와 일반인과는 단절되는 폐쇄적인 근무환경 등으로 근로의욕을 갖기 힘들었고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몇 달 못 버티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시청 카페에서는 바리스타로서 직업훈련을 받고 자부심을 갖고 수년간 안정되게 일할 수 있었으며 대인관계 능력이나 사회적응 능력도 더 좋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요컨대, 시청 카페는 저희 자녀들에게 소중한 일터이자 배움터요, 지역사회와 접촉하고 소통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직장이었습니다.”
파파스윌의 장애인 부모들은 작년 12월 26일 이 편지를 시청 측에 전달하고 김병수 시장 면담을 요청했다. 결과는 거부. 엄선덕 파파스윌 이사장은 “시청 카페 접기 전 12월에 한 번, 프랜차이즈 카페가 대신 입점했다는 것을 알고 6월에 다시 한 번 공문으로 시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다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김병수 시장은 이 건에 대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시청 담당 공무원의 입에서 “직원들이 더 싼 커피를 원해서 달꿈 카페 대신 프랜차이즈 컴포즈와 계약했다”는 해명만 나온다. 달꿈 아메리카노는 2,000원인데, 컴포즈는 1,500원이란다.
공직자의 자격과는 별론으로, ‘장애인 일자리고 뭐고, 싼 커피가 최고’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면 ‘작은 그릇’ 정도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파파스윌이 이 문제를 공론화한 후 김포시가 가한 사실상의 보복(본보 10월 17일 자 24면 보도)은 고의적인 잔인함과 악랄함마저 느껴진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기준들을 새로 만들어 파파스윌의 장애인 주간활동센터를 내쫓고 예산까지 환수했다.
실무 공무원들이 앞장섰다고 믿지 않는다. ‘직원들이 500원 더 싼 커피를 좋아했다’는 해명도 믿지 않는다. 수의계약을 체결해 달꿈을 밀어내고 시청에 입점한 필리핀 기업 컴포즈커피와 김 시장이 유착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김포 장애인 사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모든 문제가 그렇듯 돌파구는 사과와 시정(是正)이다. 김포시의 행보를 보면, 약자 보호라는 공공의 의무를 깨닫길 기대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여론의 분노에 대한 두려움이라도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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