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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름다움이 독재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입력
2024.08.3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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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 넬리아 산초- 1

1971년 호주 멜버른 '퀸 오브 더 퍼시픽'에서 우승한 뒤 인권운동가로 변신한 필리핀 여성 넬리아 산초. 가족사진

1971년 호주 멜버른 '퀸 오브 더 퍼시픽'에서 우승한 뒤 인권운동가로 변신한 필리핀 여성 넬리아 산초. 가족사진

교도소 재소자들끼리도 미인선발대회를 열 만큼 미인대회에 열광한다는 나라가 남미 베네수엘라지만, 필리핀도 그에 못지않은 나라 중 한 곳이다. 학교나 마을 축제 때마다 거의 빠뜨리지 않고 미인대회가 포함되고, 한 보도에 따르면 홍콩 등지에 진출한 필리핀 가사노동자들끼리 휴일에 모여 자신들만의 미인대회를 열 정도라고 한다. 학자들은 16세기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시작된 필리핀 5월의 축제 ‘플로레스 드 마요(Flores de Mayo, 5월의 꽃)’와 축제 마지막 날 열리는 ‘산타크루잔 페스티벌’의 ‘5월의 여왕(May Queen)’ 대관식이 그 전통의 시작이라고 여긴다.

필리핀 가톨릭 전통에 따르면, 5월의 여왕은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를 찾아내 간직했다는 로마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 ‘엘레나(Elena) 여왕’을 계승하는 존재다. 필리핀 미인대회 우승자는 그래서, 미인대회에 대한 여러 타당한 비판과 폄하에도 불구하고, 세속적 명성과 물질적 성취 외에 종교적 존엄의 망토를 두르고 더러 정계에도 진출하곤 한다. 필리핀은 지금까지 6명의 미스인터내셔널과 4명의 미스유니버스, 3명의 미스어스를 배출했고, 미스 트랜스글로벌과 미스월드도 각 1명씩 보유하고 있다.

넬리아 산초(1951.8.30~2022.9.1)는 미인대회 우승자 출신 필리핀 인권운동가다. 저명 변호사의 딸이던 그는 대학 시절 미인대회에 출전, 1969년 미스 유니버스 우승자인 글로리아 디아즈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고 71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퀸 오브 더 퍼시픽’에서 우승했다. 국가 문화사절로서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던 그는 홍콩에서 열린 한 파티에서 호주 대사를 만나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마르코스 독재권력이 그와 같은 국제 미인대회 우승자들을 이용해 비열한 국가범죄에 대한 국제적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 그녀도 이용당하고 있다는 거였다.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폭압적인 계엄 통치 시절이었다.(계속)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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