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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원칙이 키운 한국 양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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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한국 양궁은 금메달 5개를 휩쓸며 실력을 입증했다. 무려 40년간 지킨 세계 최강 자리다. 1984년 LA 대회 이후 11차례의 올림픽에서 빠짐없이 금메달을 따냈고, 양궁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72년 뮌헨 올림픽부터 따지면 총 50개의 금메달 가운데 32개(64%)가 한국 선수들의 몫이었다.
이런 무시무시한 성과를 낸 한국 양궁의 ‘간판 스타’가 누구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여자 선수만 살펴보면 나이 지긋한 팬들은 양궁 첫 금메달리스트 서향순, 서울 올림픽 2관왕 김수녕을 기억할 테고, 이후 세대에겐 윤미진, 박성현이 최고였을 것이다. 젊은 세대는 기보배와 안산을 떠올리겠지만, 이번 대회에선 스물한 살 대학생 임시현이 금 3개를 따며 새로운 스타가 됐다.
한 국가가 스포츠 종목에서 최강으로 군림할 때는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특정 선수가 중심이 돼 오랜 기간 전성기를 누리다가 해당 선수의 기량이 쇠퇴할 때쯤 세대 교체를 통해 재도약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국 양궁은 다른 길을 걸었다.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매번 새 얼굴의 강자가 등장한다. 이는 매년 혁신적인 제품·서비스를 내놓는 빅테크 기업과 닮았다. 혁신의 비결은 한국 양궁의 상징이 된 ‘공정하고 투명한 대표 선발 시스템’이다.
과거 한때 일부 스포츠 종목에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등을 해도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무명의 신인 선수가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대회 메달리스트를 이겼을 때 이른바 ‘본선 경쟁력’이 거론된다. 국제대회의 경험과 관록 대신 당장의 실력만으로 성과를 낼 수 있겠냐는 회의론도 등장한다. 결국 무명의 1등 선수가 출전권을 양보하거나 기존 메달리스트가 가산점을 받는 방식으로 태극마크의 주인이 바뀐다. ‘국제용 선수’와 ‘국내용 선수’의 구분이 존재했던 것이다.
‘전략적 선택’으로 포장되지만 이 과정에서 학연과 인맥이 작동한다. 그리고 파벌이 형성된다. 파벌이 위세를 떨치는 종목의 현주소가 어떤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양궁은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선수가 대표팀에 선발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원칙이 지켜지는 종목이다. 남녀 각각 100여 명의 선수가 매년 3차에 걸친 선발전에 출전해 8명의 국가대표가 성적순으로 뽑힌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같은 조건에서 경쟁한다. 선발 과정이 치열해 2021년 도쿄 올림픽 3관왕 안산은 파리 대회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
다만 한번 뽑힌 선수는 끝까지 믿어준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극심한 부진에 빠진 최현주를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원칙을 깰 수 없다”며 밀어붙인 것이 한국 양궁이다. 결과는 단체전 금메달이었다.
한국 양궁의 성공 스토리에 담긴 ‘상식과 원칙’은 역설적으로 이 두 가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지난 총선과 이후 전당대회에서 보여준 우리 정당의 모습이 그렇다.
후보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되거나 수시로 바뀐 공천 기준, 전·현직 의원들의 돌려막기·낙하산 공천, 경선 불복 후 탈당, 특정인 맞춤형 당헌당규 개정 등. 당원 민주주의가 확대된 시스템 공천이자 공정 경쟁이라 주장하지만, 실상은 반대파 제거, 측근 챙기기를 위한 파벌 싸움일 뿐이었다.
선거 승리를 위해선 ‘본선 경쟁력’을 갖춘 특정 정치인을 중심으로 뭉쳐야 하고, 당내 경쟁도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한국 양궁의 ‘상식과 원칙’은 비현실적인 판타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원칙이 누가 나가도 승리하는 한국 양궁을 만들었다. 우리 정당도 누구를 내세워도 승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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