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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축사회의 정치경제학

입력
2024.07.24 00:00
26면

이란, 영국, 인도, 프랑스 선거의 공통점
글로벌 전역에서 확인된 '집권당' 패배
정치권, 수축사회 구조전환 해법 내놔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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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이슬람 신정정치로 지금 이란 경제는 파탄 지경이다. 서방의 제재조치로 10여 년 전에 비해 환율은 20배 절하되었고, 지난 3년간 물가는 연 40% 안팎, 식품 물가는 무려 2.5배나 올랐다. 청년 실업률은 20% 수준이다.

이런 생지옥인 상황에서 7월 초반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이란의 대선 투표율은 10여 년 전 70%대에서 2021년에는 48%, 그리고 이번 1차 투표율은 40%를 밑돌았다. 정치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혁을 외치는 페제시키안이 1차 선거에서 선전하자 결선투표에서는 10% 이상 투표율이 상승하면서 결국 개혁파가 승리했다. 이번 이란 대선의 의미는 경제난 극복과 더불어 근본적으로 이란을 바꿔달라는 요구가 표출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란의 대선 결과는 최근 선거가 끝난 영국, 프랑스, 인도, 한국의 선거와도 유사하다. 또한 선거가 임박한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예상된다. 글로벌 선거의 해인 올해, 지금까지 치러진 선거에서 거의 모든 국가의 집권당은 패배했다. 여론 조사나 전문가의 예상은 거의 맞지 않았다. 가히 집권당 수난 시대다. 표면적인 이유는 물가 상승 등 민생의 어려움이지만 국가 시스템 전체에 대한 개혁 요구를 본질로 봐야 한다. 바야흐로 지구촌 전체가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분위기다.

지금 세계는 과거와 완전히 다른 '수축사회'로 가고 있다. 역사적 차원의 기후위기, 인구감소, 과학기술이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저성장이 구조화되고 기득권이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우리는 타자의 몫을 빼앗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제로섬(zero-sum)사회가 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제로섬 전투에서 패배한 다수는 고착화된 양극화에 분노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축사회에 맞는 새로운 사회를 열망한다. 분노와 새로운 열망이 선거를 통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는 정치의 간섭 없이 자동으로 가동된다'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세계는 40년을 살아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모든 국가에서 양극화를 초래하면서 경제적 문제를 넘어 사회 시스템 전체를 파괴하고 있다. 역사상 경험해보지 못한 아주 특별한 시기에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현재 리더들의 시대적 과제다. 또한 이 과제는 경제 문제이자 동시에 사회 문제이기 때문에 기존의 경제학으로는 풀 수 없다. 오직 정치만이 풀 수 있다.

패권국가인 미국은 IRA법, BABA(Build America, Buy America)법 등을 통해 미국 제품을 '바이(buy)' 하지 않으면 '바이(bye)' 하겠다고 세계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은 패권국가인 미국과 다르다. 새로운 차원의 근본적인 전환이 시급하다. 과거에 만들어진 기득권과 시스템을 수축사회에 맞게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 다양한 논의를 거쳐 정치가 중심을 잡고 세상을 재설계해야만 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런 세계사적 전환에서 크게 뒤처져 있다. 정치가 권력 투쟁에만 집중하면서 누적된 양극화는 사회를 상층부와 하층부로 완전히 분리시켰다. 서민, 자영업으로 대표되는 하층부는 디지털 경제의 확산과 고금리에 시달리면서 구조조정의 늪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 상층부인 대기업도 글로벌 경쟁에서 서서히 뒤지고 있다.

지금은 정치경제학의 시대다. 구조적 전환을 과거의 이념이나 경제학으로 치유할 수 없다. 수축사회가 정착되면서 정치는 사회 개혁의 선봉에 서야 한다. 지금과 같이 정치가 권력 획득에만 매몰되면 10년 후쯤 역사책은 '한국은 정치 때문에 스스로 자멸의 길을 택했다'고 기술할지 모른다.


홍성국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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