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SPA(제조·유통 일원화) 패션 브랜드 ‘탑텐’ 등을 보유한 신성통상이 지난달 21일 자진상장폐지(상폐) 추진을 발표하자, 소액주주들 분노가 커지고 있다. 탑텐은 2019년 일본 제품 불매운동 바람을 타고 일본 브랜드 유니클로의 매출을 추월한 후 줄곧 양강을 유지하며 올해 매출 1조 원 돌파가 유력하다.
신성통상이 돌연 상폐를 위해 자사주를 주당 2,300원에 매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여러 속셈을 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매입가는 발표 직전 주가인 1,842원보다는 높지만, 회사의 순자산을 발행주식 수로 나눈 주당순자산가치(BPS) 3,135.6원에는 훨씬 못 미친다. 회사 순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소액주주 주식을 매입해 상폐한 후 3,100억 원이 넘는 이익잉여금을 대주주끼리만 고액 배당하겠다는 결정인 셈이다. 또 실적과 무관하게 배당을 외면하는 수법으로 주가를 낮게 유지하면서 자식들에게 증여해 세금을 절약한 후 상폐를 통해 가족 경영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있다.
실제로 현재 대주주 일가가 신성통상 경영권을 획득한 2002년 이후 20년간 일반주주에게 배당한 액수는 5억 원에 불과하다. 2012년 이후 10년 동안 배당을 외면하다 지난해 소액주주들의 주주환원 요구가 거세지자, 주당 50원씩 배당을 재개했다. 최근 정부가 한국 증시 밸류업을 강조하며 주주환원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신성통상 상폐 시기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신성통상의 일방적 결정에도 다수 소액주주는 헐값에 주식을 되팔거나, 상폐가 무산되도록 버티는 힘겨운 선택지만 남았다.
신성통상 상폐는 한국 증시 저평가의 근본 원인을 한눈에 보여주는 축약판이다. 정부는 신성통상과 같은 대주주 횡포를 제어하기 위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재계의 거센 반발에 최근 보류하기로 했다. 만일 이사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로 확대됐다면, 신성통상 상폐 결정에 동의한 이사는 법적 처벌을 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개인투자자들이 국내 증시를 외면하고 해외로 가는 지금 정부의 상장사 밸류업 정책에 핵심이 빠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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