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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일본과 조율해 '강제노역' 제외했다면 매국"

입력
2024.07.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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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성명 내고 비판
"잘못된 주장 정부가 나서 승인해준 것"
"어이없는 대응…철저한 진상규명 필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니가타현 사도 광산 내부에 28일 모형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니가타현 사도 광산 내부에 28일 모형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 정부가 합의해 '강제노동' 표현을 제외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에 대해 한국 시민단체가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29일 성명을 내고 "대한민국 정부는 사도광산 '전체 역사'를 현장에 반영하라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권고와 세계유산위원회 결정을 일본이 성실히 이행할 것, 이를 위한 선제 조치를 전제로 등재 결정에 동의했고, 이를 외교적 성과로 치장했다"면서 "그러나 전시물에는 '강제동원', '강제노동' 언급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일본 니기타현 사도광산에는 일제강점기 약 2,000명의 조선인이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일본은 조선인 노동자와 관련한 전시물을 설치하는 등 '전체 역사' 반영을 약속하고 지난 27일 한국을 포함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원국 전체 동의를 받아 사도광산 등재에 성공했다. 실제 일본 측은 사도광산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가혹한 상태에서 일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료 등을 전시한 자료관을 급히 마련해 공개했다. 하지만 이곳에 '강제동원' 또는 '강제노역'이라는 표현은 없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바로보기) 28일 "사도광산 등재를 두고 한일 정부가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노동자와 관련해 현지 전시 시설에서 '강제노동'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당시의 생활상 등을 설명하는 것으로 사전에 타협했다"고 보도했다. 우리 외교부는 해당 언론 보도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냈다.

시민단체는 요미우리 보도에 대해 "우리 외교부 주장과 정면 배치된다"며 "외교부는 2015년부터 조선인 강제노역에 대해 논의 자체가 없었다는 취지로 설명해 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의 역사 왜곡도 문제지만 우리 정부가 일본과 조율을 거쳐 강제노동 표현을 넣지 않기로 한 것이라면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한반도 불법 강점과 식민 지배에 따른 강제노동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기는커녕 오히려 잘못된 일본의 주장을 우리 정부가 나서서 승인해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군함도 강제노역도 왜곡…"대한민국 정부는 안 보이나"

단체는 외교부 당국자가 27일 라오스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외교장관회의 이후 기자들을 만나 '(일본이) 되풀이해서 표현만 안 했을 뿐이지, 과거 약속을 이행하도록 한 것'이라 해명한 데에 대해선 "어이없는 대응"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이 2020년 마지못해 개설한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역사 왜곡 및 날조 선전장으로 쓰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라고 비판했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하시마 섬) 등 '메이지 시대 산업 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조선인 강제노동 역사를 알리겠다고 약속했으나 이행하지 않았다. 2020년에서야 도쿄에 산업유산정보센터를 만들었으나, 이곳에선 오히려 일본 근대 산업시설에서 일한 조선인이 차별받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쳐 유네스코 측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단체는 "우리 정부는 일본의 의도를 모를 리 없으면서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해 줬다. 일본의 사실 왜곡을 우리 정부가 손들어준 것"이라며 "이 과정에 사전 조율을 거쳐 강제노동 표현을 배제한 것이라면 제2의 매국 행위다.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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