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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잘못하면 나라 망해"...DJ가 '목소리로 쓴 자서전'에서 걱정한 것

입력
2024.08.16 15:00
수정
2024.08.16 15:58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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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기획 '김대중 육성 회고록'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이던 1960년대 중반 연설을 하고 있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제공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이던 1960년대 중반 연설을 하고 있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제공

일제강점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1924~2009)은 징병을 앞두고 있었다. 신체검사를 받은 후 본적지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훈련 조교였던 일본인 교사가 이유 없이 그를 구타했다. 명백한 조선인 차별이었다. 얼마 후 일본은 패전했고, 두 사람의 상황은 역전됐다. 쫓기는 처지가 된 일본인에게 보복하는 대신 김 전 대통령은 그의 안전한 귀국을 도왔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육성으로 전한 일화다. 2006년 7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41회에 걸쳐 42시간 26분 동안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연구진과 진행한 구술 인터뷰에서다. 다섯 번의 죽을 고비와 6년간의 투옥, 3년여의 망명 생활과 장기간의 가택연금에도 그는 "보복의 악순환에 빠지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태도를 지켰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인터뷰 녹취를 읽기 쉽게 풀어 쓴 책이다. 목소리로 쓴 자서전인 셈. 김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서거 15주기를 맞아 나왔다. 책에는 미공개 사진 10여 장을 포함해 김 전 대통령이 만들어낸 역사적 순간을 담은 사진 64장이 수록됐다. 그의 육성 파일과 연결되는 QR코드도 수록돼 있다.

"국민 위해 헌신한 사람은 패배하지 않는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기획·한길사 발행·784쪽·3만3,000원

김대중 육성 회고록·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기획·한길사 발행·784쪽·3만3,000원

김 전 대통령은 군사독재 정권에서 고초를 겪고도 보복이 아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으로 (한국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역사의 사필귀정을 믿었기 때문이다. "역사를 길게 보면 결국 국민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이 패배하는 경우는 없다. 일시적으로 패배하더라도 결국 그 길대로 역사가 흘러가기 때문에 죽은 후에라도 반드시 성공하게 된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은 연대와 통합이었다. 해방 직후 정치를 시작한 그는 좌우합작 노선을 지지했다. 옛 소련을 공공연히 숭배하던 좌익, 친일파가 득세하던 우익 중 어느 쪽에 설 수 없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그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선 "인기가 없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친일파를 옹호한 데 있었다"고 했다. 김구 선생에 대해서도 "신탁통치 반대만 했지, 다음에 어떻게 하자는 것이 없었다. 위대한 애국자였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DJ라는 호칭,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아"


김대중(맨 오른쪽) 전 대통령이 1993년 영국 유학 시절 옆집에 살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함께한 사진. '김대중 육성 회고록'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제공

김대중(맨 오른쪽) 전 대통령이 1993년 영국 유학 시절 옆집에 살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함께한 사진. '김대중 육성 회고록'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제공

김 전 대통령은 외교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다른 것은 잘못하면 고칠 수 있지만 외교를 잘못하면 나라가 망하고 전쟁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랑에 든 소는 양쪽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다"는 비유를 들어 강대국 사이에 낀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을 비관하지 말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했다. "미국의 정책이 우리 이익에 최대한 근접할 수 있도록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며 한일관계에서도 미국을 지렛대 삼을 것을 강조했다. 대통령 재임 시절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결단한 데 대해 "우리 문화는 우리대로 장점이 있어 일본과의 교류를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며 "오늘날 한류를 보면 내가 옳았다는 게 증명됐다"고 했다. 1998년 일본 국빈 방문 당시 파격적으로 일왕을 '천황'이라고 부른 데 대해 "(일왕이란 호칭은) 일종의 열등감이고 외교적 결례"였다고 설명했다. 자신을 영문 이니셜인 'DJ'로 부르는 데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권영은 기자
서진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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