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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한계” 현장은 아우성… 정부 “중증·응급 중심 개편”

입력
2024.08.23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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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주 응급실 환자 평시 111%
코로나 재유행에 경증환자 43%
응급실 과부하에 의료진 번아웃
경증 병의원 분산·의료진 보상↑

22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실 앞에 경증환자 진료 제한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정부는 이날 중증·응급환자의 진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장 의료진 보상 강화, 경증환자 병의원 분산 등 응급의료 대책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22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실 앞에 경증환자 진료 제한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정부는 이날 중증·응급환자의 진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장 의료진 보상 강화, 경증환자 병의원 분산 등 응급의료 대책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의료공백 장기화에 코로나19 재유행이 겹치면서 응급의료체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현장에선 의료진 소진으로 지방부터 응급실 붕괴가 시작돼 조만간 서울·수도권으로 번질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응급환자 진료에 어려움이 커진 건 사실이나 응급실 마비가 아닌 일부 기능 축소라고 설명하면서 중중·응급환자 중심으로 응급의료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의료진 번아웃에 사직 릴레이… 응급실 구인난

2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응급실을 찾는 환자 수가 전공의 이탈 이전보다 늘었다. 이달 셋째 주 전국 408개 응급의료기관에 내원한 환자 수는 하루 평균 1만9,784명으로 평시의 111%에 달한다. 전공의가 정상 근무했던 2월 첫째 주 평일(1만7,892명)보다도 많다. 응급실 환자 43%는 경증비응급(8,541명)이고 그중 7%는 대부분 증상이 가벼운 코로나19 감염자다. 중증·응급환자를 돌보기에도 일손이 부족한데 경증환자까지 쏠리면서 결국 응급실에 과부하가 걸렸다.

의료진 업무 과중과 번아웃은 사직, 이직, 병가 등 인력 이탈을 초래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에 따르면 최근 응급실 의사 채용 사이트에 올라온 구인 인원을 합치면 50명이 넘는다. 한꺼번에 10명을 뽑는 병원도 있다. 응급실은 의사가 한 명만 그만둬도 남은 의료진의 업무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 연쇄 사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세종충남대병원은 의료진이 부족해 매주 목요일 야간에 응급실 문을 닫는다. 경북대병원과 부산대병원 등 지역 대학병원 응급실에도 일부 진료 제한 메시지가 떠 있다. 최종 치료를 담당하는 진료과에도 전문의가 부족해 응급실 환자를 입원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라 아예 응급실 단계부터 환자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 전 충북대병원 응급실이 일시 폐쇄돼 임신부가 병원을 찾아 헤매다 구급차 안에서 출산한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파행 운영됐던 충북대병원과 속초의료원 응급실은 다급히 인력을 충원해 정상화됐다. 순천향대천안병원과 단국대병원도 다음 달부터 정상 운영된다. 하지만 의료진 피로 누적으로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응급실이 다수라는 게 현장 목소리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이 환자를 받아주지 않아 환자가 종합병원으로 쏠렸는데 이제는 종합병원도 포화 상태가 됐다”며 “결국 환자들이 다시 대형병원으로 향하게 되면 추석 연휴 전후로 서울·수도권 응급실도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증환자 분산해 응급실 과밀화 해소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부도 경증환자 증가로 인한 응급실 과밀화를 우려하고 있다. 다만 최근 응급실 운영 파행은 응급의료 마비가 아닌 일부 기능 축소라고 판단했다. 병상을 축소 운영하는 응급의료기관은 25곳(6%)으로 2월 말 6곳에서 늘었지만, 전체 병상 수(6,000여 개) 대비 줄어든 병상 수 규모(170개 안팎)는 3% 수준이라 환자 수용력이 있다는 것이다. 응급의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의료진 보상 강화, 경증환자 병의원 분산 등 추가 대책도 마련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2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중증응급환자 진료에 중점을 두고 ①현장 응급의료 인력 이탈 방지 ②경증환자 응급의료센터 방문 자제 ③환자의 응급실 체류 시간 단축을 위한 후속진료 지원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를 2월부터 100% 가산한 데 이어 추가 인상하고, 권역 및 지역 응급의료센터 전담인력 인건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권역·지역 응급의료센터 15곳은 거점센터로 지정해 중증·응급환자 진료에만 집중하도록 할 계획이다. 경증·비응급 환자가 권역·지역 응급의료센터를 이용하는 경우 외래진료 본인부담금 비율을 현행 50~60%보다 더 많이 내는 방안도 추진한다. 응급실 문턱을 높여 경증환자를 동네병원으로 유인하려는 의도다.

중증·응급 환자 수용률, 병원 간 전원 환자 수용률, 비상진료 기여도 등을 평가해 우수 기관에 추가 인센티브를 주고, 응급실 진료 외 입원 후 수술, 처치, 마취 등 후속진료 수가도 인상한다. 환자가 응급실에 머무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서 응급실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다.

아예 이송 단계부터 경증환자를 가려내는 시스템도 적용된다. 다음 달부터 ‘이송 단계 중증도 분류기준(Pre-KTAS)’이 시행되면 119구급대가 환자 중증도에 적합한 병원을 결정해 이송할 수 있다. 광역상황실에 설치되는 ‘신속심의위원회’는 119구상센터에서 의뢰한 중증·응급환자 이송 병원을 선정하는 작업을 맡는다.

박 차관은 “전공의 이탈로 직면하게 된 현장의 어려움은 새로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간 의료개혁이 지체되면서 누적된 문제”라며 “눈앞의 문제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을 할 수 있도록 의료개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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