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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산소통' 남북 스포츠 교류, 얼어붙은 한반도를 녹일 수 있을까[문지방]

입력
2024.07.07 13:00
수정
2024.07.2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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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올림픽서도 불투명한 남북 체육 교류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지난달 27일 오후(한국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AFC 본부에서 진행된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조추첨 장면. AFC 유튜브 채널 캡처

지난달 27일 오후(한국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AFC 본부에서 진행된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조추첨 장면. AFC 유튜브 채널 캡처


최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최종예선) 조추첨에서 ‘남북 맞대결’이 무산됐습니다. 남북 관계 긴장감이 최고조로 달하는 요즘, 월드컵 예선에서 '강제 체육 교류'라도 이뤄지나 했더니 한국은 B조, 북한은 A조에 배정 되며 엇갈렸네요.

앞서 열린 2차 예선에서 북한은 일본의 평양 원정 경기를 거부해 몰수패를 당하고, 6월 열린 두 차례 홈경기를 중립 지역인 라오스에서 펼치는 등 돌출행동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진심인 북한과 우리가 최종예선에서 만난다면 두 번의 경기를 치를 수 있던 기회였습니다. 꼭 서울과 평양이 아니더라도 중립국에서 만날 가능성은 충분했을 듯합니다.

이번 조추첨에서의 남북 맞대결 성사 여부를 주목한 건 그간 남북 관계가 꽁꽁 얼어붙었을 때 체육 교류가 가장 효과적인 해빙 수단으로 작용해왔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반도 내 ‘적대적 두 국가’ 체제를 선언한 이후 경의선·동해선 철로 및 육로 시설 해체, 남한 접경지 지뢰 매설 및 방벽 설치, 오물 풍선 살포, 각종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감행 등 긴장감만 높아지는 가운데 ‘완충 이벤트’로 작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북한이 먼저 남북 체육 교류 손 내민 적도


1984년 4월 30일 열린 제2차 남북 체육회담 모습. 통일부 제공

1984년 4월 30일 열린 제2차 남북 체육회담 모습. 통일부 제공


한반도 분단 역사 곳곳에선 ‘스포츠’가 산소통 역할을 해줬습니다. 특히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국제무대는 세계 유일 분단국가인 남북의 화합을 꾀할 수 있는 공간이었죠. ①국제 경기 규칙들이 갖춰져 있어 룰이나 방식, 경기장 등에 대한 갈등 소지가 적고 ②승자를 축하하고 패자를 격려하는 스포츠맨십이 발휘되는 모습이 자연스레 연출되는 데다 ③오랜 시간 마주쳐 온 남북 선수 및 지도자들 간 친분이 쌓여온 점 ④경기를 계기로 한 공간(경기장)에서 남북 지도층과 시민(응원단)들이 마주할 기회 또한 생기는 대목 등 체육 교류의 순기능은 수두룩합니다.

역사적으로도 남북 지도자들이 대화 물꼬를 트기 위해 체육 교류에 공을 쏟은 흔적이 선명합니다. 남북 간 체육 교류 때면 정치인이나 경제인 출신이 남북 체육단체장이나 임원을 맡아 체육 교류를 명분 삼아 남북 지도부 메시지를 교환하는 계기로 삼기도 했죠. 2일 통일부가 공개한 5차 남북회담문서(1981년 12월~1987년 5월)를 살펴보면, 우리는 정치인 조상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 겸 대한체육회장(박정희 전 대통령 의전비서관 출신)이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단일팀을 추진했고, 후임으론 경제인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나서 1984년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 본선에 단일팀을 꾸리기 위한 회담을 조율합니다.

체육 교류는 대체로 우리 측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지만, LA올림픽을 앞둔 1984년 상반기엔 북한이 훨씬 적극적으로 단일팀 구성에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1983년 10월 버마(현재 미얀마)에서 벌어진 ‘아웅산 묘소 테러사건’으로 궁지에 몰리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올림픽 단일팀’ 카드를 꺼내 든 것이죠. 북한은 남북체육회담에서 ‘속전속결’ 단일팀을 구성해 ‘정상국가’로서 국제 무대에 등장하고 싶은데, 우리 대표단은 아웅산 테러 인정과 사과를 집요하게 요구하면서 단일화 논의는 무산됐습니다.

남북 정상회담 징검다리가 된 체육 교류

2018년 2월 9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동시 입장하고 있다. 평창=김주영기자

2018년 2월 9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동시 입장하고 있다. 평창=김주영기자



1988년 서울올림픽에선 평양과의 ‘분산 개최’ 카드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 공개된 ‘30년 경과 외교문서’에 따르면 과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수장이었던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위원장은 서울올림픽의 일부 종목을 북한과 분산 개최하는 방안을 우리 정부에 건의했는데,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난 속내는 ‘명분 쌓기’였습니다.

그보다 4년 전 LA올림픽에 소련,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참가하지 않아 ‘반쪽 올림픽’이란 비판을 받은 만큼 IOC가 서울올림픽에서도 불참 기류가 강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에 참가 명분을 내주기 위한 평양 분산 개최 카드를 꺼낸 셈입니다. 외교문서엔 “사마란치 전 위원장은 당시 북한이 분산 개최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한 가운데 추진했다”는 후일담이 담겼습니다. 그의 구상대로 북한은 분산 개최를 거절하고, 여러 사회주의 국가는 서울올림픽에 불참했습니다.

잦은 시도에도 진척은 더뎠던 체육 교류가 꽃핀 건 김대중 정부 때였습니다. 1999년 8월 남북노동자축구대회, 11월 남북통일농구대회 등 다양한 체육 교류를 발판 삼아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됐습니다. 6·15공동선언 이후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최초의 남북 공동 입장이 이뤄졌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도 북한은 선수단은 물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부인이 된 리설주가 포함됐던 응원단까지 파견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2월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북한 선수단 참가는 4월 27일 김정은 위원장 체제 첫 남북 정상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됐습니다.

"우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똑바로 불러달라"

지난달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 올림픽 상징인 대형 오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파리=뉴스1

지난달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 올림픽 상징인 대형 오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파리=뉴스1


그러나 아마득하게 오래된 이야기로 들립니다. 꽁꽁 얼어붙은 남북 사이의 냉기가 스포츠 현장에서도 느껴집니다. 당장 지난해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선 5년 전 평창올림픽에서와 달리 찬바람만 불었다고 합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정부 관계자는 “항저우 대회 때 유독 북한 선수단이 냉랭해졌다”며 “기자회견에서도 ‘북한’이라고 칭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똑바로 불러달라고 지적했다”고 전합니다. 조선중앙TV에서는 남한 선수 경기를 의도적으로 지우거나, 남한이나 대한민국 대신 ‘괴뢰’라는 자막을 넣어 적대감을 드러냈지요.

앞서서는 국내에서도 홍역을 치렀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당시 대표팀 합류를 위해 노력해 온 우리 선수들의 자리 일부를 왜 북한 선수에게 내줘야 하는지를 두고 거센 논란이 일어 정부 주도의 '묻지마 교류'에 대한 청년층의 거부감도 상당합니다.

이달 말 파리올림픽에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듯합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은 스포츠를 더 이상 화합이나 교류 수단으로 보지 않고, 내부 영웅화를 통한 체제 확립 수단으로만 보는 것 같다”며 “대회가 서구권에서 개최되는 데다, 개최지 자체의 치안도 좋지 않아 선수들의 통제나 보호에 더 신경을 쓸 것 같다”고 봤습니다. 북한은 현재까지 체조와 육상, 복싱, 수영(다이빙), 레슬링, 탁구까지 총 6개 종목에서 14장의 출전권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부분의 종목에서 우리 선수들과의 경쟁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남북 연락사무소가 폭파돼도, 대북 전단과 오물 풍선이 오가도, 북러가 손을 잡는 반대편에서 한미일이 어깨동무를 해도, 남북 간 체육 교류 창구는 아직 닫히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대화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체육 교류까지 끊어내진 않길 바란다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현재는 현실적으로 물음표 수준을 넘어 가능성 자체가 낮아진 상황이 된 것 같아 아쉽다”고 전하면서 “(남북 관계가) 가장 안 좋은 상황일 때 체육 교류는 남북이 마주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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