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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켓'의 무게중심 변천의 역사

입력
2024.07.2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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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 에이미 밴더빌트

2차대전 전후 서구 에티켓 문화의 부흥을 선도한 에이미 밴더빌트. etiquipedia.blogspot.com

2차대전 전후 서구 에티켓 문화의 부흥을 선도한 에이미 밴더빌트. etiquipedia.blogspot.com

현대 에티켓의 뿌리는 르네상스 시대에서 비롯됐다는 설과 17세기 프랑스 루이 14세의 궁정 기원설로 나뉜다. 베르사유 궁정의 패션과 음식, 가구는 유럽 모든 왕실 귀족이 본뜨던 유행의 중심이었고, 국왕은 귀족들을 견제하는 방편으로 끊임없이 파티와 음악회, 사냥 등 이벤트를 만들어 그들을 불러 모으곤 했다. 자신의 궁전 정원과 잔디밭을 ‘버릇없는’ 귀족들이 밟는 게 못마땅해 접근 금지 표지판까지 세웠던 ‘태양왕’은 서열과 질서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자 했고 그 전통은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영국 조지 3세의 궁정으로, 대소 지주 귀족들의 삶 속으로 스몄다.

봉건 권력자들의 에티켓은 19세기 산업혁명으로 부자가 된 부르주아의 문화적 열등감으로도 파고들었다. 몰락한 귀족 자녀들이 부유한 ‘하층’ 가문과 결혼을 해야 할 때에도 귀족은 에티켓을 자존심처럼 앞세웠다. 에티켓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자 지위 상승의 디딤돌이었다. 좋은 학교는 지식에 앞서 신사 숙녀의 에티켓을 가르쳐야 했고, 에티켓이 엄격할수록 좋은 학교로 평가받았다. 19세기 미국 부르주아들이 전범으로 여긴 것도 프랑스식 에티켓이었다. 문화의 변방이 본거지보다 훨씬 정통을 앞세우는 예는 흔하다.

에밀리 포스트(Emily Post)가 에티켓의 저 규범적 억압에 맞서 “모든 에티켓은 타인에 대한 세심한 인식(배려)에서 비롯돼야 한다”고 주장한 건 1930년대였다. 그는 에티켓의 대모라 불리지만 에티켓 형식의 파괴자이자 해방자였다.

에이미 밴더빌트(Amy Vanderbilt, 1908.7.22~1974.12.27)는 1950~70년대 고전적 에티켓의 부활을 선도한 또 한 명의 에티켓 대모였다. 철도왕 코닐리어스 밴더빌트의 사촌인 그는 1952년 책 ‘에이미 밴더빌트의 에티켓 총서'(개정판 제목은 ‘에이미 밴더빌트의 에티켓’)와 칼럼, 강연 등을 통해 예의와 질서, 배려의 문화를 확산함으로써 전후의 혼란과 무질서, 물질주의적 타락을 경계하고자 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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