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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변 없이 93분간 여러 주제 넘나들며 횡설수설… 그래도 “트럼프 원한다” 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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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변은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공화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닷새 전 피격의 여파였다. 하지만 연설은 1시간 30분 넘게 이어졌고, 여러 주제를 넘나들었다. 당원들은 “우리는 트럼프를 원한다”는 열광으로 그를 응원했다.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18일 오후 9시 30분쯤(현지시간), 대회장인 미국 위스콘신주(州) 밀워키 파이서브포럼 무대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등장했다. 가수 리 그린우드가 본인의 노래 ‘갓 블레스 더 유에스에이(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를 부르고 있었다.
총상을 입은 오른쪽 귀를 붕대로 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말하는 게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나한테 다시 듣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지난 13일 암살 미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평소와 달랐다. 속삭이듯 그는 말했다. “오늘밤 나는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됐다.” 1만8,000석 규모 행사장을 가득 채운 당원들은 구호처럼 “아니다, 당신은 있어야 한다”를 연호했다.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전능한 주님 덕에 여기 서 있다”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간증한 뒤 분위기는 금세 밝아졌다. 연단 뒤 대형 화면에 피격 당시 성조기를 배경으로 얼굴에 피를 흘린 채 주먹을 치켜든 트럼프 전 대통령 사진이 나타났다. 유세 무대를 떠나며 외친 ‘파이트(Fight·싸우자), 파이트, 파이트’를 그가 재연하자 청중의 호응으로 같은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무대 연출에도 피격 사건이 십분 활용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회상 도중 무대에 설치돼 있던 피격 희생자 코리 콤퍼라토레의 소방관 헬멧과 방화복 쪽으로 다가가 헬멧에 입을 맞췄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불법 이민 통계 차트로 꾸민 무대에서는 내용을 비판하면서도 “내 목숨을 구한 차트”라고 농담했다.
실제 피격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차트를 가리키느라 고개를 돌린 순간 총알이 날아왔다. 그는 이날 당시 상황을 두고 “총알이 4분의 1인치(6.35㎜) 차이로 비껴갔다”며 “내 목숨을 앗아갈 뻔했지만, 신은 내 편에 있었다”고 말했다.
연설이 국정 비전 소개로 넘어가자 분위기는 평소 유세처럼 공세적으로 바뀌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이민, 에너지, 전기차, 외교 등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실패를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연설 말미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윈(Win·이기자), 윈, 윈’을 선창하자 청중이 뒤따라 외쳤다.
이날 대회장에는 행사 기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트럼프 전 대통령 배우자 멜라니아가 그의 연설 직전 행사장에 등장했다. 이날 귀빈석에는 장녀 이방카 부부, 장남 도널드 주니어 및 약혼녀, 차남 에릭 부부와 손자·손녀가 모두 자리했다. 멜라니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설을 끝내자 무대 위로 올라가 남편의 볼에 키스했다.
이날 연설 시간은 93분이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TV로 중계된 대선 후보 수락 연설 역사상 최장이었다”고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가장 긴 미국 대선 후보 수락 연설 세 건 기록 모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세웠다고 전했다. 2016년 첫 수락 때가 75분이었고, 2020년 연설은 70분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2020년 수락 연설 길이는 24분에 불과했다.
장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수석전략가 출신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미 CNN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횡설수설했다고 혹평하며 “최근 3주 사이에 민주당에 일어난 첫 호재”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7일 TV 토론에서 고령 약점을 드러낸 당 대선 후보 바이든 대통령이 당내 사퇴 촉구에 직면한 상태다.
행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남성성을 부각했다. 미국 CNN방송은 “18일 밤 연사 라인업의 주제는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이라며 “(전 프로레슬링 선수) 헐크 호건이 자기 티셔츠를 찢어버리고 트럼프를 ‘진정한 미국 영웅’이라고 선언할 때가 절정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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