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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졸리고 가위도 자주 눌리는데…

입력
2024.07.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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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최고] 기면병, 10대 중·후반기 시작해 평생 지속

기면병 환자는 낮에 너무 졸기에 학교·직장 등에서 ‘게으름뱅이’ ‘성실하지 못하다’는 등의 오해를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기면병 환자는 낮에 너무 졸기에 학교·직장 등에서 ‘게으름뱅이’ ‘성실하지 못하다’는 등의 오해를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밤에 잠을 충분히 잤는데 낮에 수업·회의·운전하거나 버스를 탄 뒤 앉기만 해도 갑자기 잠든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다가 잠들기도 한다(졸림 발작).’ ‘잠들거나 깰 때 생생한 환각을 보거나, 가위에 자주 눌린다.’ ‘수면장애 탓에 잠에 제대로 들지 못한다.’

이처럼 낮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졸리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면 기면병(嗜眠病·narcolepsy)일 수 있다. 기면증은 낮 시간에 너무 졸리고 렘(REM·Rapid Eye Movement) 수면의 비정상적인 발현, 즉 잠들 때(hypnagogic)나 깰 때(각성) 환각, 수면 마비, 수면 발작 등의 증상을 보이는 질환이다.

◇게으름뱅이 등으로 오해받아…소수 환자만 치료해

기면병 환자는 낮에 너무 졸기에 학교·직장 등에서 ‘게으름뱅이’ ‘성실하지 못하다’는 등의 오해를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 병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5,000명 정도만 치료를 받고 있다.

증상으로는 웃거나 기분이 흐뭇해지는 등 감정 변화가 생겼을 때도 턱·어깨·목·무릎 관절 주위 근육에 힘이 빠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 같은 ‘탈력 발작(脫力發作·cataplexy)’은 환자의 70~80%에게서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말을 못 하거나 주저앉거나 쓰러지기도 한다.

정기영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기면병 환자는 탈력 발작 증상 등으로 인해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이 4배 정도 높다”며 “치료하지 않으면 각종 안전 사고를 당할 위험이 높아 조기 진단과 이에 따른 적절한 치료가 중요하다”고 했다.

기면병은 10대 중·후반기에 시작해 평생 지속되고, 공부·업무·일상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받을 수 있다. 정기영 교수는 “기면병을 제때 진단받지 못해 10년 이상 남몰래 고통을 받는 환자가 적지 않다”고 했다. 정기영 교수는 “기면병 환자는 점심 후에 20~30분 정도 낮잠을 자는 게 좋다”며 “낮잠을 자면 기면병 0.5알의 약을 먹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했다.

기면병은 뇌 시상하부(視床下部)에서 각성을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히포크레틴(혹은 오렉신)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 신경세포 사멸로 발생하는 만성 뇌 질환이다.

히포크레틴은 뇌 각성 중추를 자극해 각성 상태를 유지하고, 렘수면을 억제해 잠잘 때 렘수면이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도록 조절한다.

그런데 이런 히포크레틴이 없으면 낮에 각성을 유지하기 어렵고 갑자기 각성 스위치가 수면 상태로 바뀌면서 졸리고, 특히 렘수면 상태로 잠이 오면서 꿈을 꾸는 듯한 환각을 경험한다. 또한 웃을 때 근육에 힘이 빠지는 탈력 발작 증상도 렘수면이 각성할 때 돌출해 발생하기 마련이다.

기면병은 수면 다원 검사와 다중 수면 잠복기 검사 등으로 진단할 수 있지만 수면 부족, 다른 수면장애 및 수면-각성주기장애 등으로 인한 졸림증이 아닌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보통 수면장애는 밤에 수면 다원 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기면병을 진단하려면 야간 수면 다원 검사에서 수면 시간이 충분하고 다른 수면장애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이어 아침에 2시간 간격으로 낮잠을 자면서 얼마나 빨리 잠드는지 측정하는 다중 수면 잠복기 검사를 시행해 기면병을 확진한다.

◇약물로 대부분 정상 생활 가능

기면병은 효과적으로 증상을 조절할 수 있는 치료제가 개발돼 약물 치료로 대부분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영위할 수 있다.

정기영 교수는 “기면병으로 인한 주간 졸림 증상은 진한 커피를 많이 마셔도 개선되지 않지만 기면병 약물 치료제는 중추신경계의 각성 중추를 자극해 낮에 각성을 높여 주간 졸림증 증상을 70% 정도 줄여준다”며 “내성·의존성 위험이 거의 없고 부작용도 심하지 않아 1차 치료제로 처방되고 있다”고 했다.

1차 처방약으로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농도를 높여 몸을 각성하게 만드는 ‘프로비질(성분명 모다피닐)’ ‘누비질(아모다피닐)’ 등이 처방되는데, 의존성이 없어 중독 우려가 없다. 이 밖에 히스타민이라는 각성 호르몬 농도를 높여주는 ‘와킥스(피톨리산트)’도 1차 치료제로 쓰인다.

정석훈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온몸이나 몸의 일부가 힘이 빠지는 탈력 발작은 렘수면 작용을 억제하는 항우울제가 효과적이고, 가벼운 불면증이라면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약물 치료 효과를 잘 유지하려면 규칙적인 수면 습관, 충분한 수면 시간을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계획적으로 낮잠을 자는 것이 주간 졸림증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약 용량을 줄일 수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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