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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입 뗀 큐텐 구영배…"계열사·지분 매각" 수습책 말로만 끝나나

입력
2024.07.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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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배 대표, 첫 공식 입장 표명
자구책, M&A 추진·큐텐 지분 매각
피해 수천억 원, 자금 마련 쉽지 않아
법정관리 신청, 피해 구제 더 멀어져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 큐텐 제공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 큐텐 제공


소비자 환불 대란, 판매자(셀러) 정산금 미지급 등을 일으킨 티몬·위메프의 모기업 큐텐그룹 구영배 대표가 처음 수습책을 내놓았다. 그가 사태 해결을 위해 제시한 자금 마련 방안은 계열사 인수·합병(M&A), 큐텐 지분 매각 등이다. 하지만 소비자, 셀러 피해 규모가 수천억 원에 달해 이 자구책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다. 큐텐 지분, 계열사를 선뜻 사겠다는 기업 역시 나오기 쉽지 않아 구 대표 구상은 말로만 그칠 수도 있다. 또 티몬·위메프가 법정관리(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하면서 당분간 셀러들은 미정산금을 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29일 구 대표는 보도자료를 통해 "티몬·위메프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그룹 차원에서 펀딩과 M&A(인수·합병)를 추진하고 제가 가진 재산의 대부분인 큐텐 지분 전체를 매각하거나 담보로 활용해 사태 수습에 사용하도록 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구 대표가 티몬·위메프 사태 발생 이후 공식 입장을 밝힌 건 처음이다. 이 사태는 셀러 정산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한 정산금 지연, 소비자 환불 불가, 신규 결제 차단 등이 겹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사태 책임자인 구 대표는 큐텐 본사가 있는 싱가포르에서 18일 귀국한 이후 아무런 사과·설명을 하지 않아 비판받았다.

구 대표가 공개한 자구책은 그룹 차원의 자금 확보, 개인 재산 처분으로 요약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M&A로 큐텐 계열사 매각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주요 큐텐 계열사로는 티몬·위메프 외에 북미·유럽 기반 플랫폼 위시, 인터파크커머스 등이 있다.



계열사 팔아도, 알짜 물류 자회사는 지킬 듯


29일 서울시 강남구 티몬 본사. 뉴시스

29일 서울시 강남구 티몬 본사. 뉴시스


구 대표가 큐텐의 알짜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까지 M&A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큐텐 계열사 물류를 담당하면서 성장해 미국 나스닥 상장을 노리던 큐익스프레스 매각은 그룹의 중심축을 잃는 꼴이어서다. 최근 구 대표의 큐익스프레스 대표 사임도 이 회사를 지키기 위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구 대표가 큐익스프레스 대표를 유지하면 티메프와 연결 고리를 떼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구 대표가 언급한 다른 자금 확보책은 자금 유입이다. 큐텐이 금융 당국에 자금 마련 방법으로 냈다고 알려진 '위시 활용'이 대표적이다. 큐텐은 2월 인수한 위시에서 자금 5,000만 달러(약 700억 원)를 끌어오겠다고 했다. 구 대표는 개인 재산인 큐텐 지분을 담보로 대출하거나 처분하는 방안도 꺼냈다. 일종의 사재 출연이다. 구 대표는 큐텐 최대주주로 42.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자금 확보 계획이 나온 건 다행이지만 수천억 원 피해를 낳은 티몬·위메프 사태의 파장을 누그러뜨릴지는 불투명하다. 우선 큐텐이 집계한 소비자 환불 피해액만 500억 원이다. 환불은 카드사, 전자결제대행(PG)사가 먼저 소비자에게 돌려준 다음 티몬·위메프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구조라 500억 원 중 상당 부분은 큐텐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다.

환불은 빙산의 일각이다. 구 대표가 셀러 피해 규모는 정확하게 추산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미정산금 문제는 화약고다. 미정산금은 금융 당국 조사 결과 이날 기준 2,100억 원에 달한다. 5월에 발생한 금액으로 티몬·위메프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6월, 7월 초·중순에 주지 못한 돈까지 합하면 미정산금은 더 불어날 수밖에 없다.


가장 간단한 해결책, '1조 정산금' 어디 있나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기업 가치 하락, 말뿐인 자구책도 구 대표가 내놓은 수습책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구 대표가 계열사 M&A, 큐텐 지분 매각을 시도하더라도 티몬·위메프 사태로 주요 계열사 경영 상황 전망이 어두워진 만큼 제값을 받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모든 구상이 계획에 그칠 수도 있다. 당장 금융 당국은 큐텐이 제출한 700억 원 자금 확보안을 두고도 '믿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어디로 갔는지 밝혀지지 않은 1조 원 넘는 판매 대금 역시 자구책에 대한 믿음을 깬다. 티몬·위메프는 6월에 수령했을 1조1,480억 원(와이즈앱·리테일·굿즈 집계 결제 추정액) 중 대부분을 셀러에게 보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돈을 셀러에게 주는 게 가장 간단한 미정산금 해결책이나 이 판매 대금은 자구책으로 거론되지 않았다. 이 자금이 티몬·위메프 손을 떠나 위시 인수 등 다른 곳에 쓰였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티몬·위메프가 이날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피해자들이 미정산금을 돌려받을 길은 더욱 좁아지고 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금융 채권, 상거래 채권이 모두 묶여 채권자인 셀러는 당분간 미정산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구 대표의 자금 마련 방안은 구체적 숫자가 없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며 "신뢰가 쌓이려면 자금을 마련할 때마다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티몬 관계자는 "기업 회생 제도를 통해 사업 정상화를 도모하고 채권자인 판매 회원과 소비자인 구매 회원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며 "이 과정에서 뼈를 깎는 자구 방안을 수립·실행할 준비도 돼있다"고 말했다.



박경담 기자
박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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