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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사도광산 '강제동원' 표기, 정부는 왜 관철시키지 못했나[문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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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설정한 '한일 역사대응 기준'을 바꿔버렸다."
국내에선 '외교 참사'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을 지낸 하코다 데츠야 논설위원은 이같이 평가했습니다. 2015년 아베 담화에는 '미래세대가 과거에 대한 사과를 계속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일본이 밝힌 입장까지 모두 사실상 금기가 됐는데, 이게 깨졌다는 겁니다.
주한일본대사관은 '2015년 세계문화유산위원회(WHC)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의사에 반해 강제로 일했다고 한 입장을 바꾼 것이냐'는 본보 질문에 "일본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日本の立場は変わっていません)"고 밝혔습니다. 하코다 논설위원은 이러한 입장에 대해서도 "금기시된 발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일본 정부가 간접적으로 인정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국이 일본에 뿌리 깊게 자리하게 된 이른바 '아베 기준'을 후퇴하게 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명시적으로 '강제노동'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외교부는 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반대하지 않은 걸까요?
외교부 수장인 조태열 외교장관은 2015년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당시 국제사회 앞에서 일본이 "조선인들은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강제로 일해야(forced to work) 했다"고 말하게 한 장본인입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다루지 않겠다는 일본의 태도는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는 강한 발언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협상은 쉽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사도광산에서 근무한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동원됐다고 볼 만한 사료가 부족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정부는 일본 시민단체와 학자, 그리고 국내 학자가 정리한 자료들을 내놓습니다. 2년짜리 계약을 맺었다가 자신의 동의 없이 무기한 연장된 근로기간과 가혹한 근로 조건에 도주하려다 잡힌 조선인 청년의 사연이 담긴 사료까지 있었습니다.
그러자 일본은 "사도광산의 모든 조선인이 강제로 연행되거나 계약이 연장된 건 아니지 않느냐. 모든 조선인의 근로환경이 가혹했다고 볼 만한 사료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고 합니다.
교착상태에서 양국 정상의 결단으로 물꼬가 트였습니다. 일본은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의 '보류' 결정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밀어붙인다고 등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목소리들이 내부에서 나왔다고 하네요.
이때,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에 대해 "가슴 깊이 아프다"고 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조선인 강제동원 노동자에 관한 사료 전시 등 일부 이행조치에 동의하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에 대통령실도 호응합니다. 본보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서 이를 주제로 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열린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과거사 문제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안'이 주로 논의됩니다. 초점이 등재 반대가 아닌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가 한일협력 사업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발상의 전환'에 맞춰진 것입니다.
그 결과, 일본의 직접적인 '강제노동' 발언을 중요 협상조건으로 두지 않는 대신 정부는 일부 이행조치들을 실현하는 데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전시 사료의 선택권은 한국에, 전시문구 및 발표문에 대한 결정권은 일본이 갖습니다.
이 과정을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후 정부가 설명하면서 참 여러 가지가 꼬입니다. 외교부는 동원의 강제성 표현은 이번 협상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죠. 그러나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전시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일본의 과거 사료 및 전시 문안을 일측에 요구했으나, 최종적으로 일본은 수용하지 않음"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강제성 표현을 협상하지 않았어도 문제이고, '강제' 문구가 들어가지 않은 걸 합의해줬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이와 관련해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 대응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의 일원이었던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 이후 일본에서 가해역사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건 금기가 된 상황이었어요. 직접적인 발언 자체는 더 이상 안 하려고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렇다고 일제강점기와 강제동원의 '강제성'을 일본이 부인하진 못합니다. 그럼 일본은 2015년 군함도 세계유산위 등재 당시 'forced to work' 발언을 부정하는 것이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라고 해요. 그러니까 2015년 군함도 세계유산위 당시 발언은 유지토록하고, 강제동원 사실을 무시할 수 없는 사료를 전시하게 하자는 데에 협상력을 집중한 거죠."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대응 민관합동 TF 구성원
그런데, 이런 맥락에 대한 설명 없이 외교부 당국자는 이렇게만 말했습니다.
"일본은 원래 '강제연행'이 있었다는 걸 부인하잖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일본이 부인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외교부 당국자
일본이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반대를 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그러자 외교부 당국자는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우리가 반대를 하면 등재가 안 되거나 보류가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반대하든 하지 않든 표결로 가는 상황이었어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세계유산 등재가 되는 걸 볼 수도 있었어요."
대한민국이 반대 또는 보류를 했으면 세계기록유산 새 지침에 따라 등재가 무기한 보류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입니다. 실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절차(rule of procedures) 운영지침을 살펴본 결과, 관련국이 반대할 경우 등재 결정이 보류되는 건 유네스코 기록유산 운영지침에만 해당했습니다. 등재 표결로 들어가게 되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 21개국 중 3분의 2 찬성으로 가결이 가능한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처음부터 정부의 전략과 그 한계를 솔직하게 국민들에게도 설명하는 작업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런 건 없었습니다. 외교부는 오히려 일본대표가 세계유산위에서 "모든 노동자, 특히 한반도 출신의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환경"이라고 표현한 부분을 '한국인'으로만 바꿔 논란을 자초했으니까요.
일본 대표의 전체적인 발언, "모든 노동자, 특히 한반도 출신"이라는 발언이라든가 아이카와 향토 박물관 전시물을 설명할 때 "한반도 출신 노동자들의 모집, 관 알선, 징용" 등을 언급한 것을 보면 조선인을 특정한 취지의 발언인 건 맞습니다. 외교부 출입기자들 모두 세계유산위 영상을 생중계로 지켜봤기 때문에 굳이 일본 대표의 발언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협상 맥락에 대한 설명 없이 번역을 원문 그대로 하지 않고, 국회와 외교부 비출입 기자들에게 그때그때 설명을 해버려 논란을 키웠습니다.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07년과 2008년 '근대화산업유산군' 목록을 발표하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절반 이상이 조선인이 강제동원된 곳입니다. 당장 군함도와 사도광산 후 아시오광산이 다음 후보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때마다 일본이 '강제노동'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면, 그건 외교실패가 아닐까요?
전·현직 외교부 당국자들은 장기적으로 일본이 반강제적으로라도 자신들의 가해역사를 직시하도록 전체 역사를 표면화하겠다고 합니다.
"일본을 무조건 반대하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국제사회에 일본이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기록으로 남기고, 전체 역사를 정확히 반영하도록 하는 게 우리 목표입니다. 그러면 일종의 '자물쇠(lock-in)' 효과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외교부 고위 당국자
"한일관계가 좋으면 조선인과 관련한 사료도 한결 수월하게 받을 수 있어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본이 가해역사를 잊지 않게 하려면 한일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전직 고위 외교관
한일관계가 좋을 때 일제강점기 실태 파악이 한결 수월했던 사례는 분명 존재합니다. 1990년 5월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국빈방문했을 당시 일본은 '소위 조선인 징용자 등에 관한 명부'를 제공합니다. 6개의 문서철에 총 3,736매 문서가 편철된 이 자료엔 '순직산업인명부'가 포함돼 있고 '미쓰비시 사도광산' 작업장 이름으로 사망한 조선인이 9명이라고 적시돼 있죠.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결과가 아쉽긴 합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비판보단 큰 틀에서 건설적인 방안을 마련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군함도와 관련해서 이번 사도광산에서 얻은 결과를 토대로 ‘왜 이렇게 하지 못하냐’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는 이 같은 관점을 수용했습니다. 비판도 좋지만, 지금까지 협상과정에서 얻어낸 조치들을 활용할 수 있다면 나름의 성과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정말 이 같은 접근을 하고 있다면 당장 취해야 할 조치가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는 일제강점기 피해 실태 연구를 총괄·지휘하는 조직이 없습니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는 2015년 해체됐습니다. 정부가 정말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면 강제동원에서부터 위안부 피해까지 사료를 점검하고 정리하는 위원회를 다시 추진해야 합니다.
외교부 내 일본의 강제동원 현장 세계유산 등재 대응 전략 및 협상을 주도할 전문 인력의 양성도 필요합니다. 이번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협상과정만 보더라도 외교부 실무자들이 고위당국자와 한일 전문가들의 문제의식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난 2월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사도광산 관련 대응 정책간담회에서 외교부 당국자는 "2015년 군함도 대응과 사도광산은 무관하다"면서 사안을 분리해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들은 전직 고위 외교관은 "2015년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당시 성과에 이행조치를 추가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분리접근한다는 말을 할 수가 있냐"며 "어떻게 당국자로서 무관하다는 말을 할 수 있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사실 이번 결과에 반발한 일본 극우파들은 '역사인식연구회'를 중심으로 사도광산 내 조선인 노동자들의 강제동원을 부인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개시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고노·무라야마 담화에 반발해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일본회의'를 만들었죠. 당시 태동한 것이 바로 자민당의 '아베 파벌'이었고요. 비슷한 상황입니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전략을 갖고 있을까요? 사실 사도광산 외교참사 논란의 시작점은 지난해 3월 발표된 대법원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 해법입니다. 일본의 이른바 '성의 있는 조치'는 역사분야에선 전무하고, 윤석열 정부는 문제 삼지 않고 있죠. 여기에 '뉴라이트' 출신이라고 논란이 불거진 독립기념관장이라니... 국민들은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합니다.
내년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체결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일관계도 개선됐으니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윤석열 대통령도 일본 총리로부터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용자들에 대한 사료를 받을 수 있겠죠?
대한민국 정부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바로 그 요구를 제대로 하는지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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