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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와 슬픔을 착취하는 미국 장례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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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미사일 위기(1962.10)와 미·소 우주경쟁, 베트남 전쟁, 시민 인권운동으로 어수선하던 1963년, 한 권의 논픽션이 미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장례산업의 비윤리적 실태를 고발한 200쪽 남짓의 책 ‘미국식 죽음의 방식(The American Way of Death)’이었다.
무명 사회활동가 겸 탐사저널리스트 제시카 밋포드(Jessica Mitford, 1917.9.11~ 1996.7.23)는 가족 친지를 잃은 유족의 슬픔과 충격을 이용해 고가의 장례용품과 불필요한 서비스를 파는 장례산업의 독점적 관행과 폭리 구조를 신랄하고도 위트 있게 꼬집었다.
영국 옥스퍼드셔 남작 가문의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밋포드는 파시스트 부모(형제)와 10대 때 결별하고 가문의 모든 특권을 포기했다. 그는 스페인 내전 국제여단으로 참전했던 사촌과 결혼해 3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남편은 2차대전 발발 직후 미국이 참전을 머뭇거리자 캐나다 공군에 입대했고 41년 작전 중 실종됐다. 전시 노동자로 일하던 밋포드는 43년 인권변호사 로버트 트로이하프트(Robert Treuhaft)와 재혼했고, 남편과 함께 미국 공산당에 입당, 노동인권운동에 매진했다. 매카시즘의 50년대, 부부는 미 하원 비미활동위원회에 소환돼 조사받으면서도 조직 활동과 조직원에 대한 증언을 일절 거부했고, 다양한 팸플릿과 에세이 등을 통해 계급적 불의와 위선, 공산당 활동가들의 편협한 노선 등을 폭넓게 비판했다. 부부는 58년 탈당했다.
밋포드는 한 노동단체의 사망보험 업무를 돕던 남편의 말을 듣고 장례산업 실태를 취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책은 일약 베스트셀러가 됐고 장례산업 실태에 대한 미 하원 청문회까지 열렸다. 그는 개정판 원고를 완성(98년 출간)한 뒤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졌다.
그의 장례 비용은 화장 비용(475달러)을 포함 총 533.31달러(2023년 기준 약 1,036달러)로 당시 평균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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