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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교실이 문해력 망친다"... 덴마크 교육, '다시 아날로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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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알아두면 도움이 될, 알수록 재미있는 유럽의 이야기를 신은별 유럽 특파원이 한 달에 한 편씩 연재합니다.
"아이들에게 사과합니다. 아이들을 우리가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디지털 실험'의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실험용 기니피그로 삼았던 겁니다."
지난해 12월 마티아스 테스파예 덴마크 교육부 장관(사회민주당 소속)은 현지 언론 폴리티켄과의 인터뷰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어진 처절한 반성. "교실은 스트리밍하고, 놀고, 쇼핑하는 방의 연장선에 있어선 안 됩니다. 그런데도 학교는 너무 오랫동안 거대 기술 기업에 복종했고 사회는 디지털 세계의 경이로움을 너무 사랑했습니다."
테스파예 장관의 돌연한 사과에 유럽 교육계는 적잖이 놀랐다. 그간 덴마크는 교실에서 디지털 기기, 자료, 플랫폼 등을 활용하는, 이른바 '교실의 디지털화'를 선도해 왔기 때문이다.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성과를 스스로 무너뜨리려는 것일까. 사이먼 스코브 푸그트 덴마크 오르후스대 부교수, 마티아스 부르차르트 독일 교육지식협회 디렉터 등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덴마크 정부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살펴봤다.
덴마크가 교실의 디지털화에서 압도적으로 앞서간 건 2010년대 들어서다. 정부는 학생들에 대한 디지털 기기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2012년 5억 덴마크 크로네(약 989억 원)를 한꺼번에 투자하는 등 교실의 디지털화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아이들에게 선진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자, '도시와 농촌 또는 경제력에 좌우될 수 있는 교육 격차를 메워 주는 것'이라는 믿음이 컸기에 교실을 디지털화하는 정책에 대한 반대는 별로 없었다. 푸그트 부교수는 "덴마크는 다른 국가들보다 먼저 교실의 디지털화에 나섰고, 2011년부터 디지털화가 가장 진전된 국가 그룹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기 보급은 자연히 학생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 빈도 및 시간을 늘렸다. 학생들의 학습 능력 및 태도를 평가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피사)는 덴마크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2022년 자료 기준). "덴마크 학생들은 디지털 기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학생들이다. 교실에서의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은 평균 3.8시간이다. 이는 조사에 참여한 81개국 중 가장 길다. OECD 평균 시간은 하루 2시간이다. 덴마크 학생의 47%는 수업 시간 중 항상, 또는 절반 이상 시간 동안에는 디지털 기기를 열어둔다.
한때 덴마크의 자랑이었던 교실의 디지털화에 대한 의구심은 최근 몇 년 사이 피어올랐다. '교실의 디지털화가 얼마나 진전됐는가'라는 양적인 성장에 몰두하느라 간과했던 질문, '교실의 디지털화가 과연 학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물음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이다. 푸그트 부교수는 "모든 것을 디지털화하는 사이에 '무엇이 디지털이고, 무엇이 아날로그여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5년 전부터 깨닫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의구심이 불신으로 바뀐 것은 덴마크 학생의 학습 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 탓이다. 2022년 피사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덴마크 학생들의 읽기·수학·과학 점수는 각각 489점, 489점, 494점으로 OECD 평균보다는 높다(OECD 평균 읽기·수학·과학 점수는 각각 476점, 472점, 485점). 그러나 직전 조사에 비해 눈에 띄게 하락했다. 2018년 읽기 점수(501점)에서 12점, 수학 점수(509점)에서 각각 20점씩 떨어졌다. 과학은 정체 상태였다. 무엇보다 상당수 아이(31%)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 주의가 산만해진다'고 느꼈다. 다른 학생의 디지털 기기 사용으로 방해를 받는다는 학생도 4명 중 1명꼴이었다.
교실의 디지털화는 실제로 학업 능력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부르차르트 디렉터의 설명은 이렇다. "디지털은 학습 동기를 높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학습 효과 측면에서는 전통적 교육에 비해 떨어진다. 이는 인간의 본성과 연관이 있다. 학교에서의 학습은 대인관계 안에서 이뤄질 때 효과가 크다. 자료 선택, 과제 설정, 동기 부여, 단계별 조정, 규율, 통제, 평가 등은 청소년에 대한 이해가 높고 교육학적 전문성을 갖춘 교사가 수행해야 한다. 학습은 머리와 가슴뿐만 아니라 손을 통해서도 이뤄지는데, 디지털 기기가 학습의 물리적 측면을 축소하는 것도 문제다. 이런 점에서 더 어린 나이에 디지털화를 접할 경우 더 파괴적 결과를 야기하게 된다."
이에 덴마크 정부는 올해 2월 '디지털 거리 두기'를 결심했다. 교육부 산하 교육품질관리청과의 협의를 거쳐 마련한 '학교에서의 디지털 기기 사용에 관한 권고안'에는 12개 조치가 담겼다. 주요 내용으로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가 없는 학교로의 전환 △수업에서 사용하지 않는 컴퓨터와 태블릿PC 등은 다른 장소에 보관 △관련 없는 웹사이트에 대한 접근 차단 △교육학적으로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디지털 기기를 사용 △아날로그 학습을 위한 공간 마련 등이 있다. 이 과정에서 학교가 학생·학부모와 충분한 대화를 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디지털화는 일반적으로 좋다고 여겨지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이를 무분별하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게 테스파예 장관의 얘기다.
덴마크의 결정은 단지 '교육 자료를 스크린으로 볼 것이냐, 종이로 볼 것이냐'라는 문제가 아니라, 그 이상이었다. 디지털 기기를 통해 접하는 세계, 예를 들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유해성을 우려한 조치이기도 했다. 푸그트 부교수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간파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SNS를 영리하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선 배우지 않은 아이가 SNS 유해 콘텐츠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부르차르트 디렉터는 "학교는 내가 선택하지 않는 사람을 공동체 일원으로 만나면서 관용, 연대, 자기 주장 등을 배우는 공간인데 스마트폰은 이런 기회를 앗아간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권고 이후 덴마크 내 학교들은 달라지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없는 학교' 정책을 채택하는 곳이 많다고 유로뉴스는 전했다. 교육부 권고 이전부터 학생들이 학교 도착 즉시 휴대폰을 금고에 넣어두도록 하는 정책을 도입했던 덴마크 링비 소재 트롱가르드 학교도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학생의 휴대폰 소지에 제한을 두지 않았던 과거 정책을 떠올린 교사 벤트 포블센은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오는 알림 등에 끊임없이 방해를 받았고, 심지어 수업 중간에 저녁 식사 등 수업 외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전화를 거는 부모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휴대폰 소지 금지 이후 학생들이 서로 대화하고, 뛰어놀게 됐다며 "최고의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흐름은 유럽에서 확산하는 분위기다. 옆 나라 스웨덴도 그중 하나다. 스웨덴 교육부는 유치원의 디지털 기기 도입을 의무화하는 계획을 지난해 철회했다. 스웨덴 교육부에 자문한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는 성명을 통해 이렇게 짚었다. "①학교의 중요 정책 결정은 연구 결과를 알지 못한 채 내려져선 안 된다. ②교실 디지털화의 부정적 영향은 수년 동안 알려져 있었지만 스웨덴 교육부는 이를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③무엇보다 정확성이 검증되지 않은 온라인상 정보를 지식 습득 경로로 활용하게 되면 지식이 상대적이라는 점을 부각할 수 있기 때문에 부정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아일랜드 등도 스마트폰을 교실에서 금지하는 조치를 도입했거나, 조만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유년기·청소년기에 대한 디지털 기기 및 SNS 규제를 시사한 바 있다. 부르차르트 디렉터는 "더 많은 유럽 국가가 이런 흐름에 동참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물론 전통적 교실로 돌아가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기술 사용은 계속 늘어나는데 학교에서 이를 줄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미 학교 바깥에서 스마트폰 등을 차고 넘치도록 사용하는데 학교에서 줄이는 게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 등의 의견이 대표적이다. '학생들로부터 디지털을 일방적으로 분리함으로써, 학생의 자율성과 통제력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 같은 우려를 감안하더라도 전문가들은 '무조건 디지털'만 외치며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길을 달려가는 것보다는, 잠깐 멈춰서 조정하는 게 덜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덴마크 교육부 장관의 말처럼 학생을 '실험용 기니피그'로 만들 수는 없다는 점에서다. 부르차르트 디렉터는 교실을 디지털화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기기·자료의 사회적·철학적 의미에 대한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이터 보호, 사이버 범죄, 인공지능(AI)의 의미 등을 함께 가르침으로써 학생들이 보다 책임감 있게 디지털을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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