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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선 대통령, 다리 위의 영부인

입력
2024.09.30 04:30
수정
2024.09.30 08:2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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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6일 건군 75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이 열린 서울 도심에서 장병들과 거리를 함께 걸으며 손 들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6일 건군 75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이 열린 서울 도심에서 장병들과 거리를 함께 걸으며 손 들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요란한 쇼타임이 임박했다. 전투기와 탱크의 굉음이 다시 서울 도심을 뒤덮는다. 내일 국군의날 시가행진을 또 하겠단다. 역대 정권 임기 중에 한 번이면 족하던 행사다. 광화문 일대 아스팔트에서 2년 연거푸 병력과 장비를 뽐내는 건 과거 30년간 없던 일이다.

지난해 건군 75주년과 한미동맹 70주년이 겹쳤다. 자긍심을 북돋는 이벤트로 제격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 중심에 섰다. 군 통수권자가 거리에서 처음으로 군복 입은 행렬과 함께 걸었다. “대통령이 흡족해하더라. 그런데 안 할 수가 있나.” 정부 관계자가 전한 뒷얘기다.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올해 시가행진은 지나치다. 대규모 퍼레이드로 불통의 간극을 메운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윤 대통령이 전국 각지를 돌며 주재한 민생토론이 이미 차고 넘친다. 그간 꺼리던 기자회견도 뒤늦게 재개해 소통의 형식을 갖췄다. 반면 지지율은 전례 없이 민망한 수치로 추락하고 있다. 임기가 절반이나 남았는데 국정 운영을 걱정할 정도다.

궁금한 건 최신 무기나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다. 북한의 위협 때문이라면 바뀐 상황에 맞는 비핵화 해법이 먼저다. 김정은 정권은 고농축 우라늄 제조시설을 버젓이 공개하며 핵을 틀어쥐고는 윤 대통령을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 대화하면 지원한다는 담대한 구상은 빛이 바랬다. 국제사회와 압박 수위를 높이고 흡수통일로 자극해도 저들의 핵 야욕을 꺾기엔 역부족이다.

죽기 살기로 버티는 북한을 상대하긴 버겁다. 김정은을 움직이긴 더 어렵다. 그에 비하면 민심에 다가서는 건 훨씬 쉽다. 윤 대통령의 답을 듣고 싶은 현안이 수두룩하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그만이다. 벽창호 같은 북한과 달리 언제든 대통령의 말에 호응할 준비가 돼 있다. 거창하게 보여주려 수십억 원을 쏟아붓고 공휴일을 늘린다고 엄지를 치켜들던 시절은 지났다.

김건희 여사가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를 방문해 난간을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김건희 여사가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를 방문해 난간을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고집했는지 아직 정확한 근거를 알지 못한다. 야당을 비난하고 국회 개원식조차 외면하면서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힌 연금개혁을 설득할 수 있을까. 의료공백 사태로 마음 졸이는데 뭐라도 해보겠다고 나선 한동훈 대표와의 독대를 팽개치며 배짱 부릴 만큼 한가한지 의문이다. 개혁에 반대하면 카르텔로 낙인찍고 잊을 만하면 반국가세력으로 몰아가면서 법안에 번번이 거부권으로 맞서는 악순환이 기약 없이 반복되고 있다.

꽤 많은 메시지를 내놓지만 대부분 성과 잔치다. 분주히 다니지만 정작 있어야 할 곳에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반대로 김건희 여사는 난데없이 존재감이 부각됐다. 마포대교 위에 올라가 경찰관에게 지시하는 듯한 장면이나 "미흡한 점이 많다"는 지적은 생경한 오지랖으로 비친다. 명품백, 주가조작, 공천개입으로 각종 의혹이 번져 떠들썩한데도 해명은커녕 월권 논란을 자초하며 공개행보에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앞서 여론이 싸늘할 때와는 사안의 엄중함이 다르다. 여당과 지지층에서도 불만이 노골적으로 터져 나온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면 무능한 정권이다. 알고도 그랬다면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윤 대통령 특유의 장광설로 어물쩍 뭉갤 수준을 넘어섰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기대를 저버리다 이 지경이 됐다. 이만하면 비용은 충분히 치렀다. 지켜보는 인내심마저 바닥 나야 직성이 풀릴 건가.

김광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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