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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칼잡이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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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개척시대는 캘리포니아 금광을 찾아 떠난 ‘포티나이너스(49ers)’의 1849년 골드러시로 본격화했다. 하지만 서부 영화 속 총잡이들은 연발 리볼버가 상용화된 20세기 초에야 등장했고, 이전 ‘프런티어맨’들의 주요 무기는 ‘부이 나이프(보위 나이프, Bowie Knife)’로 통칭되는 칼이었다.
제임스 부이(James Bowie, 1796~1836)란 남자가 있었다. 켄터키에서 태어나 형 레진(Rezin Bowie, 1793~1841)과 함께 미영전쟁 민병대에 가담했고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미주리, 텍사스 등지를 떠돌며 불법 노예무역과 땅투기로 큰돈을 모은 사내였다. 형제는 거칠고 호전적인 성정으로 악명 높았다고 한다.
1827년 9월 19일, 제임스는 미시시피강 어귀에서 벌어진 한 결투의 입회인으로 참여했다. 상대측 입회인이 하필 그와 대출 시비로 악연을 쌓은 지역 은행가 겸 보안관이었다. 쌍방의 언쟁이 격화하면서 결투는 양측 입회인과 구경꾼들이 가세한 집단 난투로 이어졌고, 부이는 휴대하고 있던 칼로 상대측 증인을 살해했다.
그 소문이 남부 전역으로 번지며 그의 칼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형 레진이 오랜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디자인해 주문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그 칼은 길이 약 24cm에 너비 약 4cm의 외날로, 주로 베는 용도였지만 휘어진 칼 끝부분을 양날로 세워 찌르는 데도 유효했고 손잡이쪽 날을 의도적으로 무디게 해 칼을 쥔 손의 부상 위험을 최소화했다.
그 원형을 본뜬 다양한 칼들이 ‘부이 나이프’라 불리며, ‘블랙파우더(흑색 화약)’ 시대가 끝나고 리볼버가 등장하기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도 미군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군사용 칼이 저 모델을 참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임스 부이는 텍사스 독립전쟁의 알라모 전투에서 전사했고, 형 레진은 루이지애나주 하원의원까지 지내고 자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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