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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가 주신 애틋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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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2008년 2월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진보정치사(史)에 남을 기자회견이 열렸다.
“국민 여러분!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와 종합민원실의 구성원들은 오늘 당직을 사직하고 민주노동당을 떠납니다. 민주노동당에서 민생지킴이 활동은 노동자 서민의 요구대로 확대되고 발전되지 못한 채 당내 장벽에 가로막혀 왔습니다. 몇몇 특정이념을 신봉하는 활동가들이 주가 돼 정치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당내에서 민생사업은 항상 부차적인 사업으로 전락했습니다. 집값 걱정, 병원비 걱정, 고용불안, 빚 독촉에 시달리는 노동자 서민들에게 패권이 중심이 된 정치는 사치품이자, 배부른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당시 민노당 분당사태의 정점을 이룬 회견이었다.
회견문 뒷부분엔 “우리는 현실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서민과 노동자들의 삶에 굳건한 연대의 손길을 뻗어 나갈 것”이라며 “첫 발걸음을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라는 시민사회단체로 시작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민생연대는 그렇게 민노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인사들이 주축이 돼 탄생했다. 사채 피해, 파산면책, 주택·상가임대차, 우리사주조합 문제 등을 무료 상담하며, ‘서민들의 보루’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 속에 쇠락의 길을 걸었고 재정난을 겪으며 올 초 해산을 결정했다.
그러다 기적이 일어났다. 16년간 사채 피해 상담을 하며, 상근직으로 홀로 그곳을 지켜온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의 사연이 알려지면서다. 무료 사채 상담을 그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전한 송 처장의 인터뷰가 JTBC에 보도되자, 후원금이 몰려 민생연대는 기사회생했다.
송 처장의 스토리는 ‘사채 해결 천사’라는 구도자의 모습으로 전파됐지만, 그는 사실 민노당 정책실장을 지낸 브레인으로 경제학자이자 정책가다. 진보정치의 잿더미 속에서 시들지 않고 버텨온 ‘풀꽃’이라고 하겠다.
얼마 전 그를 만나 초심을 다잡게 하는 가족사를 들을 수 있었다. 제주4·3 사건을 겪은 외할머니가 통곡하며 어린 태경에게 했던 말, “4·3 고튼 거 어시게 간세 허지마랑, 아라시냐(4·3 같은 비극이 없게 게으름 피우지 말고, 알았니)!”라는 당부였단다.
송 처장이 시민단체라도 꾸려서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건 다행이지만, 한편으로 이는 한국 정치의 크나큰 실패를 상징한다. ‘공동체가 아프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외할머니의 애틋한 마음과 그 뜻을 정치권에선 왜 활짝 펼칠 수 없는 것인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서민 정치’를 제1의 기치로 내건 정책가가 한국 정치에선 설 곳이 없다. 정의당은 원외 정당으로 밀릴 정도로 실패했고, 올해 총선에서 더욱 굳건해진 양당체제는 검찰 수사나 권력지형을 둘러싸고 충돌하며, 정책적 측면에선 부유층을 위한 감세 정책 위주로 경쟁한다.
야당조차 서민보호 정책이 우선이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1가구 실거주 1주택에 대해 종부세 대폭 완화” “금투세 도입 유예”를 집중 이슈화한 게 대표적이다. 종부세는 주택 보유자의 2.7%, 금투세는 주식 투자자의 1%에 해당하는 부유층에 부과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상속세 완화는 과세표준 30억 원이 넘는 재산을 물려받는 초부자 자녀들에게 가장 큰 혜택이 돌아간다.
이런 그들만을 위한 세상에서 민생연대에 몰려든 후원금은 정치권이 외면하지만, 국민들이 절실히 원하는 ‘결핍된 그 무엇’에 대한 갈망을 보여준다. 송 처장의 외할머니가 당부하던 그 뜻이 이 사회에서 실천되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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