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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도자기 굽는 수행하는 85세 스님..."나는 안 그려요, 바람, 물이 그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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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이는 종교의 세계. 한국일보 종교기자가 한 달에 한 번씩 생생한 종교 현장과 종교인을 찾아 종교의 오늘을 이야기합니다.
"현대미술계의 스님 작가 탄생"이라느니, "불교 미술의 현대적 소환"이라느니...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지난달 28일 개막한 '성파 선예(禪藝) 특별전-코스모스(COSMOS)'를 두고 이런 말이 오갔다. 수십 년 동안 전통 소재로 아날로그 예술 작업에 천착해온 노스님, 그것도 한 교계의 최고 지위에 오른 종교인의 화업을 망라한 단독 전시를 연 사례는 유례가 없기 때문일 터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손사래를 칠 뿐이다. "나는 작가가 아닙니다. 본업이 수행자예요. 내가, 붓이 그린 것이 아니라 바람과 물이 그렸지요." 그간 완성한 2,000점 가운데 120점을 추려 전시를 선보인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정 성파 스님(85)의 말이다.
총무원장이 종무 행정을 총괄하는 종단 대표라면 종정은 종단의 정신적 지도자다. 일제강점기 초대 종정을 지낸 한암 스님을 비롯해 효봉 스님, 성철 스님 등이 역대 종정을 지냈다. 한 종교의 영적 지주인 큰스님이 매일 우주를, 인간을, 부처를 그리고 빚었는데, 그 세월이 40년이다. 성파 스님은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불가에는 선농일치(禪農一致·농사를 지으며 참선 수행을 하는 것)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수행과 예술은 둘이 아니고 선과 예술도 다르지 않다"며 "많은 사람들이 작품이라고 얘기하지만 그저 내 생활 속에서 하는 일, 삶의 발자취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시 제목 '선예'(禪藝·선(禪) 수행이 이뤄지는 예술 활동)의 의미 그대로다.
지금이야 성파 스님의 삶 자체가 예술이지만 처음부터 예술에 몰두했던 건 아니다. 출가하기 전 한학을 공부한 스님은 마음의 실체가 궁금해 스물두 살에 입산했다. 이후 수행자로서 불교 경전을 베껴쓰는 '사경(寫經)'에 몰두하며 예술과 인연이 시작됐다. 밤낮없이 경전을 뒤적이며 마음을 들여 쓰고 그리는 시간이 40대까지 이어졌다. 이번 전시의 '궤적' 섹션에 등장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사경 작품은 1980년대 만들어진 작품으로, 한 글자를 쓸 때마다 세 차례 절을 하는 '일자 삼배'로 완성했다.
성파 스님은 온갖 작업을 통해 구도 예술을 이어왔다. 전시장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경남 양산 통도사 서운암에 국내 최초로 도자 삼천불상을 만들어 봉안하고, 10년에 걸쳐 경남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일일이 새겨 도자기로 구워낸 도자대장경 불사(佛事)도 완수했다. 국보인 울산 반구대암각화와 경북 울주 천전리 암각화를 실물 크기의 옻칠과 자개 공예로 재연해 통도사에 수중 전시한 것도 그다.
성파 스님은 옻칠 불화, 서화, 도자기로 작업을 확장하며 전통 재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승려는 사찰이라는 전통 문화의 보고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는 설명이다. 전통 한지 제작부터 안료와 염료의 재배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바탕이 되는 재료를 직접 공수하는데, 그 중에서도 '옻'은 그의 작품 세계의 처음이자 끝이다. 옻을 주재료로 사용한 회화, 도자, 섬유, 조각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예술 세계를 만들었다. "옻은 우주선과 핵잠수함에도 쓰이는 첨단 재료인데 이렇게 아름답고 멋있는 재료가 없더란 말이지요. 어떤 재료보다 가벼우면서도 덧칠하면 단단해지면서 모든 빛을 빨아들입니다."
내구성이 강하고 포용력이 있는 옻칠의 물성을 재료 가운데 가장 좋아한다는 성파 스님의 본심은 전시장에 붙은 작가의 말에서도 읽혔다. "나는 옻칠을 할 때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옻이라는 물질은 칠하고 닦아 내기를 반복하면 할수록 본 바탕이 훤히 드러나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 그 자체가 선수행이 아닐 수 없다." 전시 기획에 참여한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성파 스님은 통도사라는 예술학교에서 1,300년간 이어진 전통을 완벽하게 체득한 분"이라며 "옻이라는 물질과 성파가 완벽하게 하나가 돼 전혀 다른 세계를 열었다"고 평가했다.
5년 동안 준비한 전시가 대대적으로 소개되며 대중적 관심이 쏟아지고 있지만 성파 스님은 오히려 몸을 낮췄다. "뭔가 나만의 것을 남기고자 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에요. 그저 본연의 물성을 최대한 살리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려고 해요. 힘들지 않냐고들 하는데 과정은 늘 즐겁습니다." 한사코 '이것은 작품이 아니다'를 외치면서도 세상에 없는 예술의 여정을 멈추지 않는 스님에게 서운암 수장고에 보관된 2,000점이 넘는 작품은 어떤 의미일까. "이걸 작품이라고 하든 다른 무엇이라고 하든 보는 이의 자유죠. 예불 드리고 밭매는 수행자의 일상 중간 중간에 스스럼없이 그리고 만들어온 것뿐입니다. 하루에 한 시간도 못할 때도 있고, 몇 시간이고 몰두하기도 해요. 주지도 않고, 팔지도 않습니다. 후대에 그대로 전할 뿐이죠.(웃음)"
진리와 일상의 빈 공간을 통과하는 예술, 수행과 생활을 연결하는 매개로서의 예술은 결과물보다 과정이 핵심이다. 스님은 도자를 굽는 과정을 '중생이 부처 되는 길'에 비유했다. "수많은 번뇌망상이 흙으로 존재하는데 한 생각으로 몰아치는 것이 물로 반죽하는 것입니다. 불에 굽는 것은 존재를 부정하는 것, 즉 태워 없애는 것이지요. 그 속에서 살아남는 게 바로 도자기입니다. 중생이 부처가 되는 것도 다르지 않아요." 일상의 고개를 묵묵히 넘어가는 평상심 속에서 기운생동의 무언가가 저절로 만들어지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나아가는 과정. 그것을 종교적 언어로 요약하자면 '선수행'일 테다. "읽는 방법만 알면 말이 달라도 예술은 다 통하게 돼 있다"고 믿는 스님은 "내가 이 시대의 많은 이야기를 남겨놓으면 100~200년 후의 사람과도 대화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심전심'으로 전하는 이야기가 그의 그림과 도자기에 가득하다.
평생 숨쉬듯 이어온 작업이지만 회화, 도자, 조각으로 저절로 넓혀지는 최근 몇 년의 행보는 성파 스님 스스로에게도 새로운 전환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전시를 준비한 예술의전당 이소연 큐레이터는 "스님의 작품이 수천 점 있는데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작품이 완성돼 있었고, 기법도 새로워져 놀랐다"며 "이 전시가 아마 또 다른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야 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스님은 앞으로의 작업이 불교계뿐 아니라 미술계에도 자극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우리의 문화예술이 전 세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이니 이제 우리 미술도 활개를 펼 때가 됐구나 해요.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예술 걸작을 보면 위대한 정신문화가 바탕에 있어요. 선예로서 문화적 자존감을 세우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열심을 내게 됩니다. 우리 스스로 그걸 긍정할 수 있다면 분명 많은 것이 달라질 겁니다." 60년 동안 산사에서 수행 정진한 선승이 무욕한 옻, 흙, 나무로 만들어낸 자유롭고 단단한 예술 세계를 세속의 우리가 읽어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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