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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려 했던 아리셀 생존자… 살아남은 자의 영혼 좀먹는 상실·죄책의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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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명의 사망자를 낸 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1주일 뒤 해당 공장 소속 직원 A씨가 자살을 마음먹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고 당시 공장으로 들어가려다가 폭발 소리와 함께 화재를 목격하고 대피한 근로자였다. 그는 나쁜 마음을 먹고 산에 올랐다가 차마 시도하지 못하고 내려와 지나가는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행인이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너무 많은 동료들이 숨지고 다쳐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화성 화재 사고와 관련해 통합심리지원단을 꾸려 사고가 난 사업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심리 지원을 제공하고 있는데 A씨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대상자를 전수 조사해 연락하는 중인데 아직 연락이 닿지 않은 것 같다"고 해명했다.
사망자에 대한 보상과 진상규명 못지않게 참사 생존자나 유가족들이 상실감과 자책감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도록 돕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는 사례다.
A씨와 비슷한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 10·29 이태원 참사 생존자 고등학생 B군은 친구 2명과 함께 이태원에 놀러 갔다 홀로 생존했다. B군은 참사 이후 심리치료를 정기적으로 받았지만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끝내 사망했다. 재난참사 피해자들을 주로 상담한 오현정 상담가는 "참사 생존자들은 본인만 살았다는 자책감과 더불어 사고 후 확산하는 루머 등으로 2차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트라우마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와 광주학동참사 유가족협의회에는 참사 3주기를 맞아 지난달 실태조사를 실시했는데 사고 현장 부상자 7명 중 6명이 삶에 대해 큰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또 이 중 4명은 최근 1년 사이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고 했다. 지난해 7월 오송 지하차도 참사 현장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한근수(58)씨 역시 지난달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최근에야 다시 일을 시작했다. 한씨는 한국일보 통화에서 "점점 불안증세와 불면증이 심각해졌다. 비가 오면 후유증이 나타나고, 다시 일터로 나갈 의욕이 사라져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전문가들은 주변인들의 지지가 트라우마를 떨쳐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오 상담가는 "트라우마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기에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음가짐으로 환자를 대하면서 연결감을 느끼게 도와야 한다"고 했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 역시 "트라우마 환자 스스로도 고립되지 않도록 가족, 사회 등 외부 관계와 연결돼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생존자와 유가족에 국한된 심리치료 대상을 부상 없는 생존자와 참사 현장 속 시민 등 간접 피해자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많다. 실제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시청역 역주행 교통사고'의 경우 적잖은 시민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한 번쯤은 지나가 본 적 있는 친숙한 공간에서 벌어진 참사라 충격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 당시 사고 현장에 있었던 직장인 성모(28)씨는 "그때는 겁이 나서 얼른 현장을 벗어났는데, 쓰러진 피해자들을 도왔어야 했나는 죄책감에 시달린다"며 "출근할 때마다 사고 장소를 의도적으로 피해 가게 된다"고 털어놨다. 심 센터장은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직접적인 사고 피해자뿐 아니라 목격자도 트라우마가 심한 사례가 많이 보고됐다"며 "넓은 의미에서의 참사 관련자 그룹들도 정부가 나서서 지원하는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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