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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 업소라 비껴간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일본은 이미 소급 적용 중

입력
2024.08.26 19:30
수정
2024.08.26 19:38
2면

일본·독일 등 고층 건물 대상 소급 적용
대부분 노후 업소... 영세업자 비용 부담 문제
"계도 기간 주고 정부 차원 지원 있어야"

24일 오전 경기 부천시 중동 호텔에서 화재 조사관이 장비를 챙기고 있다. 지난 22일 이곳 호텔에서 발생한 화재로 7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24일 오전 경기 부천시 중동 호텔에서 화재 조사관이 장비를 챙기고 있다. 지난 22일 이곳 호텔에서 발생한 화재로 7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7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부천시 호텔 화재에서 스프링클러 미비가 인명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비교적 뒤늦게 법을 만들었으면서도 법을 소급 적용한 일본,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주목받고 있다. 화재가 발생한 부천의 호텔은 9층짜리로 2004년 완공됐는데 6층 이상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를 골자로 한 소방시설법 시행(2018년) 전 에 만들어져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다.

2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 독일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은 1980~90년대부터 숙박업소에 스프링클러가 점진적으로 설치되다가 2000년대 초 의무화 규정이 완비됐다. 2003년 관련 법이 만들어진 일본은 다소 입법이 늦었다. 당초 일본 화재예방법·건축기준법에는 31m 이상 고층 건물에만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했다. 그런데 2011년 법을 개정하면서 11층 이상이거나 면적 등 사유로 고위험으로 분류된 숙박업소에도 설치의무를 부여했다. 이때 법 개정 전 지어진 기존 건물에도 설치 의무를 소급해 부여했다. 독일도 2017년 영국 런던 그렌펠 타워 화재를 계기로 일부 주에서 숙박업소를 비롯한 고층 건물에 대한 스프링클러 규제를 소급 적용한 바 있다.

미국은 국제소방법과 국립화재방지협회(NFPA) 101(생명 안전 코드)에서 독일은 산업 표준(DIN 규정)에서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독일은 연방 주마다 다르지만, 각각 '5층 이상이거나 특정 면적 이상(약 700㎡)의 숙박업소', '4층 이상이거나 60명 이상 수용하는 숙박업소'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부천 화재를 계기로 2018년 개정된 소방법을 소급해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영세업자가 많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비용 부담이 걸림돌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소급 적용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비용 부담을 영세업자에 떠넘기지 않기 위한 현실적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일본, 독일 등에서는 스프링클러 설치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 세금 공제 및 감면을 해주고, 소규모 사업자 대상으로 저리 대출을 제공하는 등 안전을 강화하면서도 영세업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병행한다. 시행 전 3~5년간 계도 기간을 두는 경우도 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건물 구조에 익숙하지 않은 숙박업소 투숙자도 피난 약자로 분류해 예외적인 소급 적용이 이뤄져야 한다"며 "지원 방안을 마련해 숙박업자를 설득하고 계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유예 기간을 주고 업주에 과도하게 비용이 전가되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설치 지원 사업을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권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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