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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참사, 두 달이 풀지 못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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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두 달 전 리튬전지 화재사고로 23명이 목숨을 잃은 경기 화성시 서신면 아리셀 공장 앞에 지난 주말 시민 2,000여 명이 모였다. 서울, 부산,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온 시민들은 공장 앞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 참배를 하고 화성시청까지 도보로 행진을 했다. 세월호, 이태원 등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가족들이 소외되거나 공격당하고 조롱거리까지 되는 일이 반복됐기에, 유가족들의 고립을 막겠다는 시민적 연대감의 표시였다.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가 발생했던 부산의 한진중공업(2011년), 원전 전력을 대도시로 보내는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이 전개됐던 경남 밀양(2014년)의 경우처럼, 이번에 희망버스가 화성으로 향한 동기는 명료하다. 버스를 탄 시민들이 찾은 곳은 대체로 사회적 약자들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리셀 참사 희생자 23명 중 18명이 외국인(중국 동포 17명, 라오스인 1명)이었고, 여성은 15명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인력이면서도 내국인보다 사회적 처지가 낮고 처우는 열악한 이들이다. 한 전문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혐오 및 젠더적 인종주의에 가장 취약한’ 존재들이다. 우려했던 대로 화성시의 행정적·법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세금 축내지 말고 나가라”고 조롱하고 비난하는 주민들이 나오고 있다. 참사 직후 “유족에게 진심을 다하겠다”던 아리셀 측이 이후 유가족 협상창구인 유가족 협의회를 무성의하게 상대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모른다. 참사가 발생한 지 두 달가량 됐지만 보상논의는 고사하고 7명의 희생자 유가족이 장례를 미루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루하루가 다이내믹한 한국사회에서 참사는 벌써 먼 일처럼 느껴지고, 공분은 희미해졌겠지만 별로 변한 것이 없다는 점에서, 다시 아리셀 참사의 교훈을 되짚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아리셀 공장에서는 과거 참사 때마다 지적됐던 문제가 되풀이됐다. 4년 전 38명이 사망한 이천 물류센터 화재 때는 사측이 냉동창고의 결로(結露)를 막겠다며 비상구를 폐쇄하는 바람에 대피로를 찾지 못한 많은 이들이 희생됐는데, 아리셀 화재에서는 비상구 앞에 인화물질이 잔뜩 쌓여 있어 비상구 반대편에서 희생자가 집중적으로 나왔다. 언어 장벽이 있고 고용관계가 복잡한 희생자들이 대피교육을 제대로 받았을 가능성도 낮다. 새로운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리튬 같은 가연속 금속 화재의 전용소화기에는 성능기준이 없어 화재에 무방비라는 점이 이번에 알려졌고, 신분이 불안정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기 쉬운 단기 이주노동자들뿐 아니라 외국인 중 신분이 가장 안정된 재외동포들마저 산재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 새로 조명됐다.
하지만 정작 참사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이면서 중소 제조업 노동시장의 병폐인 불법 파견 문제를 따지는 데는 진전이 없다. 쉽게 말하자면 누가 노동자들에게 작업을 지시하고 근태를 관리했는지 안전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진짜사장’을 찾는 문제는 등한시되고 있다는 얘기다. 업무지시를 아리셀이 했다는 노동자들의 일관된 증언에도 불구하고 법적 책임은 인력공급 업체에 있다고 주장하며 합의를 종용하는 아리셀은 말할 것도 없고, 당국도 무심하다. 고용노동부는 지난주 65가지 문제를 지적한 아리셀 특별감독 결과와 제도개선책을 내놨지만 아리셀의 파견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노동자들의 불안정성을 극대화하고 사용자들의 안전책임을 최소화하는 불법파견 문제를 그대로 둘 참인가. 노동자들의 희생이 밑거름이 됐던 안전권 진전의 역사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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