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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과 스탈린의 포커페이스

입력
2024.07.24 04:30
수정
2024.07.24 23:5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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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7.24 포츠담 회담

포츠담 회담에 참석한 윈스턴 처칠(왼쪽부터)과 해리 트루먼, 이오시프 스탈린.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포츠담 회담에 참석한 윈스턴 처칠(왼쪽부터)과 해리 트루먼, 이오시프 스탈린.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 분할통치를 비롯한 전후 유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 소련 수뇌부가 1945년 7월 17일 독일 포츠담에 모였다.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에게는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 회담 하루 전인 16일 보고받은 핵실험 성공 사실을 소련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연합국 파트너인 소련 몰래 극비리에 진행한 영미 합동 프로젝트였다. 쌍방이 서로를 신뢰하지 않던 잠재적 ‘적과의 동침’이긴 했지만, 트루먼 스스로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폭탄”이라 일기에 적은 궁극 무기를 동맹국 몰래 개발한 사실을 밝힐 경우 소련이 어떻게 나올지 모를 일이었다. 태평양전쟁에 어깃장을 놓는 일만은 피해야 했다.

트루먼은 17일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에게 그 사실을 먼저 알렸고, 둘은 회담이 마무리될 때까지라도 스탈린에게 알리지 말자고 합의했다. 회담에서 소련은 태평양전쟁 참전에 동의했다. 7월 24일 본회의 직후, 트루먼은 통역사 없이 혼자 스탈린에게 다가가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우리가 특별한 파괴력을 지닌 새로운 무기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스탈린 역시 심드렁한 태도로 “반가운 소식”이라고 답했다. 사정을 알던 영미 고위 당국자들은 먼발치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며 소련을 완벽히 속였다고 믿었다. 그 무렵 핵폭탄 ‘리틀보이’와 ‘팻맨’은 일본 본토 폭격을 위해 태평양 전진기지로 옮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훗날 공개된 구소련 공식문서 등에 따르면, 정작 속은 건 트루먼이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사후 권력을 승계한 트루먼은 맨해튼 프로젝트 자체를 1945년 4월에야 처음 알았지만, 스탈린은 (프로젝트 출범 이전인) 41년 무렵부터 알고 있었고 미국의 핵실험 성공 사실도 실험 다음 날 보고받은 터였다. 스탈린의 포커페이스는 전후 질서를 둘러싼 힘겨루기에서 ‘핵 협박’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계산, 자체 핵개발에 대한 미국의 견제를 모면하려는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소련은 1949년 8월 핵실험에 성공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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