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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와 슬픔을 착취하는 미국 장례산업"

입력
2024.09.1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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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제시카 밋포드

1988년 8월 영국 TV쇼 'After Dark'에 출연한 제시카 밋포드. 위키피디아

1988년 8월 영국 TV쇼 'After Dark'에 출연한 제시카 밋포드. 위키피디아


쿠바 미사일 위기(1962.10)와 미·소 우주경쟁, 베트남 전쟁, 시민 인권운동으로 어수선하던 1963년, 한 권의 논픽션이 미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장례산업의 비윤리적 실태를 고발한 200쪽 남짓의 책 ‘미국식 죽음의 방식(The American Way of Death)’이었다.

무명 사회활동가 겸 탐사저널리스트 제시카 밋포드(Jessica Mitford, 1917.9.11~ 1996.7.23)는 가족 친지를 잃은 유족의 슬픔과 충격을 이용해 고가의 장례용품과 불필요한 서비스를 파는 장례산업의 독점적 관행과 폭리 구조를 신랄하고도 위트 있게 꼬집었다.

영국 옥스퍼드셔 남작 가문의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밋포드는 파시스트 부모(형제)와 10대 때 결별하고 가문의 모든 특권을 포기했다. 그는 스페인 내전 국제여단으로 참전했던 사촌과 결혼해 3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남편은 2차대전 발발 직후 미국이 참전을 머뭇거리자 캐나다 공군에 입대했고 41년 작전 중 실종됐다. 전시 노동자로 일하던 밋포드는 43년 인권변호사 로버트 트로이하프트(Robert Treuhaft)와 재혼했고, 남편과 함께 미국 공산당에 입당, 노동인권운동에 매진했다. 매카시즘의 50년대, 부부는 미 하원 비미활동위원회에 소환돼 조사받으면서도 조직 활동과 조직원에 대한 증언을 일절 거부했고, 다양한 팸플릿과 에세이 등을 통해 계급적 불의와 위선, 공산당 활동가들의 편협한 노선 등을 폭넓게 비판했다. 부부는 58년 탈당했다.

밋포드는 한 노동단체의 사망보험 업무를 돕던 남편의 말을 듣고 장례산업 실태를 취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책은 일약 베스트셀러가 됐고 장례산업 실태에 대한 미 하원 청문회까지 열렸다. 그는 개정판 원고를 완성(98년 출간)한 뒤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졌다.
그의 장례 비용은 화장 비용(475달러)을 포함 총 533.31달러(2023년 기준 약 1,036달러)로 당시 평균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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