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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기 SG배 한국일보 명인전] 사라진 낭만

입력
2024.08.23 04:30
23면

흑 문민종 8단 vs 백 신민준 9단
본선 16강전
[9]

3보

3보


5도

5도


6도

6도

인공지능(AI)이 등장한 후 사라지다시피 한 기풍이 있다. 바로 극단적인 실리형. 과거엔 ‘폭파 전문가’ 조치훈 9단, ‘지하철 바둑’ 고바야시 고이치 9단 등 극단적으로 실리를 취한 후 상대 세력을 침투하는 스타일만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기사들이 있었다. 이런 스타일이 자취를 감춘 것은 AI의 여파가 크다. AI는 실리와 세력의 균형과 조화에 중점을 둔다. 실리와 세력의 경계선에서 조금이라도 무너진 쪽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런 점에선 이창호 9단의 스타일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바둑을 탐구하는 프로기사 입장에선 이런 부분에서조차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대중적인 흥미요소가 되긴 지나치게 미시적인 영역. 바둑 팬의 입장에선 프로기사마다 다양한 스타일이 있고 정답은 없던 옛날 바둑이 더 흥미롭고 낭만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민종 8단이 흑1, 3으로 버티며 절체절명의 수순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백보다는 흑이 더 부담스러운 상황. 백은 상황에 따라 사석작전으로 버릴 수 있지만 흑은 어디 하나라도 잡히는 순간 경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흑7까지 쌍방 외길 수순. 여기서 일견 급소처럼 보이는 백8이 큰 실착. 5도 백1에 막는 수가 강력한 장면이었다. 일견 흑14까지 백이 전부 잡힌 것처럼 보이지만 백15가 성립한다. 백23으로 메우면 양자충을 이용해 백이 한 수 빠른 수상전. 결국 흑은 6도 흑2에 가만히 씌우는 게 최선이다. 백3의 붙임이 성립하면서 흑14까지 쌍방 타협이 이뤄진다. 약간이나마 백이 우세한 진행. 실전 흑9, 11에 밀자 중앙이 너무 두터워졌다. 신민준 9단은 상변을 살리지 않은 채 다시 백14로 중앙을 움직인다. 결국, 흑23이 놓이면서 상변 백은 잡히고 만다.


정두호 프로 4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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