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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함에서 띄워 땅으로 내린 美 업체 '반쪽' 무인기…누구를 위한 이벤트였나[문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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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5, 4, 3, 2, 1. 무인기 이함(離艦)!"
카운트다운 신호에 맞춰 대형 무인기가 내달립니다. 장소는 육지가 아닌 해상입니다. 대형수송함 독도함의 200m에 달하는 갑판 활주로를 택했습니다. 무인기는 100m를 채 지나지 않아 가볍게 창공으로 날아올랐습니다. 고정익 무인기가 해군 함정에서 처음 이륙한 순간입니다. 지켜보던 군과 연구기관의 관계자들은 환호를 내지르며 박수를 쳤습니다. 한쪽에선 얼싸안으며 성공을 축하했습니다.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 인근 해상. 미국 방산업체 제너럴 아토믹스(GA)사의 무인기 ‘모하비’가 이륙하는 전투시험 장면입니다. 프로펠러가 달린 수직 이착륙 무인기를 해군 함정에서 운용한 적은 있지만, 이처럼 날개가 고정된 '고정익' 무인기를 띄운 건 처음입니다. 이륙에 필요한 갑판이 충분히 길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번 무인기는 최대 1만 피트(약 3㎞) 고도에서 최대 속력 140노트(시속 약 259㎞)로 날 수 있는 ‘짱짱한’ 스펙을 갖췄습니다.
비록 완제품이 아닌 시제품을 가지고 진행한 시험이었지만, 우크라이나전을 비롯한 현대전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무인기 시험이기에 군 안팎에서 관심이 상당했습니다. 해군에 따르면 이날 실험엔 국내 군 관계자와 연구진 200여 명에 더해 미 육군 관계자도 본토에서 날아와 참관했을 정도입니다. 무인기 조립과 조종을 책임진 GA사 관계자들을 포함, 이날 현장에는 어림잡아 20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독도함을 함께 타고 출항했습니다.
이번 실험에 이토록 큰 관심이 쏠린 배경은 명확합니다. 전장에서 갈수록 위력이 커지는 무인기를 땅이 아닌 바다에서 날릴 수 있다면 활용성이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무인기의 장점은 △조용히 △민첩하고 빠르게 △정찰과 타격 임무를 △병력 손실 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회전익 무인기보다 한층 빠르고 작전반경도 두 배 이상으로 넓은 고정익 무인기를 해상에서 띄운다면 그 위력은 배가되기 마련입니다. 비행갑판 위에서 만난 국내 연구진은 “육상에서 날릴 경우 이륙 시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배 위에서 띄우게 되면 이륙에 유리한 방향에서 무인기를 띄울 수 있는 장점까지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이번 시제기 실험은 다른 국가들과 견줘봐도 상당히 앞선 시도로 평가받습니다. 지난해 싱가포르 방위산업 박람회에서 해군 관계자와 GA사가 만나 타진하면서 추진해온 실험인데요. 모하비의 해상 이륙 실험은 앞서 영국에서 단 한 차례 시행된 게 전부입니다. 특히 우리 해군과 공군의 고민을 풀어줄 수 있는 해법이기도 합니다. 해군은 병력 감소로 함정에 투입할 승조원이 부족하고, 공군은 진급 적체 등의 이유로 전투기 조종사 인력 유출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전력 공백을 메워야 할 대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해군 함정에서 적진으로 침투하는 무인기는 해·공군 모두에게 매력적인 카드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군이 당장 모하비 도입 검토에 나설 여건은 충분치 않습니다. 독도함이 모하비의 해상 이륙 실험을 위한 ‘최소 조건’만 갖추고 있기 때문이죠. 일단 독도함 비행갑판에서 모하비가 이륙하는 건 가능했지만, 착륙 시험을 하기엔 활주로 폭과 길이가 미치지 못합니다. 이날 독도함을 이륙한 모하비가 동해 상공을 비행하다가 육상으로 방향을 틀어 해군항공사령부 활주로에 착륙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독도함에서 날아올랐지만 다시 독도함으로 돌아올 수 없는 '반쪽' 시험인 셈입니다. 참고로 지난해 11월 영국 해군의 시험은 전투기 이·착륙이 가능한 항공모함에서 실시됐다고 합니다. 우리에겐 항모처럼 큰 함정이 없습니다.
비행갑판에 무인기를 착륙시킬 수 없으니, 해군과 GA사는 실험 약 1주일 전 분리된 부품들을 독도함 격납고에 들여와 배 안에서 조립, 이를 실험 당일 항공기 이송용 엘리베이터에 태워 비행갑판으로 올렸습니다. 엘리베이터는 날개 폭 16m, 길이 9m의 모하비를 옮기기 빠듯한 크기로, 모하비 앞부분에 장착한 약 1m 길이 안테나 형태의 ‘피토튜브(Pitot tube·계측 센서)’는 아예 비행갑판에 올린 뒤에 조립해야 했습니다. 전후좌우로 여유공간이 없어 승강기가 갑판까지 올라가는 약 30초 남짓의 순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숨죽였을 정도입니다. 무인기를 이륙장소까지 옮기는 것부터 만만치 않았던 셈입니다.
막상 도입하려고 해도 모하미 가격이 대당 300억 원 안팎에 달해 선뜻 결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와 맞물려 독도함보다 더 큰 함정, 즉 항모 개발도 필요한 만큼 보통 일이 아닙니다. 첫 단계인 소요 제기에서부터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안입니다.
그래서 이번 시험을 현장에서 지켜보며 의문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굳이 미국 회사 제품을 우리 독도함에 올려 실험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또한 주요 전력인 대형수송함을 외부로 고스란히 노출하면서까지 도입 검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제품의 시험장으로 사용하는 게 과연 적절한 것일까요. 제 아무리 유력 방산기업이 참여한 실험이라지만, 보안시설인 독도함의 내·외부 공간을 민간에 노출한 것이니까요. 이 과정에서 해군 승조원들은 이래저래 협조하느라 상당한 수고를 감수했을 것입니다.
엄효식 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번 실험의 의미를 짚었습니다. 엄 총장은 “우리 군이 무인기에 대해 좀 더 다가서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살핀 건 좋은 측면”이라면서도 “독도함에선 이륙만 하는 행사인데, 사실상 해군보다는 GA사에 시험장을 마련해 준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습니다. 실험의 취지에는 수긍할 수 있지만 여러모로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시험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습니다. 해군이 이번 시험을 강력 추진한 건 무인기 도입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된 상황에서 빠르고 정교한 ‘케이스 스터디’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해군 관계자는 “독도함뿐 아니라 경항모 등 대형 플랫폼에서 무인기 운영을 위한 설계와 건조, 소요 제기 등에 있어 교훈을 도출하는 것이 이번 시험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모하비 도입뿐 아니라 우리 군의 향후 무인기 도입을 위해 경험적 데이터를 쌓아두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해군과 GA뿐 아니라 우리 방산기업에도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개연성 또한 높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 측 관계자들도 여럿 참여했는데요. 이는 GA사와 파트너십이 어느 정도 진행됐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실제 이날 이륙에 성공한 모하비 기체에는 한화의 로고도 선명했습니다. 한화 측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협력 내용을 밝히긴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주축으로 한 군사용 드론 등 차세대 모빌리티 경쟁력 확보에 나선 점 등을 비춰봤을 때 GA사와 협력은 결코 가볍지 않은 수준으로 이뤄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립니다.
박용한 한국국방연구원(KIDA)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가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군사용) 드론영역인데 GA가 세계에서 가장 앞선 드론 업체 중 하나인 만큼 (협업을 통해) 우리 기업들의 기술 발전도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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