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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뗏쭝투'는 어린이날, 조상에 음식 바치는 캄보디아… 비슷하면서 다른 '동남아 추석'

입력
2024.09.13 04:4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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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동남아시아는 가을 축제 중

베트남 추석인 '뗏쭝투'를 12일 앞둔 지난 5일 베트남 하노이의 한 상점에 부를 상징하는 잉어 모형이 걸려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베트남 추석인 '뗏쭝투'를 12일 앞둔 지난 5일 베트남 하노이의 한 상점에 부를 상징하는 잉어 모형이 걸려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오는 17일은 한국의 최대 명절 추석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통적인 명절 의미가 퇴색하고는 있으나, 한국에서 추석은 예로부터 가을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면서 햇곡식과 햇과일로 차례상을 차려 조상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는 날로 여겨져 왔다.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다소 의미가 다르다. 1년에 한 번, 가을철 농작물을 수확해 그 기쁨을 나누는 풍습은 ‘다모작’이 가능한 동남아에서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5일 하노이의 한 상점에 베트남 추석 '뗏쭝투'를 상징하는 사자와 용 머리 장식품 등이 전시돼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지난 5일 하노이의 한 상점에 베트남 추석 '뗏쭝투'를 상징하는 사자와 용 머리 장식품 등이 전시돼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그렇다고 이 시기를 기념하는 날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명칭이나 모습은 다르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여 한 해를 무사히 보낸 데 감사해하고, 풍요를 기원하는 취지의 기념일이 존재한다. 화교 인구가 많거나 유교 문화권인 국가에선 중국의 추석인 중추절 때와 닮은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동남아판 추석’에 대해 알아봤다.

휴일 아니지만 아이들 위해 투자

동남아 국가 가운데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베트남은 한국 추석과 같은 날인 음력 8월 15일에 ‘뗏쭝투’를 보낸다. 중국 중추절(仲秋節)을 베트남식으로 발음했다. 이 시기가 되면 부(富)와 복(福)을 상징하는 잉어와 사자, 용의 모형이 도시 곳곳을 장식한다.

베트남 추석 '뗏쭝투'를 12일 앞둔 지난 5일 하노이에서 어린이들이 대나무로 만든 작은 등을 바라보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베트남 추석 '뗏쭝투'를 12일 앞둔 지난 5일 하노이에서 어린이들이 대나무로 만든 작은 등을 바라보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중추절에서 기원했으나, 베트남 뗏쭝투는 중국 명절과는 의미나 풍경이 사뭇 다르다. 우선 정식 공휴일이 아니어서 직장인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한다.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은 어린이다. 아이들은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를 입고 대나무와 색종이로 만든 등불과 연등을 든 뒤 마을을 행진하며 보름달이 뜨길 기다린다.

학교나 유치원 또는 가족과 친지들이 아이들에게 장난감, 과자, 사탕을 선물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각 동네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각종 행사가 열린다. 이 같은 풍경이 ‘어린이날’(베트남 정부가 지정한 공식 휴일은 6월 1일)과 비슷한 까닭에 뗏쭝투를 ‘제2의 어린이날’로 부르기도 한다.

베트남 추석 '뗏쭝투'를 12일 앞둔 지난 5일 하노이의 한 사탕 가게에서 한 어린이가 사탕을 담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베트남 추석 '뗏쭝투'를 12일 앞둔 지난 5일 하노이의 한 사탕 가게에서 한 어린이가 사탕을 담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아이들이 뗏쭝투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일각에선 베트남 전쟁(1960∼1975년)으로 많은 전쟁 고아가 발생하자, 추석날 이들을 챙기기로 한 데에서 비롯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베트남 국부로 추앙받는 호찌민 전 주석이 생전 뗏쭝투를 ‘어린이를 위한 날’로 기념하자고 제안했고, 생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거나 직접 편지를 써 주었다고도 한다.

한편으로는 일년 내내 온화한 기후인 베트남에선 한 해 세 차례나 수확을 한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다는 속설도 있다. 농사일로 바빠 1년간 소홀했던 아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마지막 수확 시기인 뗏쭝투를 자녀에게 집중하는 날로 정했다는 것이다.

11일 베트남 하노이의 한 한국 회사가 현지 직원들에게 '뗏쭝투'를 기념해 제공한 월병 '반쭝투'.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11일 베트남 하노이의 한 한국 회사가 현지 직원들에게 '뗏쭝투'를 기념해 제공한 월병 '반쭝투'.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그렇다고 어른들이 뗏쭝투를 아무 의미 없이 보내는 것은 아니다. 친척이나 동료, 친구들은 서로 덕담과 함께 전통음식, 차, 와인 등 선물을 주고받는다.

뗏쭝투를 상징하는 음식은 보름달 모양의 반쭝투(베트남식 월병)다. 최근 대부분의 한국 가정이 송편을 사 먹듯, 베트남인들도 주로 반쭝투를 구매한다. 뗏쭝투 한 달 전쯤부터는 하노이와 호찌민 등 대도시 거리 곳곳에 킨도, 마담흐엉 등 현지 유명 제과 브랜드가 가판대를 설치해 선물용 월병 제품을 전시·판매한다.

베트남 여성이 지난 5일 하노이의 한 상점에서 베트남 추석인 '뗏쭝투' 선물을 고르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베트남 여성이 지난 5일 하노이의 한 상점에서 베트남 추석인 '뗏쭝투' 선물을 고르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업체나 지역마다 넣는 재료가 조금씩 다르지만, 밀가루와 돼지기름, 설탕, 달걀 등을 섞어 반죽을 만들고 그 속에 연꽃 씨나 녹두, 밤 또는 팥, 견과류 등의 소를 넣는다. 대학생 팜투이린(22)은 “예전보다 반쭝투 맛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요즘에는 초콜릿, 에스프레소 등 독특한 재료를 넣은 것도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 층에서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월병보다 소규모 사업자가 소량 생산한 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통해 판매하는 ‘수제 월병’이 인기”라고 소개했다.

한국 '추석'과 비슷한 동남아 명절

한국 '추석'과 비슷한 동남아 명절


신과 조상을 기리는 태국·라오스 명절

태국은 추석과 같은 날인 음력 8월 15일을 ‘완 와이 프라찬’이라고 부른다. 공휴일은 아니어도 태국 전체 인구의 12%를 차지하는 화교들이 수도 방콕의 차이나타운 등에서 대대적인 중추절 행사를 연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는 복숭아 모양 월병이다. 8명의 불사신이 음력 8월 15일 관세음보살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달의 궁전에 찾아가 인간의 번영과 행운을 비는 의미로 복숭아를 바쳤다는 전설에 기원을 두고 있다.

태국의 복숭아 모양 월병. 덴마크 매체 '아시안푸드서플라이' 홈페이지 캡처

태국의 복숭아 모양 월병. 덴마크 매체 '아시안푸드서플라이' 홈페이지 캡처

태국 PBS방송은 “태국 중추절은 중국 전통 문화와 태국 생활 방식을 결합했다”며 “특히 두리안 맛이 나는 월병이 인기”라고 설명했다. 자몽 계열 과일인 포멜로도 즐겨 먹는다. 포멜로의 둥근 모양이 가족 간 화합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한국의 추석처럼 ‘풍요’와 ‘감사’의 의미를 담은 기념일은 태국의 2대 명절 중 하나인 ‘러이끄라통’이 더 가깝다. 태국력 12월 보름, 양력으로는 주로 11월에 열린다.

이 시기가 되면 온 가족이 모여 보름달을 구경하고 함께 만찬을 즐긴다. 이후 바나나잎이나 연잎으로 만든 작은 연꽃 모양 끄라통(작은 배)에 향초와 꽃 등을 넣은 뒤, 강이나 호수에 띄워(러이) 한 해 풍요를 준 물의 신에게 감사를 표하고 소원을 빈다.

태국 2대 명절 중 하나로 꼽히는 '러이끄라통'에 개최된 행사 모습. 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캡처

태국 2대 명절 중 하나로 꼽히는 '러이끄라통'에 개최된 행사 모습. 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캡처

이웃 국가 라오스의 추석인 ‘보운카오살락’은 조상에게 감사를 드리는 날이다. 음력 열 번째 보름달이 뜨는 날 열린다. 오전 5, 6시쯤 절에 가서 부처님에게 과일, 꽃, 양초, 말린 생선, 바나나, 담배 등이 담긴 바구니를 바치고 돌아가신 조상을 기린다.

현지 매체 라오티안타임스는 “보운카오살락 때 죽은 자의 영혼이 제물을 받지 못하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불운을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인들이 한국의 추석에 해당하는 '보운카오살락'을 맞아 절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다. 라오티안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라오스인들이 한국의 추석에 해당하는 '보운카오살락'을 맞아 절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다. 라오티안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어른에게 절하고 용돈 받는 미얀마 떠딘

캄보디아에도 추석과 비슷한 ‘프춤벤’이라는 명절이 있다. 캄보디아 전통 크메르력을 기준으로 10월 15일을 전후해 2, 3일간 국경일로 지정됐다. 보름달이 떴다가 조금씩 어두워지는 시기인데, 캄보디아 사람들은 이때 저승문이 열리면서 조상님들이 밥을 얻어먹기 위해 이승을 찾아온다고 믿는다. ‘프춤’(모으다)과 ‘벤’(쌓아놓은 밥)을 결합한 ‘프춤벤’이라는 이름대로다.

이 기간에 캄보디아인들은 가까운 절 일곱 곳을 찾아 조상을 위해 음식을 공양하고 법문을 듣는다. 또 새벽 4시쯤 절 바닥에 주먹밥을 뿌리는 '버 바이 번' 의식을 치르는데, 이 역시 1년간 저승에서 굶은 조상에게 밥을 드린다는 뜻을 지녔다.

캄보디아의 '추석'인 프춤벤 날, 시민들이 절에서 음식을 앞에 두고 조상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크메르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캄보디아의 '추석'인 프춤벤 날, 시민들이 절에서 음식을 앞에 두고 조상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크메르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인구 80%가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은 가톨릭 축일인 만성절(All Saint's Day·11월 1일)을 최대 명절로 꼽는다. ‘모든 성인의 날’이라는 이름처럼 종교적 의미와 문화적 의미를 둘 다 지녔다.

통상 사흘간 쉬는 추석과 달리 단 하루만 휴일이지만,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한국과 같다. 고향을 방문하거나 평소 왕래가 어려웠던 친지를 찾아가거나, 만성일 1, 2주 전 조상의 묘를 찾아 무성해진 풀을 정리하고 주변을 청소하는 풍습도 비슷하다.

만성절에 필리핀인들은 꽃과 촛불로 조상의 묘를 장식하고 기도를 올린다. 성묘를 할 때 단순히 묵념으로 끝나지 않고 묘지에서 밤을 새며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특징이다. 동양과 서양 전통이 혼재된 셈이다. 이날 바나나잎에 찹쌀, 코코넛, 설탕 등을 넣고 찐 전통 음식 ‘수만’을 먹는다.

만성절인 지난해 11월 1일 필리핀 마닐라의 한 공동묘지를 찾은 시민들이 고인이 된 가족의 묘비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마닐라=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만성절인 지난해 11월 1일 필리핀 마닐라의 한 공동묘지를 찾은 시민들이 고인이 된 가족의 묘비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마닐라=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떠딘’은 미얀마 새해 ‘띤잔 물 축제’ 다음으로 큰 명절이자 축제다. 이 기간 미얀마 사람들은 파고다(탑), 관공서, 건물, 집집마다 전구나 촛불 같은 장식으로 밤새도록 불을 밝힌다. 한국처럼 어린이가 어른에게 절을 해 공경을 표하고, 어른은 용돈이나 선물을 건넨다.

화교 비율이 75%에 달하는 싱가포르의 중추절은 중국 중추절과 꼭 닮았다. 거리와 공원마다 등불을 든 시민들이 퍼레이드를 펼치고 불꽃놀이와 전통 공연 등에 참여한다. ‘홍바오’라고 불리는 빨간 봉투에 용돈을 담아 주는 풍습 역시 중국 문화와 유사하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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