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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마오쩌둥을 1,300억 모델로 만들다

입력
2024.09.12 04:30
25면

편집자주

김승민 큐레이터는 영국 왕립예술학교 박사로 서울, 런던, 뉴욕에서 기획사를 운영하며 600명이 넘는 작가들과 24개 도시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미술 시장의 모든 면을 다루는 칼럼을 통해 예술과 문화를 견인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힘에 대한 인사이더 관점을 모색한다.

앤디 워홀의 작품 '마오'. 높이가 무려 15피트(약 4.6m)에 달하는 대형 작품이다. 앤디 워홀 재단 제공

앤디 워홀의 작품 '마오'. 높이가 무려 15피트(약 4.6m)에 달하는 대형 작품이다. 앤디 워홀 재단 제공

미국 거고지언 갤러리는 전 세계에 19개 지점을 갖고 있다. 19개 중 핵심으로 분류되는 뉴욕 첼시 지점에서 '반세기의 예술 아이콘'(Icons from a half century of art) 전시가 진행 중이다. 철저한 예약제와 내부 촬영이 금지된 그곳에는 5m 높이의 웅장한 작품 '마오'(Mao·1972년)가 자리 잡고 있다. 세계적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1928~1987·미국)의 작품으로, 세상에 딱 4점밖에 없다는 워홀이 그린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의 대형 초상화다.

가격은 얼마일까. 이전 판매 기록, 작품의 독창성, 뉴욕시장의 구매력 등을 고려하면 약 1억 달러로 추정된다. 고가의 예술 작품 중에서도 최상위 등급에 속한다. 어떻게 이런 가격이 가능할까. 작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미술사적 가치 △수집·판매의 역사 △희소성을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우선, 소재 자체가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마오를 만난 1972년 중국 방문은 미중 간의 오랜 외교적 단절을 종식시킨 역사적 사건이다. 워홀은 1972~1973년 199점의 마오 실크스크린 회화를 다섯 가지 크기로 제작했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재생산된 마오의 상징적 이미지를 미술로 둔갑시켰다. '정치적 선전'과 '자본주의 광고' 사이의 유사성을 간파한 것이다. 유명인에 대한 대중의 집착, 그리고 광고를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려는 본인(워홀)의 야망을 작품에 담았다.

작품의 희소성과 수집·판매 과정에서도 고가의 추정가치를 인정받는 요인이 확인된다. 이미 언급했듯, 워홀이 남긴 5m 규모의 대형 마오 작품은 단 4점뿐이다. 이 중 2점은 미국의 미술관 두 곳에 각각 소장돼 있다. 하나는 1974년 시카고 미술관이 구입했고, 또 하나는 1977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됐다. 나머지 2개는 유럽과 아시아에 한 개씩 있다. 2017년 홍콩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아시아의 수장가'가 1,270만 달러에 사들였다. 저명한 컬렉터였던 유럽의 소유주(독일)는 2020년 세상을 떠났다.

광고를 제작하던 워홀과 포스터 판매상에서 화상(畵商)으로 전환한 래리 거고지언과의 인연도 주목을 받는다. 두 사람의 만남은 미술 시장의 역사에서 극적인 결과를 낳았는데, 워홀의 작품이 고가로 거래되는 과정에서 거고지언이 큰 수완을 발휘했다. 그 결과, 워홀은 거고지언 갤러리가 연 매출 10억 달러 이상을 올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메가 아티스트가 됐다. 워홀의 작업 중 가장 고가의 작품은 매릴린 먼로 초상화인데, 2022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9,500만 달러에 거래됐을 때 경매장에서 손을 올린 사람도 거고지언이었다.

지난 25년 동안 유럽이나 아시아 시장에서 거래됐던 '마오'가 처음 뉴욕 시장에서 판매를 모색하는 점도 흥미롭다. 일본이 전성기를 누리던 1980년대에는 수많은 인상파 그림이 일본으로 넘어갔다. 중국 경제가 급성장할 때는 중국 컬렉터들이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작품들을 매입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과 중국 경제가 둔화하면서 많은 작품이 다시 서방으로 돌아와 새로운 구매자를 찾고 있다. 고가의 예술 작품들은 세계 금융 시장의 흐름에 따라 이동한다.

거고지언 갤러리는 아직 한국에는 지점이 없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한국 첫 전시회(데릭 애덤스 개인전·9월 3일~10월 12일)를 개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한국이 아닌 아시아 전체 시장에 대한 포석인 듯하다. 한국도 미술 거래량이 꾸준히 올라, 전 세계 시장의 1%를 차지하며 새로운 컬렉터도 계속 배출되고 있다. 시장성도 중요하지만, 아시아 작가를 발굴할 무대가 된다는 의미도 있다.

2024년 프리즈 서울(9월 4~7일·서울 코엑스)에 참가한 갤러리의 64%가 아시아 국가였다. 여기에 부산비엔날레(8~10월)와 광주비엔날레(9~12월)도 잇달아 열리니, 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작가가 나올 수도 있겠다.

김승민 슬리퍼스써밋 & 스테파니킴 갤러리 대표
대체텍스트
김승민영국 왕립예술학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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